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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 후일담

by 광규김

내게 자격 없이 평생 목사를 하라는 선배가 있었다. 내게는 목회를 할 아무런 자격이 없는 것 같다는 고민 앞에서 외친 그의 말이었다. 그 선배는 목회를 하고 있고 나 역시 다시 사역의 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내게 아무런 자격이 없을 때 까지 끊임 없이 비워내는 작업을 하면서.


신학교에 입학할 적에는 마음에 열정이 가득했다. 무너져가는 한국교회를 살리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죽어가는 다음 세대를 다시 일으키기 위함이었을까. 어찌 되었건간에 나는 신학함의 길에 올랐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큰 실망을 했다. 교계의 현실에. 그리고 앞서가신 선배님들의 모습에. 그것이 곧 우리 세대의 일이되겠지 하는 참람한 심정으로 계속 걸어야만했다. 그럼에도 걸음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이겠거니 하는 생각 때문이었겠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마음이 무너진 것은 너무나도 부족한 나의 모습에서였다. 안과 밖으로는 죄악이 가득했고 연약한 영혼은 좌와 우로 치우치며 격랑 속에 나룻배가 흔들리듯 요동쳤다. 꽤 많은 방황을 했다. 어쩌면 20살이래로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이 방황의 시간이었다 말한다면 그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금요 예배를 준비하던 어느날에 내게 한 생각이 들었다. "예배란 지금 이곳에 없는 이들에게. 그러니까 저 교회 밖에 있는 이들에게 그리스도가 소망이 되어주시라고 그들에게 소망을 주시라고 간절히 바라고 구하는 것이다."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내가 지켜온 자리를 완전히 부정하는 말이었으며 나는 그 자리에서 뒤집어졌다.


예배가 끝나고서 기도탑에 들러 한참을 기도하고 편의점에 갔고 그곳에서 한선배를 만나 맨 위에 적었던 말을 들었다. 그렇다. 나 역시 아무런 자격이 없는자가 되어야만 내가 그들의 곁에 설 수 있는 것이었고, 저 교회문밖에서야 내가 진정 원하고 바라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 안에서의 모든 사역은 곧 교회 밖을 향하고 있어야함을 의미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찾는다. 베드로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서 본 환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우리는 묻는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 건물을 거룩한 성전이라 부르며, 그 공동체를 구별된 자녀들이라 부르면서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찾는 하나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다. 우리가 도망쳐왔고 도망치고 싶었던 것의 정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계셨던 것이다. 베드로는 로마를 떠나려했으나 그리스도는 아피아가도로부터 로마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묻는다. "쿼바디스 도미네..."


그리스도가 죽어가던 순간 지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 그곳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고 그의 영광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순간 그 하나님은 성전 문 밖 골고다 언덕에서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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