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여전히 아프지만
나 같은 이들에게는 직장이라 할 수 있는 교회 사역을 시작하고 대학원 시험에 최종 합격한 그날부터 나는 약을 끊기로 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군병원에서 서울에 있는 모 대학병원으로 옮겨가 치료를 받기 시작하고서 딱 반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나는 마침 좋은 교수님을 만나 짧은 기간 동안 눈에 띄게 병세가 호전될 수 있었다. 군병원과는 다른 약을 사용했고 큰 부작용 없이 많은 증상이 완화되었다. 나는 마음 놓고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있었고 마침내 대학원에 입학해 그리웠던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직 본가에 있는 내 책상 서랍에는 처방받고서 손도 대지 않은 한달치분량의 약이 쌓여있다. 언젠가 다시 증세가 심해지면 꺼내먹을 생각으로 그리고 이제 더이상 약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이 병을 견뎌내기로 다짐한 순간부터 나는 그 약봉투를 고이 모셔놓았다.
사실 혼자만의 힘으로 견디고 이겨낼 수 있다면 더이상 병이라고 부르기 뭣한 것일지도 모른다.
익숙했던 학교 기숙사로 돌아오고 꿈에 그리던 사역을 시작했다고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바라고 기대했던 것은 현실과는 달랐고 나는 누구나 그렇듯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나를 가장 힘들게한 병의 원인 곧 사람 관계에서 나는 여전히 큰 난항을 겪고 있다.
이제는 더이상 약을 먹고 있지 않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프다. 따가운 말과 눈총 그리고 냉랭한 태도와 무관심. 건강한 사람이면 그저 흘려보낼 수 있는 것들이 어느새 내게는 크게만 다가왔고 나는 현실의 벽 앞에서 다시 병원 치료를 시작해야하나 고민에 빠졌었다.
가슴은 한켠을 끝에서부터 천천히 저미는듯한 숨막히는 아픔이 아침부터 밤까지 나를 괴롭힌다. 오늘은 참다가 버티지 못해서 밖으로 뛰쳐나와 가까운 카페를 찾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지나치는 바람을 느끼며 여전히 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생각으로 외로움을 잠시나마 잊으려고 애쓴다.
잠못드는 밤이면 눈가가 헐도록 눈물을 흘리고 이리저리 뒤척이던 날들을 보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몇번이고 잠에서 깨어 식은땀을 흘리다가 다시 스스로를 원망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야만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르며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이젠 소속이 생겼고 할일이 생겼다. 비록 그곳에서마저 나를 괴롭히고 외롭게하는 이들이 있어 힘들긴하지만 당장 나를 가장 어렵게했던 문제들은 해결된 셈이었다. 이제 스스로 이 세상의 구성원이 되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사랑을 전하려 신학함의 길과 사역의 길을 선택했다. 언젠가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했던 그날 나를 다시 일으키고 살게한 것은 사랑이었다. 그외에는 그 무엇도 세상을 포기하려는 나를 붙잡아둘 수 없었다. 그것이 나의 부르심이었다. 이제 더이상 누군가가 외롭게 죽어가지 않게하는 것. 거창하지도 멋있지도 않지만 나는 그것을 내 평생의 소명으로 삼았고 내 신학의 언어로 삼았다.
이제는 약을 먹지 않는다. 여전히 아프고 간헐적으로 주저 앉고싶은 충동이 무섭게 찾아오지만 나는 약을 먹지 않는다. 여전히 세상은 아프다. 누군가를 아프게하는 이들도, 누군가에게 아픔을 겪는 이들도 전문가의 치료가 시급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곳을 찾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런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맑은 정신으로 집중하고 싶은 일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루게 짧게만 느껴지는 요즘이다.
여전히 세상은 아프다. 그럼에도 처방할 수 있는 약이 많지 않다. 나는 그런 세상에 사랑을 전하는 사역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