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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의 헤어짐

숲의 새미

by 광규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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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아끼는 새미가 왔구나."


지금 새미는 이별을 준비해야한다. 아주 오랫동안 함께해온 존재를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한다. 그녀보다 더 오래 이 숲에 살아온 호랑이 티그루와 이별을 해야한다. 그녀의 첫 친구이자 보호자였던 티그루는 숲의 왕으로서 버려져있던 새미를 주워 키웠으며 그녀에게 자신의 굴의 한켠을 내어주며 양녀이자 친구로 삼았다.


"너의 이름을 지었을 때 나는 숲의 생명들을 먹여주고 길러주는 작은 샘물을 생각했단다."


"티그루... 기운이 없어 왜."


자상한 호랑이는 넓은 품으로 숲을 품었고 그 안에 태동하는 숨이 붙은 존재들을 다스렸다. 그는 그 땅의 주인이었지만 창조주의 뜻대로 다스리고자 지키고 보호하였다. 땅에 있는 생명을 충만하게 했으며, 생육하고 번성하게 했다. 그는 처음 이 땅이 지어질 때 오래전 창조주가 땅을 만들고 다스렸듯 그의 다스림을 따라 공의롭고 정의로운 숲을 만들고자 했다.


그에게 이곳은 동산이었으며, 동산에 뛰노는 모든 동물들은 그의 보호 아래에 있었다.


그가 이름 모를 여우 한마리를 만난 것은 몇년 전의 일이었다. 물을 마시러간 샘터에서 버려진 여우를 만난 것이다. 이를 가엾게 여긴 티그루는 새미를 거둬들였고 샘에서 발견했음으로 새미란 이름을 지어줬다.


"작은 여우야. 오늘은 어떤 모험을 하고 왔느냐?"


"오늘은 숲의 두꺼비 베르트렁을 만났어. 그가 앞으로 얼마간은 티그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그랬어."


새미는 불안한 기운을 감추지 못하며 티그루가 누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왕이 있는 곳이 곳 새미의 터전이었고, 왕이 다스리는 모든 땅에서 새미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었다. 모든 존재가 그랬다. 공의로운 다스림 앞에서 모두가 자유로웠다.


"티그루... 어디로 가는거야? 브루밍 처럼? 다음 해에 오는거야? 오귀스트씨 처럼 앞으론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거야?"


"나는 그 철새 친구 브루밍 보다 높은 곳으로 갈 것이며, 오래 산 거북이 오귀스트보다 머나먼 여정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단다."

"그곳이 어디인데?"

티그루는 빙긋 웃으며 어린 여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위엄있고 무거운 목소리가 동굴을 가득 채웠다.


"그곳은 아직 어린 네가 알지 않았으면 하는 머나먼 곳이란다."


"티그루 지금까지 숲을 지켜줬잖아. 모두 같이 뛰어놀면 되잖아."


떼를 쓰는 어린 아이 처럼 새미는 꼬리를 추욱 들어뜨리고서 티그루의 주변을 뱅글 뱅글 돌았다.


"그래. 베르트렁에게 이미 말해뒀도다. 이제는 너가 이 숲을 지키고 보호해주면 되겠구나."


"티그루가 같이 해주지 않으면 나는 싫어."


크고 늙은 호랑이는 부드럽게 여우의 이마를 핥았다. 거칠거칠한 혀가 지나간 자리엔 삐죽선 머릿털이 뭉쳐있었다. 티그루는 새미를 보며 긍휼한 마음이 들었다. 한 없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이 작은 존재에게 들었다. 이제 이 여우는 호랑이가 떠나간 자리에서 왕이 되어야했다. 아직 이르지만 현명한 숲의 동물들은 분명 이 사랑 많은 존재만이 숲을 올바르고 아름답게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작고 어린 여우야. 네가 이 숲을 사랑하느냐?"


"응. 이곳의 개울과 나무들과 그 사이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좋아."


"그래. 너가 그들을 잘 먹이거라."


"티그루도 함께해줘."


자상하게도 그러나 단호하게 티그루는 여우의 말에 다 대답해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소중하고 귀여운 여우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응. 나는 티그루가 좋아. 언제나 나와 함께했고 가장 어두운 동굴을 비춰주며 숲의 존재들을 지켜줬잖아."


그러니까 가지마. 그 말을 잇지 못한채 티그루의 말을 들어야했다.


"그렇다면 아가. 나의 자리를 네가 지키고 너와 내 이름을 더욱 명예롭게 하거라."


새미는 티그루를 올려다봤다. 그의 오랜 친구의 눈엔 결심이 어려있었다. 가장 오래 함께한 존재인 만큼 서로는 서로를 가장 잘 알았다.


"사랑하는 딸아. 네가 이들을 사랑하느냐."


"다들 어느새..."


어느샌가 숲의 동물들이 티그루의 동굴 앞으로 모여있었다. 그들을 말 없이 새미의 맹세와 약속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쫑긋 거리는 귀는 티그루를 걱정하는 마음에 이들이 모여드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새미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맞아. 나는 너희들 모두가 너무 좋아. 그러니까 아프지 말고 나랑 함께해줘."


"참으로..."


기특한 아이였다. 티그루는 모두를 둘러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네가 이들을 다스리거라. 땅을 충만케하고 땅의 모든 것을 지키고 보호하거라. 그것이 다스림이다."


언젠가 이 동산이 지어지던날. 마지막 날에 티그루가 들었던 창조주의 명령이었다. 이제는 자신을 만든이의 곁으로 돌아가야할 때가 가까웠다. 때문에 그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음 왕을 정했다. 자신의 딸이며 오랜 친구이자 숲의 모든 생명들의 친구가 되어줬던 이 겁없고 총명한 여우가 이제는 자신의 굴에서 자신의 뒤를 이어주길 바랬다.


홀연히 구름이 이들에게 내려왔다. 하얀 구름이 온땅에 가득했고 숲이 온통 덮일 만큼 충만해졌다.


"이제야. 제 일을 마치고 갑니다. 나는 나의 달려갈 길을 다 가도록 이 소명을 지켰으니 이제 너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주변에 있는 이들을 사랑함 지켜주도록 하거라."


목소리가 온 숲에 울렸고 호랑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이것이 숲에 새워진 새로운 왕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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