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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곁에 유다가 있느냐

발을 씻기던 예수의 마음

by 광규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의 공생애가 마침내 끝을 향하고 있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진 것을 직감하고서 제자들을 모아 마지막 식사를 한다.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이 있던 날이었다.


스승과 제자들이 마지막으로 함께할 수 있었던 어느 날 예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그는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자신의 손에 이제 모든 일이 맡겨진 것을 알게 된다. 세계의 운명.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이 이제 그 한 사람의 손에 맡겨진 순간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에 빗대어 본다면 그토록 잔인할 수가 없었다. 평생을 타자를 위해서 살아왔던 이에게 이제 세상의 운명을 맡긴 것이다. 오직 한 사람에게 그 가혹한 운명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세상이 있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것이 자신의 손에 맡겨진 것을 알게 된 그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그는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대야를 가져와 제자들의 발을 씻겼다. 모든 것이 자신의 손에 맡겨지고서 그가 첫 번째로 한 행동이었다. 그것은 3년간의 가르침의 정수였으며,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하는 부탁과도 같았다.


당시 제자들은 그 행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가 떠나가고 남겨진 제자와 초대 교회 공동체들로부터 예수의 전승이 전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그들은 스승의 그 행동이 어떤 의미였는지 차츰 깨닫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알 수 있는 것. 그 당시에는 쉽게 알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복음서의 기술은 훗날 이 당시를 회상하던 제자와 공동체의 신앙 고백이 담긴 것이라 느껴졌다.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베드로는 자신의 발을 씻는 스승에게 머리까지 씻겨주실 것을 말했다. 그는 자신이 주라 부르는 그분이 자기의 발을 씻는 것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시 발을 씻겨주는 것은 극진한 대접과 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종의 일이었다. 주님 혹은 선생이라 부르는 예수가 자신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제자들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라고. 훗날 이 날을 회상하며 제자들은 이 말이 예수를 배신한 유다를 향한 말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이 장면을 보며 예수의 사랑과 먼저 본을 보이는 가르침에 대해서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일종의 배려와 염려를 느꼈다.


당시 제자들은 이 말이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지 몰랐다. "다는 깨끗하지 않은"이가 바로 자신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사로잡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를 제자들은 배신했다. 그들은 참으로 "다는 깨끗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제자들은 몰랐다. 그 말이 어떤 무거운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몰랐다. 시간이 지나 배신자의 낙인이 찍힌 유다를 보며 누군가는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유다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장기짝에 불과한 것인가?" 하지만 하나님의 배려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예수의 성품을 생각한다면 결코 유다는 쓰다 버릴 장기짝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는 자신의 제자들을 사랑하시며 이와 같이 말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즉, 자신이 끝까지 더러운 곳으로 남아있던 너희의 발을 씻겨준 것 같이 너희도 서로의 발을 씻기라는 말이었다. "유다까 지도 사랑하라. 내가 그를 깨끗하게 씻겨준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씻겨주어라"


참으로 예수는 마지막까지 그를 배신할 운명을 짊어진 유다를 긍휼히 여겼고 제자들 역시 자신과 같이 그를 사랑해달라는 말로써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수는 발까지도 씻겨주셨다. 그리고 훗날 제자들은 그것이 유다를 두고서 한 말이었음을 깨달았다.


결국 죄인들을 곧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는 자신의 제자 유다까지고 구원하시고 깨끗하게 만들어주고 싶으셨던 게 아니었을까? 그는 자신의 사람들의 발을 씻기며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흠을 닦아주시길 원하셨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이제는 제자들이 따라 실천하기를 원하며 본을 보이셨다 말했다. 그것이 끝까지 사랑하신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발을 씻김으로써 그들이 자신의 사람임을 확증하셨으며 결국 예수는 가장 마지막 흠까지도 사랑하며 씻겨주길 원하셨다는 것을 훗날 제자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전승으로 남겨 교회 공동체와 믿음의 다음 세대에게 전해지길 원했을 것이다.


이제 이 땅에는 예수의 제자들 곧 성도들이 남아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예수는 발을 씻김으로 그들을 그와 상관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셨다. 그럼으로써 가르치길 원하신 당부이자 명령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었다. 결국 자신이 유다 같은 사람까지 사랑한 것 같이 그의 제자들도 그런 사람을 사랑하고 품어주기를 바라셨던 게 아닐까?


이제 세상에 남겨진 그리스도인들에게 곧 예수쟁이요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나 역시 이 말을 당부하고 싶다. 우리는 예수의 사람이 되어 의롭다 함을 입었다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나 자신과 우리 공동체에게는 먼지 묻은 발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주를 닮아 그것까지 씻겨주는 것. 그 한 사람마저 마음에 품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를 향한 예수의 계명이 아니었을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사도. 헬라어 "아포스톨로스"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사도적 전승을 계승한 이들이 바로 초대교회이며 오늘날 기독교가 된다. 우리는 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다. 곧 그를 구원의 주님으로 섬기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라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님보다 클 수 없다. 곧 스승의 본과 주인의 명령을 따라 하는 것이 교회 공동체의 소명이라는 것이다. 철저하게 예수를 닮아야 하는 사명을 품은 이들이 바로 교회라는 공동체며 성도라는 구성원이라 말할 수 있다.


이제 우리 가운데 유다가 있다면, 혹은 그것이 자신일 수 있다면 그것마저도 낮아 지사 씻겨주셨던 예수를 닮아 우리 역시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교회가 지켜야 할 사랑이며 정의라 말할 수 있다. 발을 씻김으로 자신과 상관이 있는 사람들로 만들어주고 싶었던 예수의 마음을 이제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 품어한다는 말이다.


예수의 순종이 그러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리해야 함을 마음 중심에 품고 살아갈 수 있었다면 좋겠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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