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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규김 Feb 02. 2022

우울증 치료의 시작은 산책이다.

일단 하루에 체계를 만들어야지

모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처음 진료를 받았을 때의 일이다. 


하루에 30분식 꼭 산책하기로 약속해요


당시 나의 진료를 봐주시던 교수님께 들었던 말이다. 이후 몇가지 질문을 더 받았고 약물 처방을 받은 뒤에야 나는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후 나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과 대화를 할 기회가 생겼고, 우리가 병원에 가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말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것은 수면시간, 생활패턴, 운동여부와 외출 시간이었다. 


우울증을 단순히 울적한 감정이 시도때도 없이 밀려와서 힘들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좀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현상을 완전히 잘못 짚고 있는 그들만의 해석일뿐이었다.


우울증이 가져오는 대부분의 문제는 끝 없는 무력감으로부터 기인한다.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고, 현 상황을 바꿀 의지조차 사라져 공허함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때부터 일상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런 상태로 어찌저찌 병원을 방문하게 된다면 의사 선생님들께 꼭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매일 규칙적으로 밖에 나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 역시 우울증 치료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일상을 만들도 꾸준히 약을 먹다보니 몇가지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우울증에 걸리면 잠이 많아진다. 무의식 중에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모든 체계가 무너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그런 이들을 '아무거라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우울증 극복의 시작이다. 


일상에 루틴을 만들고 체계를 잡는다. 매일 해야하는 과업이 생긴다. 몸을 움직이고 뭐 하나라도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반드시 햇빛을 보고 사람 사는 모습을 본다. 다른 평범한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햇빛을 본다. 세상이 태동하고 계속해서 살아내는 모습을 눈에 담는 것은 알게 모르게 심정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몸을 움직이고,  10분이라도 20분이라도 자신을 사용한다. 점점 녹슬어가듯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뒤집고서 의지를 가지고 작은 목표라도 달성하도록 만든다. 


걸으면 생각 정리도 되고 많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공허한 머릿속과 텅 비어버린 가슴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무엇이라도 좋으니 생각하며 고민하게 만든다. 


산책은 현실 도피 극복을 위한 첫 걸음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그 현실 속에 들어가서 그곳을 누비며 잠시라도 걷는다. 그 안에서 세상의 구성원이 되며 본능은 조금씩 깨닫는다.


여기 있을 수 있겠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사람에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극적이고 거대한 사건이 아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처마에 떨어지는 물이 바위를 뚫고 나가듯 작지만 지속적인 것들이 가져오는 힘은 죽어가는 마음을 살리고 빛이 꺼져버린 사람에게 화창한 내일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증상이 보이는 사람들에게 꼭 두가지 말을 한다. 하나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병원을 방문할 것과 반드시 하루에 한번씩이라도 밖에 나가 산책을 하라는 것이다. 


습관을 만들고 체계를 잡아야한다. 그것으로 일상이라는 것을 만들어 삶의 구조를 다시 짜 맞춰야한다. 지극히 작은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삶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언가를 습관으로 만드는 일은 큰 의지와 많은 시간을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울적하고 슬슬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반드시 밖에 나가 세상을 느끼며 규칙적인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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