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생애의 정치적 배경에 대하여
바리새파는 당시 존재했던 종파들 중 가장 영향력이 강했으며 그들은 율법을 준수하려고 노력했다. 바리새 중 일부는 하스몬가에 대항하여 무장 항쟁을 했으며, 마침내 그들은 외부인의 통치를 받는 것이 하스몬 왕가의 지배를 받는 것보다 낫다고 여겨 기원전 64년경 로마에 대표단을 보내 제국이 그들의 정권을 교체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로마는 기원전 65년에 마그누스 폼페이우스를 파견하여 예루살렘을 침공하고 만명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하고 수천명을 노예로 삼았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로마의 통치를 반기지 않았지만 로마는 예루살렘의 사제 귀족들을 이용했다. 로마는 이두메 출신의 제후를 꼭두각시 왕으로 세웠는데 그가 바로 성경에 나오는 헤롯 왕이다.
헤롯은 헬레니즘 양식의 고대한 건축물을 짓고 황제를 기리는 카이사레아라는 도시를 세운다. 그의 건축물 중에서도 걸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예루살렘의 성전 증축이었다. 그 성전은 로마군이 주둔한 안토니아 요새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하여 유대는 사제 귀족인 사두개와 헤롯파라는 두 귀족 집단의 통치를 받게 된다. 이들은 각자 세금을 과세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큰 부담에 시달려야했다.
성경에 나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또다른 가신 집단으로서 토라를 체제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모든 바리새인이 그러지 않았고 귀족과는 깊게 어울리지 않으며 훗날 랍비의 주석으로 발전되는 토라 주석 작업에 초점을 맞춘 이들도 있었다. 그리하여 바리새는 당시 민중들의 인기를 얻게 된다.
로마령 팔레스티아에서 제국 통치에 대한 유대인의 항의는 비폭력적이었다.
그들은 탄압이 극도로 치닫지 않는 이상 무력에 의존하지 않는 시위를 했다. 유대 농민 공동체의 항의는 비폭력 비협조였다.
서기 50년경. 튜다라는 예언자는 사람들이 먼저 행동하면 하나님이 구원해줄 것이라 말하며 400명의 유대인을 이끌고 광야로 탈출을 시도한다. 다른 반군 지도자는 예루살렘에 진입하여 로마의 수비대를 제압하고 권력을 장악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3만명의 군중을 이끌고 감람산으로 행진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적 세력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무자비하게 진압 당한다.
두가지 방식의 항의는 우주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묵시록적이고 영속 철학적인 믿음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예수가 갈릴리 마을에서 포교를 하게된 정치적 맥락이다.
“예수는 폭력적으로 상처받은 사회에서 태어났다.”
그의 탄생은 헤롯의 봉기가 일어난 해였으며, 총독 바루스가 초토화시킨 세포리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나사렛 마을이었다.
황제 칼리굴라에 대항한 농민 파업은 예수 사후 10년이 지나지 않아 일어났고, 그가 살았던 갈릴리는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렸다. 안티파스는 갈릴리 신민에게 무거운 세금을 징수했고 세금을 내지 못하면 토지를 몰수했다.
일부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땅을 빼았겨 산적이 되었고, 일부는 천한 노동을 하게 되었다. 목수 등의 숙련공에는 이런 좌절한 농부들이 들어가있었다. 때문에 예수의 아버지 요셉도 그런 좌절한 농민중 하나였을 것이란 추측이 존재한다.
예수의 주위로 몰려든 이들은 굶주리고 병든 자들이었다. 하나님의 축복과는 거리가 먼이들이 성자의 주위를 에워쌌다.
예수의 비유는 부자와 가난한자가 나뉜 양극화된 사회를 보여준다. 대출금을 원하는 이들과 큰 빚을 진 농민 그리고 재산을 빼앗겨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한 이들. 복음서는 로마령 팔레스틴의 정치적 폭력과 잔혹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예수는 그런 사회적 현상을 비유로 복음을 전했다.
“복음서는 처음부터 예수의 가르침을 제국 주의적 통치의 구조적 폭력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로마는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전쟁 이후 평화를 가져온 신의 아들, 구세주, 주라 불렀으며 그의 출생이라는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성경의 성자는 집도 없이 태어난 난민이었다.
예수가 몰아낸 군대 귀신은 가장 오염된 동물인 돼지떼에 들어가 바다로 뛰어든다. 이는 점령에 대한 노골적 상징인 로마군대를 말하는 듯한 표현이었다. 지배 계급은 에수의 악마 퇴치 이야기를 일종의 도발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이 헤롯 안티파스가 예수를 적대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따라서 예수의 사역은 정치와 종교의 영역을 엄밀하게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복음은 다스림을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를 모르는 자들까지도 공의의 다스림 아래서 살게하는 창조의 섭리가 회복된 세상을 이야기한다.
가난 중에 태어난 성자는 평화를 전했고, 그가 실천한 사랑은 모든 율법의 강령이자 제정정신이었다.
그 정신을 이어받은 기독교는 하나된 신앙 고백을 한다. 그 신앙은 예수의 사역과 설교가 그랬듯 사회의 아픔과 죄악에 관심을 가지고 기울여 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