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전쟁이 일어났는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국제법상 아제르바이잔에 속한 지역이나 인구의 대다수는 아르메이나인이었다. 소련의 붕괴 이후 해당 지역은 아르메니아의 일부가 되기로 하자는 쪽으로 투표와 결의를 한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1992년 아-아 전쟁이 발발한다. 2년간의 전쟁 끝에 1994년 휴전을 선언하였지만 분쟁의 끝을 의미하는건 아니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국의 영토를 되찾고자 했고, 수차례 있었던 분쟁의 조정은 양측 협상의 결렬등의 이유로 적대감만 깊어질 뿐 제대로 해결되는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유혈사태를 통한 이러한 극단적인 해결 방안 역시 문제에 제대로된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캅카스 산악 지대는 유럽 동남부에 위치하여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이미 오랜 역사 속에서 해당 지역을 놓고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간의 각축전이 벌어진 전적이 있다.
아메르바이잔은 여러차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분리에 대한 의견 표출을 억누르려했고, 이에 대항하여 아르메니아는 지원을 계속해왔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간의 민족/인종간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고 소련의 붕괴 직후 전면적인 무력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1990년대 일어난 전쟁은 아르메니아 군이 해당 지역에서 아제르바이잔 군을 내쫓음으로 일단락 된다.
<평화를 위한 시도>
1994년. 러시아의 중재하에 휴전을 선언하였고 아르메니아군이 통제권을 가져간다. 이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스스로 독립국임을 천명하고 아르메니아의 지원을 받게 된다. 하지만 아직 평화는 오지 않았다.
서부 열강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중재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평화 협상은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90년대로부터 2020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있어왔고 이미 4년전인 2016년도의 대규모 충돌에서는 심각한 인명피해를 낳았다.
<지정학적 복잡성>
1991년 터키는 아메르바이잔의 독립을 처음으로 인정한다. 양 국가는 튀르크계 문화와 인종을 공유하는 일종의 형제국가란 인식이 존재했다.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은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다.
1993년 터키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당시 아르메니아 국경을 폐쇄하는 등 아제르바이잔측을 노골적으로 지원하였다.
그렇다면 아르메니아는 지원국가가 없느냐? 그렇지 않았다. 아르메니아의 배후에는 강대국 러시아가 자리를 하고 있었다.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의 CSTO(집단 안보 조약기구)의 회원국이며, 러시아의 제 102 군사기지가 아르메니아의 제 2의 도시인 귬리 시내에 위치해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아제르바이잔과도 수교를 맺고 있기 때문에 최근에 와서는 교전 중지를 촉구하는 의사를 표명한다.
2018년 일명 ‘벨벳 혁명’이라고 하는 아르메니아 평화 혁명에 의해 세르지 사르키샨은 실각하며 니콜 파시냔이 그해 자유 선거에서 당선 아르메니아의 총리가 된다. 파시냔 총리는 아메르바이잔과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했으며 2019년 평화를 위해 구체적 조치를 위한 공동 성명을 OCSC 민스크그룹의 대표단 중제하에 발표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20년 7월의 충돌과 함께 9월 전쟁의 막이 오른다.
<전쟁의 원인>
아직까지 일단락 되지 않은 오랜 분쟁은 증오를 낳았고, 폭력 사태를 야기하며 극단적인 해결 방안으로 치우치기에 이른다. 2020년 7월 12일 국경 지역에서 있었던 교전은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당겼으며,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는 국토 탈환을 위한 시위가 열리기에 이른다. 양국 사이에 전운이 감돈지 얼마 되지 않아 전쟁이 발발한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종전 합의. 6주에 걸친 전쟁이 끝났다. 11월 9일 군사분쟁을 끝내기로하는 합의안에 도달한다.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로 간주했던 지역은 아르메니아계 주민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해당 지역 주민에 의한 독립 선언이 있기도 했다.
이번 종전합의에는 러시아도 참여한다. 러시아는 아르메니아와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국가로 종전 협정을 중재했을 뿐 아니라 푸틴 대통령이 직접 서명하기까지 했다. 또한 러시아 대통령은 전선에 러시아군을 평화유지군으로 파견한다.
또한 터키 역시 평화 유지군을 보낸다.
전쟁의 막간에 이르러 터키와 이슬람 세력의 유입으로 인해 아르메니아군이 불리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 적이 있다.
국제사회는 사실 양국간의 분쟁보다 러시아라는 강대국과 터키라는 두 외국이 해당 군사 분쟁에 개입하는 것에 더 우려를 표했다. 양측 국가 모두 원하는 것이 있고, 영향력을 넓히려는 시도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양국의 개입에 의한 국제전으로 진행될 양상을 걱정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마지막에는 아르메니아군이 불리한듯 보였지만 전쟁의 결과는 아제르바이잔의 일방적 승리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은 이렇다할 승자가 없는 싸움이었다.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가 항복했다고 주장했으나 아르메니아 총리는 전문가들의 논의의 결과에 따른 것이라 말했다.
전후 각국 전사자 시신을 교환하기로 했다.
2020년 11월 20일 아르메니아와 아르차흐 동맹이 평화협정에 선언함으로 전쟁이 끝난다. 사실상 항복과 다름 없는 참패였다. 이로써 44일간의 전쟁이 끝나고 항구적 휴전 합의에 이르렀다.
러시아의 중재 직전 아르메니아구니 전략적 요충지를 잃었고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이로서 러시아는 국제 분쟁에서의 중재자의 위치를 얻었고, 평화군 파견으로 인한 영향력 확대에 더불어 남캅카스 지역에 대한 터키를 향한 견제 역시 성공하게 된다. 남의 나라의 전쟁에 제 3국이 이권을 가져간 셈이었다.
그러나 이런 합의에도 부정적인 시선이 남아있다. 항구적인 평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과연 언제 다시 무력 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으로 종결됐다.
아르메니아는 점령지인 북부 카자흐구와 라츤, 캘재배르 등을 반환하며 아르차흐의 제 2의 도시격인 슈샤 역시 아제르바이잔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또한 아르메니아가 실효지배하던 영토 아그담과 라친 등도 아제르바이잔이 갖게된다.
이번 전쟁은 국가간 체급에 있어서도 이미 승부가 결정난 전쟁과 다를바 없었다. 아제르바이잔이 1000만이며 아르메니아는 300만뿐이기 때문에 사실상 근본적인 국력과 국방력의 격차가 심하게 존재했기 때문이다.
명분상으로도 국제법상 자신의 영토를 위해 싸웠던 아제르바이잔에 비해 아르메니아는 이미 명분 싸움에서 밀렸으며, 국력의 차이가 가져오는 국가적 손득의 계산과 아제르바이잔의 원유 마장량에 있어서도 아제르바이잔의 손을 들어주는게 각국의 이익이기 때문에 아르메니아는 국제사회의 외면을 당하게 되었다.
외교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원칙이며 진리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는 당연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국민 정서에는 여전히 미움이 남아있을 수 밖에 업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마을을 떠나며 집 등에 불을 질러 집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적의를 내비췄다. 아르메니아계인들은 아제르바이잔인들과 한 마을에서 공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겼다.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 영토중 수도를 제외한 대부분이 아제르바이잔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집을 일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전쟁을 종교적 갈등으로 보려는 시선이 있으나 이는 지나친 비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전쟁은 국가간 영토분쟁과 민족간 갈등이 야기한 비극이었으며, 거슬러 올라가면 근현대사의 강대국에 의해 잉태된 일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이슬람과 기독교 국가간의 종교전쟁이라 봐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