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꿈꾸기 위해서
[작심삼일을 수십번]
3월의 첫주가 지났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2022년은 여전히 전염병으로 인해 위축된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3개월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 한국은 대규모로 발생한 산불과 대선으로 이곳 저곳에서 부산스럽다. 세계는 어느덧 코로나의 고통을 이겨내고 있는듯 보이고 있으나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인하여 혼란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다. 작심삼일을 열번씩 세번을 반복할 수 있었던 길다면 길도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즉 한번의 다짐을 아흔번 할 수 있었던 시간이다. 우리는 아흔번 이상의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아흔번 이상의 실패와 성공을 반복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얻었었다. 역사는 반성과 변화를 위해 존재한다. 올해의 역사도 어느덧 수십일이 쌓여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몇해를 보내고 살아왔다.
한해의 끝을 정리하며 새로운 한해를 받아들일때 많은 이들은 다짐을 하고 목표를 세운다. 건강을 위해, 돈을 위해, 어떤 목표를 위해 우리는 결심을 하고 계획을 세운다. 필자의 목적은 늘어난 체중을 줄이고 새로운 직장에 잘 적응하고, 성실히 대학원 공부에 집중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대로 코딩과 음악을 공부하며 자기계발에 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나의 올해 목표이자 다짐이었다. 그랬었다.
부끄럽지만 위의 것들은 전부 지켜지지 못했다. 아직도 레슨을 받을 곳을 구하지 못한 상태로 음악은 손을 놓고 있다. 대학원은 지루한 학기의 시작과 함께 교재를 손에 놓고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새로 들어간 직장은 전혀 적응을 못하고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악덕 상사를 만나 많은 상처를 받고 고생을 한 끝에 최대한 빨리 그만두고 정리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코딩은 그렇게 마음 속에서 잊혀져갔고, 체중은 줄지 않고 건강은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다.
올해는 우울증 약을 끊고 병원에도 가지 않으려했다. 그러나 나는 정신적으로 거의 한계까지 몰리고 있으며 전에 있던 강박증상과 우울증은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말이지 무엇하나 계획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더러는 그것을 인생의 묘미라 재미라 말할 수 있겠지만, 가까이서보는 나의 인생은 점점 비극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당신은 어떤가? 올해의 계획을 잘 지키고 있는가? 작심삼일을 수십번이고 반복할 수 있는 시간이 흘렀다. 당신은 무엇은 목표로했고 무엇을 노력했는가? 많은 변화를 꿈꾸고 계획했지만 당신의 삶을 작년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당신의 마음가짐은, 당신의 습관은 이전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당신이 새롭게 체화한 것이 있을까? 아니면 어떠한 변화도 만들고 있지 않으면서 막연한 목표와 다짐만 세우며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단절과 변화]
과거에 대한 포기 없이는 변화를 꿈꿀 수 없다. 이것이 내가 오늘 하고 싶었던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조심씩 때로는 가파르게 세상은 변한다. 문화도 인식도 변화하고 생활의 양식도 인간 관계도 변화한다. 아무리 보수적인 사고관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변화는 막을 수 없다. 당장 코로나를 겪기 이전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달라져있다.
많은 다짐과 목표는 과거의 자신을 극복하며 미래를 바꾸고자하는 것을 노리고 있다. 조금씩 무엇하나라도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지 않는다면 현재도 미래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리고 그것은 번거로움을 요구한다.
내게 좋았던 것. 그것이 진짜로 내게 이로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편하고 즐겨왔던 것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고통을 감내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하나 바꿀 수 없다. 조금씩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익숙해져야한다. 거기서 또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려면 또다른 변화와 더한 고통을 겪어야한다. 그것이 무조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변화를 꿈꾼다면 나태한 과거와의 작별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때문에 지난 수십년 그리고 올해 3개월동안의 나는 그러한 독기가 부족했다. 각오가 없었고 간절함이 부족했다. 변화하고 싶었을뿐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변화를 해야만 나아갈 수 있는 것을 알았지만 계속에서 안락함에 몸을 맡기며 정신을 죽이고 조용히 폐인이 되어갔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사람이 어떻게 폐인이냐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볼때 나는 가라앉은 방주 위에 누워서 현실의 위기로부터 눈을 감은채 기도나하고있는 무지성한 광신도와 다를 것이 없었다. 기도는 간절한 마음으로 신께 드려야하는 것이 맞지만 신에게 모든책임을 전가한채로 자기 위안이나 삼고있는 한심한 종자는 되지 말아야했다.
이젠 과감해지려고한다. 오늘은 대단한 교훈도 감동적인 묵상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저 또한번 과거의 자신과 작별할 수 있기를 다짐하고 소망하며 글을 한편 쓰는 것을 시작으로 무료하고 무의미한 일상에 변화를 가져오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