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이야기
[약과 상담]
우울증 치료를 받을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두가지 있다면 그것은 약과 상담이다. 사정에 맞춰 병원에 방문하는 주기는 변동될 수 있지만 아예 피해갈수는 없다. 또한 상담은 내담자의 필요에 따라 할 수 있고 안할 수 있지만 우울증으로 병원에 간다는 것은 약을 처방 받으러 간다는 말이라 이해하면 된다.
감정의 기복과 밀려오는 우울감을 더이상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한다고 인정하고서 병원에 방문했다. 그때 처음 만났던 의사 선생님께서 강조해주신 것이 약물 복용의 필요성이었다. 사역을 하다가 보면 이러한 문제를 어떤 영혼이나 영적인 문제로 이해하려는 목회 방식이나 신앙인들을 볼 수 있는데 나는 이를 잘못되었다 말하고 싶었다. 자기 자신도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는 말을 마치 정설인마냥 판단의 잣대로 사용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초에 병원에서 영적이니 뭐니 하는 말이 통할리도 없었다. 누군가의 병을 이런식으로 접근한다는건 신앙이 독실한게 아니라 지성이 갖는 책임을 포기한거나 다름이 없다.
자신의 증상에 대해 대략적으로 얘기하고 나면 아마 당신은 약을 처방 받을 것이다. 약을 먹는다고 해서 기분이 당장 나아지진 않는다. 오히려 졸립고 나른해진다. 나 같은 경우는 2주에 한번씩 병원에 방문 하면서 점차 복용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접근해보자 하셨었다. 4~5년 정도 경과를 지켜봐야하고 증상이 심하고 오래된 만큼 단기간에 빠른 치료를 하는건 기대하기 어려울거란 말을 들었다. 2주 마다 병원에 방문할 때면 약을 먹고 어땠는지를 물어보셨다. 약의 부작용이나 복용 후 달라진 점을 말씀드리는게 중요했다.
[몽롱한 하루가 나을 만큼]
처방약은 내게 늦은 밤을 허락하지 않았다. 잠못들고 눈물 흘리던 새벽은 더이상 나의 하루에 없었다. 죽은 듯이 잠을 잤고 깨어나면 한참을 몽롱한 상태로 있어야했다. 대개 정오가 지나고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뿌옇던 정신이 조금씩 맑아지기 시작했다. 사고하는 일과 글을 쓰고 읽는 일이 중요했던 내게 있어 이러한 치료방식은 전혀 좋을 것이 없다 생각했다. 실제로 치료를 시작하고 얼마지나지 독서량이 눈에 띄게 줄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적어두던 글의 분량과 빈도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다시 약을 먹고 잠에 들기까지 내게 주어진 개인 시간은 사실 없는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긴 시간을 불구하고 치료를 계속 받는 이유는 이런 삶이 이전의 삶보다는 더 나은걸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가 녹슬은 기계 부품 처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뻑뻑한 느낌이 날 때 나는 어떻게는 이겨내려고 머리를 쥐어싸며 고생하곤했다. 하지만 그보다 나는 잠들지 못하는 새벽이 다가오는게 무서웠고, 통제하지 못하는 감정에 사로잡히는게 두려웠다. 몽롱한 하루가 차라리 나을만큼 나의 괴로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정신의학과를 찾는 전도사]
세상엔 나보다 더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내가 병을 드러내기로 결심한 이후로 나를 찾아와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더욱 많아졌다. 측은한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들도 생겼지만, 기댈 곳 없는 마음에 토로할 숲을 찾고자 내게 말을 건네는 이들이 생겨났다. 나는 사역자이지만 병의 치료를 위해 기도하자거나 교회에 나오라는 말은 결단코 하지 않는다. 공동체와 관계가 줄 수 있는 사랑이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들이 생겨나겠지만 반드시 전문가의 상담을 받고 의사 선생님께 찾아가야한다. 내가 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나의 영역과 전문성 안에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아픔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증상이 더 악화되기 전에 가능한 빨리 병원을 찾아가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아픔을 공유했고 숨기지 않았다.
마음이 병든 사역자로 살아가는건 굳센 마음과 믿음이 없다는 비아냥과 비난을 들 수 있다. 마음을 단단하게 먹으라는 배려 없는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사람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공감할 누군가가 있다는건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이 병을 숨기며 아파하는걸 두고 볼 수 없다는 중요한 까닭이 있다.
그날 처음 만났던 의사선생님께서 그러하셨듯 나 역시 이 문제를 영적인 문제로 보지 않는다. 가용한 방안을 도입하여 치료해야하는 병이기 때문이다. 나의 부족함과 아픔을 드러내는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내가 해야할 일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충치도 방치하면 신경치료를하고 더 큰 규모의 치료를 해야하듯 마음의 병도 숨기며 방치할수록 악화될 수 있다. 아픔속에 당신이 신을 찾으며 기도할 수 있고, 공동체를 찾아가 사랑을 받을 수 있지만, 그와 함께 꼭 병원 치료를 동반해야한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