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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학개와 이스라엘의 회복

by 광규김

[멸망]

“시온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난과 큰 멸망을 가져오리라”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이었습니다.


남유다는 말기에 이르러 정치적으로 아주 불안정한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당연스럽게도 하나님과 유대 백성들과의 관계 역시 망가져갔습니다.


주변에서는 제국들이 발흥하며 세력을 확장해갔고 어느 편에 서야 할지 남유다 역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선지자들을 말했습니다. 제국의 권세에 의존하지 말고 만군의 여호와께 돌아가라.


그러나 당장 눈앞의 현실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호소력을 갖기는 어려웠습니다.


선지자는 말합니다. 너희는 여호와께 돌아오라.. 돌아오라…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고 남유다 왕국 역시 임박한 멸망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바벨론의 네부카드네자르 왕이 애굽의 느고 왕에게 승리했고 대륙의 지배자는 바벨론 제국이 차지하게 됩니다.

유다의 왕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고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이때로부터 이스라엘의 역사는 포로기라는 암울한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포로기]

포로기는 유대민족의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습니다. 누군가에겐 모든 것이 무너진 재앙이 될 수 있었고, 누군가에겐 새로운 지도층이 될 수 있는 기회로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유명한 이야기가 바로 ‘다니엘’서의 내용들입니다.


이 시기를 겪으며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는 세계관은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그들에게 멸망은 단순히 파괴와 절망이 아닌 여호와의 심판이 되었고, 이러한 역사란 여호와의 심판과 구원이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이해되었습니다.


신학자 에크로이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포로기를 단순히 심판이 아닌 역사 속에서 행동하고 계신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한 심판으로 해석된다.라고 말이죠. 역사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났고, 그것을 주관하는 이 역시 하나님 한분이시라는 믿음의 고백이 생겨났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아의 선포가 시작되고서 약 백 년이 지났습니다. 남유다가 멸망하여 백성들이 포로로 사로잡혀간지 70년의 세월이 지나있었고, 그들의 지배자는 바벨론에서 페르시아 제국으로 바뀌어있었습니다.


고레스의 칙령이 내려지고 다시 한번 다리오 왕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그것은 무너진 이스라엘로 돌아가 성전과 도시를 수복해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는 이미 오랜 시간 땅의 주인이 바뀌어있었고 이스라엘을 직접적으로 기억하는 이들은 얼마 남지 않은 채 그들의 후손들이 민족의 고향으로 돌아가던 때였습니다. 혼란스러운 사회는 회복된 것이 아니었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두려워하는 주변 민족의 방해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내려와 총독과 대제사장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집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 성전을 다시 지으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성전]

성전은 오랫동안 율법과 함께 이스라엘 종교의 구심점을 맡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곳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는 지성소가 있었으며, 그곳은 제사장이 머물며 번제를 드리는 예배의 중심적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성전의 재건이라는 것은 단순히 건물을 지어 올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성전의 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집. 곧 그곳은 그들 백성 중에 하나님이 거하신다는 말이 되었고,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너진 이스라엘의 성전이 다시 지어지는 것은 곧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과 회복되었으며, 그들 중에 다시 하나님께서 거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아주 중요한 과업이 되었습니다.


성전의 재건이란 이스라엘의 회복을 나타내는 증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회복]

그런데 어째서 성전이었을까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의 회복이 어째서 이스라엘의 왕조 약속된 다윗 왕의 후손의 재부흥이 아닌 성전의 회복이었을까요?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오늘 메시지의 중심 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는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에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스라엘이 왕조를 다시 세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때문에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은 다른 형태의 목적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그들의 왕국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은 그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이는 것이죠.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속에서 그분의 백성의 회복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을 통해 보여주려는 우리의 회복 역시 무엇을 통해 시작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때문에 오늘 본문. 학개 1장 1절로부터 5절까지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지도자 제사장과 이스라엘의 정치적 지도자 총독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회복의 선포와 같습니다. 인간의 삶 전반에서 위기에 빠진 백성이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성경은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성전]

오늘날 우리의 성전이 무엇일까요? 교회 건물이요? 예배당 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이 계시는 거룩한 성전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회복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나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의 회복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혼란한 이 시대에서 우리의 회복은 나와 하나님 그리고 더 나아가 이 공동체와 하나님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나라와 민족과 하나님의 관계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것은 종교적 경건을 넘어선 인격적 관계의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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