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현인이 찾아와 내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으로 사시오?' 이전 같았다면 한참을 고민했겠지만 오늘날의 대답은 무척 단순해졌다. '고백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나의 정체성과 시작과 끝이 어떠한 고백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의 언어는 그런 고해로 이뤄져 있다.
내 마음엔 한 노래가 있어 나 즐겁게 늘 부른다. 그것은 나의 가치관과 방향성을 말하는 삶의 고백이 담겨있다.
내가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바라는지는 나의 고백으로 이야기한다. 그 노래는 끊이지 않고 마음속 샘물에서 솟아 나오며 나의 이름에 나의 정체성을 더한다. 나는 고백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당연한 수순과도 같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세계관의 변화이며 이는 곧 그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삶을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선물로 받아들인다는 것과 같다.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누군가에게 양도할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의 유한함이며 유일성이다. 나의 삶은 오직 나만이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삶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나갈지를 고민하는 것이 바로 고백의 일이다. 고백은 삶에 대한 이야기이며, 삶을 정의하는 언어다.
고백이 이야기하는 삶은 삶을 살아내는 삶이다. 받은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그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자신의 영혼을 가득 채워나가는 것이 바로 고백하는 이의 삶이며 내 삶에 대한 고백이다. 그 고백을 묵상하다 보면 큰 선물 같은 평화가 내게 임한다.
내가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이 나의 고백이다. 나의 삶의 방향이 나의 고백이며, 내가 삶으로 이뤄내는 모든 일들이 곧 나의 고백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의 영혼이란 어떤 것인지를 세상에 알리며 스스로 더욱 존귀한 것을 구해가는 과정이 바로 고백이다.
때문에 고백은 내게 존귀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며 드러나게 한다. 고백을 통해서 나는 나의 방향성을 알 수 있고,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때문에 고백은 인생을 살아가는 이의 지향성이며 그것에 대한 드러냄이다.
고백이란 무엇을 믿느냐 하는 신념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자신이 무엇을 고백하고 무엇을 위해 고백하느냐에 따라 내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고 무엇에 두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고백은 자신의 마음을 깊이 살펴보는 것이다.
날마다 이어지는 삶에서 우리는 고백을 한다. 그리고 그 고백으로 살아가며 고백으로 사랑한다. 고백은 곧 사랑의 표현이며 사랑의 완성이 되기도 한다. 고백은 그 시작을 이야기 하나 고백으로 비로소 완성되는 사랑이 있는 것이다.
사랑을 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어주는 것과 드러내는 모든 것이 고백이다. 그러므로 고백은 나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며 내가 어떻게 사랑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고백은 그와 동시에 나의 목적성이 된다. 나의 삶에 존재론적 의미를 드러낸다. 아직 모든 것이 잠들어있는 때에 깨어서 말하는 고백은 날의 시작을 알리며 생명의 태동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날이 저물어갈 때 하는 고백은 그간의 삶과 사랑을 돌아보게 하면서 그 길고 긴 문장에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는다.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닫는지는 우리의 중요한 고백이며 내가 어떤 사랑을 하였는지에 대한 지표가 된다.
고백은 동행이다. 지금 내가 무엇과 동행을 하고 있으며 무얼 위해 동행을 하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그렇기 때문에 고백으로 사는 것은 누구와 함께 할 것이며 지금은 어디서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는지를 나타난다. 고백은 아직 새벽이 시작하지 않은 어두운 아침에 햇살이 드리우기 전 입 맞추는 사랑이며 깨어서 하는 기도 하며 그럼으로써 가장 거룩한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때문에 고백은 사랑이다.
고백은 자신의 존재의 의의 그 자체를 이야기한다. 삶의 구원과 삶의 의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고백이다. 때문에 올바른 고백 곧 아름답고도 거룩한 고백을 하는 것이 바로 신념을 가진 이들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고백이다. 고백이 그리스도를 말할 때 성도의 마음은 비로소 사랑이 머물며 구원이 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