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존무기
개체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결국은 죽음과 부패의 순환과정을 거친다. 객체의 단위에서는 스스로의 안위만 신경을 쓰면 된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넘어갈수록 개인이 강해서 살아남는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이미 모두가 알고있지만 진화는 진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종단위에서 인간은 강했기 때문에 살아남은게 아니었다. 호모사피엔스가 오늘날 지상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힘이 아닌 문명의 힘이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적자생존은 약육강식을 통한 개체의 생존이 아닌ㄴ 유전자 보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때 사회성은 인간의 생존 전략으로서 약자까지도 살려서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여 종보존과 번식에 이용했다. 때문에 사회의 구성원인 약자가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힘이며, 인류문명의 강함의 척도였다.
때문에 더 강한 문명, 더 발달된 사회일수록 약자가 살아남기 좋은 사회를 의미한다. 사회적 안전망이야말로 인간 스스로가 부여한 종의 존엄성이며, 인간의 강함이 개체의 완력의 수준을 이미 넘어섰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에서 호모사피엔스 한명은 최상위 포식자가 될 수 없다. 고립된 자연상태의 현대인이 아마존 밀림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란 지극히 희박하다. 고립은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적이며, 문명인은 여전히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서 군림한다. 약자가 모여 생존 가능성을 최대화한 것이 바로 인간의 전략이며 인간의 진정한 힘이다. 사회에는 투쟁과 협동이란 구성요소가 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투쟁과 갈등이야말로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 생각해왔지만, 그 끝 없는 싸움 속에 협동 또한 있었기 때문에 인간 사회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인간의 존엄은 자연이 주는게 아니다. 인간이라는 말 그대로 사람은 사람 사이에 있을 때라야 그 권리와 존엄성을 인정 받는다. 인격을 인격으로 인정해주는 것은 오직 동등한 인격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가 인간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인간으로서 존엄한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기까지 인간은 싸워왔다. 약자와 함께 살아남고 약자 마저도 살아남게 만들기 위해 투쟁해왔다. 이제는 가치가 전도되어있는 것들이 많아졌지만 나는 여전히 약자에 대한 보호와 포용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