여우 새미
"나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어. 땅을 달리는 너보다 훨씬 자유롭지."
철새 브루밍이 여우 새미를 만났다. 땅을 달리는 여우를 만난 새는 신이 났다. 자신의 두 날개를 힘껏 펼치고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좋겠다!"
"그렇지? 정말 좋겠지? 너는 이렇게 날 수 없으니까."
"그렇지만 숲 속을 걸어도 호수가를 달려도 나는 행복한걸?"
"행복해? 어째서? 나는 하늘 위에서 바람을 맞을 때 행복한데? 너는 왜 하늘도 날지 못하면서 행복할 수 있지?"
"그게 나의 행복이니까."
"멀리서부터 여행을 하던 한 거북이를 봤어. 그 거북이도 너랑 비슷한 말을 하던걸. 하지만 난 그렇게 느릿느릿 여행을 하지 않을 거야. 그러면 제시간에 맞춰서 머나먼 섬들에 도착할 수 없거든."
"왜 섬을 가야 해? 넌 자유롭잖아."
"몰라. 오래전부터 그랬어. 우리가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이유는 다 그 섬에 가서 알을 낳기 위해 서래."
"그런 게 좋아?"
브루망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새미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기 때문이다. 날아가는 이유가 정해져 있는 비행이 정말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치 강박처럼 자신의 종착지가 정해져 있는 브루밍의 비행은 하늘 위에서도 무언가에 붙잡혀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브루밍은 자신을 부러워하지 않는 육상동물이 의아스러웠다. 새미가 그랬고 그때의 그 거북이가 그랬다. 자신이 제일 행복하고 자유로워야 하는데 자신보다 더 평안한 표정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여우 새미야. 너는 하늘을 날고 싶지 않니?"
"그럼, 날고 싶지! 하지만 하늘을 날지 않아도 괜찮을 뿐이야."
"왜 괜찮은 거야?"
"그래도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들로 갈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이들을 만나러 갈 수 있으니까!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가는걸"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너는 운명을 믿지 않니? 운명의 장소가 여우들에겐 없는 거야?"
"여우들은 굴을 찾아. 우린 우리가 쉴 수 있는 동굴을 찾지만 그런 게 네가 말하는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느 굴을 가도 행복하게 잠들 수 있어."
"어째서 그런 것들이 행복한 걸까?"
"우린 너희처럼 운명이란 것에 메여있지 않아"
브루밍은 충격을 받았다. 가족들을 따라다녔던 그동안의 여행을 운명이라 믿고 하늘을 날았기 때문이었다. 그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 자유가 맞을까 이따금 질문이 들 때마다 브루밍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철새들의 공격적인 언사를 받곤 했다.
하지만 이 숲에서 만나는 동물들은 뭔가 달랐다. 속도가 느려도, 하늘을 날 수 없어도 그들은 행복했고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그곳은 정해져 있지 않고 때때로 바뀔 수도 있는 목적지였다.
"너는 다시 떠나잖아. 너의 여행 중에 네가 사랑하는 곳을 만나진 못했을까?"
"나는 곧 떠나지. 내가 가장 사랑해야 할 곳은 나의 종착지가 될 테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 여행도 의미 없고, 나의 비행도 아무런 쓸모가 없는걸."
"그런 여행이 정말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네가 원하는 대로 사랑을 할 수는 없는 거야?"
"그럴 수는 없어... 어쩌면 말이야 나는 너희들이 나보다 훨씬 자유롭다고 생각해."
"너는 구름처럼 해와 달처럼 하늘을 날 수 있잖아."
"구름은 항상 바람을 따라다니고 해와 달은 언제나 정해진 길만 걸을 수 있어. 그런 의미에서 나는 구름처럼 철새들의 본능을 따르고 해와 달처럼 주어진 경로만을 다닐 수 있는 거겠지. 나의 여행은 자유로 워보이지만 사실은 많은 게 이미 정해진채로였어."
"나는 이 숲이 좋아.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나는 너처럼 숲을 선택할 만큼 멀고 많은 곳을 다녀볼 수는 없었는걸."
브루밍도 이 숲이 좋았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새미와 그녀의 친구들은 웃음이 있었고, 부족함 속에서도 자신들의 행복을 찾아갔기 때문이다. 자신이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과는 다르게 그들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그들의 행복을 찾았다. 어떤 의미해서 그들은 새보다 자유로운 하늘을 가졌다고 볼 수 있었다.
"그 거북이 있잖아. 이곳의 이야기를 했더니 한번 와보고 싶다길래 그의 걸음으로는 해가 넘어가는 반대 방향으로 하루를 가고 일곱 개의 별이 뜬 하늘을 보며 하루를 가면 이곳에 닿을 수 있다 했어"
"그 거북이를 나도 만나고 싶어! 같이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데 그는 내가 데려다주겠다 해도 거절했어. 자신의 걸음으로 여정을 온전히 느끼고 싶대.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했어."
"모두가 모두를 이해할 수는 없어. 다른 생각도 있는 법이지. 안 그래?"
"그래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브루밍. 네가 숲에 머무는 동안 말이야. 우리가 가고 싶은 곳들로 작은 여행을 다녀보자!"
"그래. 네가 갈 수 있는 발걸음에 맞춰서 나무 사이들을 날아갈게. 이곳에서 만큼은 종착지를 생각하지 않고 자유롭게 다녀보자."
그 뒤로 하루 종일. 둘은 숲 여기저기를 다니며 새미의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의 만남은 값졌고, 다음을 기약했다. 자유로운 하늘은 아니었지만 행복한 숲이었다. 숲의 동물들은 자신의 거처를 선택할 수 있었고 어디서든 잠들 수 있었다. 그래서 새미는 그 숲을 사랑했다. 브루밍도 숲이 좋아졌다. 그에게 자유가 있기를. 그가 나는 하늘에 자유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