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새미
"안녕! 처음 만나 우리!"
"반갑네 자네. 나는 한 철새가 얘기해준 숲을 찾아 이렇게 여행을 하고 있다네."
"브루밍이 말했던 거북이지? 만나서 반가워. 이 숲에서 처음 보는 동물이 또 생겼어!"
새미는 폴짝 뛰며 오귀스트의 주변을 돌았다. 거북이는 천천히 그런 새미를 따라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자신이 너무 빨리 뛰고 있다는 걸 알아챈 새미는 이내 걸음을 멈추고 오귀스트의 앞에 멈춰 섰다. 빙긋. 서로를 향한 여유로운 미소가 오갔다.
"그래 자네가. 그 철새가 말하던 여우 새미인가 보군. 나는 오귀스트 고귀한 순례자이지."
"고귀한 순례? 순례가 뭐야? 브루밍과 철새들처럼 운명의 장소로 여행을 가는 거야?"
"많은 이들이 순례와 여행을 혼동하고 있네. 순례엔 기쁨이 있지만 그것은 즐기기 위함을 목적으로 가는 길이 아닐세. 모든 삶은 순례 같이 숭고하지만 즐거움만을 가치 있게 여기는 여정이 고귀할 순 없네. 그대의 모든 감정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가치 있다 받아들여야 경험이 양분이 되어 어른 다운 어른이 될 수 있는 거야"
중후하고 낮은 목소리로 거북이는 천천히 자신의 말을 이었다.
"나의 목적지는 나의 끝일세. 모두가 경험했지만 돌아올 수 없는 길. 가장 아름다운 여정을 만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이 길 어딘가에도 언젠가 만날 종착지가 있다는 점이지."
"오귀스트처럼 정해진 종착지라는 거야?"
"그렇지 않네. 나의 여행의 끝은 그저 끝일 뿐이지. 정해진 장소로 가기 위한 여정이 아닌 정해진 때를 위한 여정일세.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이 여행을 떠나왔네. 그 철새와 달리 나는 진정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지."
"그렇다면 위해 이 길을 가는 거야?
"내 믿음을 위해서 가는 길이지"
귀를 쫑긋 거리며 새미는 거북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 유별난 호기심을 오귀스트가 자극한 것이다.
"누구를 믿는 건데?"
"누군가가 아니라. 삶을 찬미할 뿐일세"
"찬미?"
"그래. 나는 내 삶을 위해 걸었네. 내가 만나고 내가 느끼며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이 순간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거야."
"나처럼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야?"
"때로는 아무런 말도 없이 여정을 가야 하지. 아무도 없어도 그럼에도 걸어야 해. 그것이 삶이라는 걸세. 그리고 나는 그런 것조차도 사랑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여행을 떠나온 거지."
"그러면 믿음이란 건 뭔데?"
"믿음은 기다림일세. 믿음은 소망을 품게 하는 모든 일의 시작점이지. 나는 믿음 자체를 위해 이 여정을 감당하고 있네"
"나는 너를 기다렸어! 브루밍이 말했던 그 순간부터! 그것도 내가 믿는다는 걸까?"
오귀스트는 빙긋 웃었다. 그는 더욱 자상한 목소리로 이 어른 여우에 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 나그네를 환대해주어 고맙네"
"환대가 뭐야?"
새미는 처음 보는 거북이가 신기했고 그가 말하는 모든 말에 호기심을 느꼈다. 흥미로운 주제가 오갔고 새미는 눈을 반짝이며 거북이의 말을 경청했다. 새미는 브루밍이 말한 순간부터 거북이의 느린 걸음을 기다렸기 때문에 그의 느릿느릿한 말투를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그것이 오귀스트에게는 환영이자 사랑이었다. 늘 자신의 말을 다 듣지 않고 떠나버리는 존재들을 보며 외로움 속에 걸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말벗에 늙은 거북이는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환대란 자신의 삶에 누군가 머물 자리를 잠시 내어주는 걸 뜻하는 걸세."
"머물 자리! 내 굴이 있어. 힘들면 언제든 나를 찾아와서 쉬었다가도 돼!"
"그래. 나그네에겐 그것만큼 고마운 말이 없지. 그것이 바로 환대라는 것일세.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모든 곳이 반갑고 좋은 거야. 그렇게 누군가에게 쉼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환대이자 환영일세."
"잠시가 어니라 언제 든지라도 나는 좋아!"
"그러면 우리가 친우가 된 것이라 말할 수 있겠구먼"
"친우?"
"친구일세."
"아는 말을 낯설게 말하는 재주가 있구나!"
"오랜 여행을 다니며 많은 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지.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더 풍부한 단어를 가질 수 있었네."
"나도 거북이 할아버지를 만나서 많은 말을 배운 것 같아. 환대.. 친우.."
"여행 중에 만남이란 그 처럼 가치가 있는 일일세. 삶이란 순례의 연속이고 그 순간에 만나는 이들은 그 시간만큼의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
"만남은 소중해! 난 친구들을 만나는 게 정말 좋아."
"나도 그렇다네"
껄껄껄. 느리지만 호탕한 웃음을 오귀스트가 지었다. 깔깔깔. 가볍지만 깊은 웃음을 새미가 지었다.
"친구가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어딘가에 있다는 그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게 친구일세. 여정의 끝에서 너를 한번 더 생각하며 기쁨을 더할 수 있을 걸세"
그것이 친구란 것이야.라고 오귀스트는 따뜻함을 가득 담아 새미에게 말을 전했다. 둘은 친구가 되었다.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 때라도 서로가 있어 힘이 나고 삶이 즐거운 그런 여정을 마음 놓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존재가 생긴 것이다.
그래도 새미를 위해 언젠가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이 숲과 너를 기억하겠노라 그런 말을 남기고서 그는 다시 느린 걸음으로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