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로 심은 벚꽃에 하늘이 온통 가리워지던 거리를 걸었다. 이젠 다 지나간 봄이 문득 기억 속에서 내게 말을 걸었다.
고개를 돌려 어디를 봐도 꽃이 보이는 계절이 있었다. 머리 위에도, 눈이 맞는 곳에도, 길가에도 꽃은 피었다.
높은 고도에서 살면 이 거리의 향내와는 너무 멀어지게 된다. 어쩌면 성자는 그래서 이땅에 내려오신건지도 모른다.
함께 꽃 가운데로 걷고, 함께 꽃과 눈을 맞추고, 함께 꽃의 향기를 맡는다. 호흡이 희박한 하늘이 아닌 들숨 가득 향기가 스며드는 이 거리를 그는 그토록 원하셨는지도 모른다.
함께함이 희박해질 만큼 고고한 삶을 쫓는 이들이 있다. 얼굴을 마주할 시간도 없이 투쟁 가운데로 몰아넣는 세상이 있다. 성자가 다녀갔을 만큼 아름다웠지만 성자가 다녀가야했을 만큼 우리의 세상은 아픈 것이었다.
그곳에서 잠깐 시간 속에 멈춰서서 삶보다 짧은 꽃의 피고 시듦을 바라보다 떠나면 어떨까? 어차피 이 계절은 끝나고 우리는 이 거리를 지나 목표를 향해 떠나야하지만.
저 여린 벚꽃잎 한 갈래가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 앉으면, 바람이 만들어준 운치에 눌려 긴 숨을 쉬다 떠나도 참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