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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무대를 준비하며

by 광규김

오랫동안 함께했던 공동체가 있었다. 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함께해왔고 나는 나의 청춘과 사랑을 바쳐 그들을 섬기고 사랑했다. 깊게 사랑한 만큼 마음은 커졌고 이별이 다가왔을 때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우리는 성숙해졌다. 끝이란 언제나 익숙해질 수 있는게 아니었다. 가슴은 아려왔고 손은 갈 곳을 잃고 떨리고 있었다. 마음은 정돈되지 않았고 노래를 불러야할 목구멍에서는 울음이 터져나올것만 같았다.


그런 내게 마지막을 장식할 무대를 준비해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다. 나는 이미 저번 기회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끝냈으나 이번에는 한해를 마무리지으며 수능이 끝난 학생들을 위로할 수 있는 곡으로 준비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나오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당장 노트북을 켜고서 악보 목록을 살폈다. 그리고 악보집을 펼쳐놓고서 어떤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음악이 가질 수 있는 설득력과 메시지 전달력을 통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그들과 나의 언어 사이에서 흐르게될 사랑의 기류와 끝이라는 아쉬움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그렇게 한참을 고민했다.


2주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내겐 충분히 연습하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생각하지만 나는 곡을 정했다. 내가 받았던 위로와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들을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비록 그들은 나를 잘 알지 못하고 나 역시 그들을 다 알지 못하나 나는 가난한 심령으로 그들을 섬기고자 했고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모아 나의 마지막 무대를 꾸려나가기로 했다. 많은 이들이 이 무대를 도와주기 위해 모이고 있다.


최종 후보에 오른 곡은 두개였다. 내가 가장 힘들때 위로가 되어줬던 노래들을 골랐다. 이것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이것으로 그들을 위로하고자 했다. 끝을 향해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음과 나의 손을 꼭 잡고 가달라는 애원. 그것이 내가 마지막 때가 되어 부르고 싶은 노래였다.


몇년전 우울증이 가장 깊어졌을 때 불렀던 노래는 이제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내가 울고 싶어서 찾았던 곡은 이제 누군가 소리 죽여 울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만들어주고 싶은 마지막 무대였고, 최후의 공연이었다.


이제 나는 그들을 볼 수 없기에, 그들도 나를 찾을 수 없기에 아쉬움이 남지 않을 곡들로 그들의 마음에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천천히 흐르지만 깊이가 있는 강물 처럼 밀려 들어가는 감정의 흐름이 서로의 안에서 굽이치며 흐르고 있다. 그 위에서 노래를 하는 것이 내가 만들어줄 수 있는 마지막 추억이라 생각했다.


자. 이제 오랜 만남의 끝이 다가온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장식할 것인가? 부디 슬프지 않았다면 좋겠다. 마지막은 아픔으로 남겠지만 기억은 사랑으로 남아 살아갈 힘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것이 사람의 만남이 갖는 가장 큰 의의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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