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이야기
13년. 몇 달에 걸쳐 병원에 다니며 정리한 결과 내가 증상을 앓고 있던 기간이 정리됐다. 평생 비염을 앓는 사람은 정상적인 상태를 잘 모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문장이 유독 떠오르던 날이었다. 이젠 나를 정의할 때 이 병을 떼어놓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포기와 내려놓음]
포기와 내려놓음은 다르다. 포기는 단절이지만 내려놓음은 지속을 의미한다. 예전에 설교를 준비하며 내가 했던 생각이다. 포기는 자신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돌아서는 것이고, 내려놓음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서 포기하고 싶다는 변명을 내려놓고서 가는 것이다. 그 길 위에서 겸손하게 때로는 속도를 늦추고 때로는 주저앉아 피곤한 다리를 쉬면서 물가를 찾는다. 교리를 가르치려고 하는 게 아닌 위로와 격려를 전하고 싶었던 내 말에 사람들은 감명을 받았다 말했다.
혼자만의 힘으로 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더 먼길을 가기 위해 무게를 줄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우울증 치료와 극복을 주제로 하는 글에 갑자기 왜 이런 글을 넣었냐면 나는 이 병을 극복할 자신이 없어서 그랬기 때문이다. 너무나 오래 달고 살아왔기 때문에 더 이상 지고 이기는 싸움의 선상에 있다는 게 아님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구조와 환경의 문제로 무력해진 사람에겐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게 해야 한다. 만성화된 마음의 병을 극적인 순간에 변화시킨다는 건 허무맹랑한 바람일 뿐인지도 모른다.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내부에서 당신을 무너뜨리려 하고, 외부에서 당신을 짓누른다면 순응하고 살아야 할까? 마음의 병을 얻었다는 걸 그 싸움에서 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꾸만 강해지라 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한다. 그러면 되는 줄 알고 그러면 나아질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알까? 내가 의사 선생님과 상담사 선생님께 들었던 말은 하나같이 달랐다는 것을
자기가 할 수 있으니 남들도 그럴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태생적으로 차이가 있다. 객체마다 고통과 자극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게 제각각이라는 말이다. 일률적으로 해답을 제시하고 말 몇 마디 해서 나아질 문제였다면 학문적으로 분화될 리도 분야마다 전문가가 생겨날 리도 없다. 개인적인 문제로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단순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이다.
간혹 자신이 공감하고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옆에서 몇 마디 주절 거리면 듣는 사람이 지쳐서 예.. 예 대답하는걸 자기가 잘해줘서 그런 거라 오해하곤 한다. 나도 그런 실수를 범한적이 있고, 그런 이들에게 위로보다 상처를 더 많이 받아 마음을 닫은 적도 있다. 특히나 누군가를 잘 모를 땐 말할수록 실수하고 들을수록 깊어진다.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 비추어 살아가지만 그걸로 타자와 세대를 판단하려는 이들을 꼰대라고 부른다. 자신이 힘든 일을 했다고 해서 다른 이들의 삶에 고충이 없는 게 아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때로는 함구해야 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안타깝고 아파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속이 후련하려고 하는 말은 폭력을 담을 때가 많았다. 내가 해야 하는 말도 내가 하고 싶은 말도 그곳에는 없었다.
[극복하지 못해도 굴복하진 않기를]
내가 어떻게 해서 이겨낼 수 있었다면 병이 되지 않았다. 간혹 내게 마음 단단히 먹고 이겨내라는 사람들에게 내가 했던 대답이었다. 단순히 반발심에 했던 말이 아니라 솔직한 내 상황을 말하고 싶었다. 내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혼자의 힘으로 어째 보려 했던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고쳐진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문제로 아픈 게 아니듯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극복하라 말하지 못했다. 나부터도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옳은 말이라면 내가 했겠지만 치료와 상담을 받으며 들었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선생님도 내게 극복하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아지길 바라셨고 최대한 나를 도와주려고 하셨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신이 약하고 잘못해서 병에 걸린 게 아니고, 당신이 그 문제에 굴복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오랜 시간 동안 병과 함께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쓸 필요가 있을까. 막힌 코가 뚫리듯 한순간에 해결될 수 있지만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꾸준히 치료를 받다 보면 어느 순간 나아져있을 수 있다.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 그런 내면을 품고 숨 쉬며 살아가는다는 게 이미 잘하고 있는 말이란 것이다. 살아가는 것 만으로 당신의 본분을 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하려 하고 있고, 글을 찾아 읽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면 내가 받았던 고마운 말들을 이렇게 갚고 싶다.
이제껏 주변에 그렇게 해준 사람이 많이 없었다면 스스로 한번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괜찮아. 아무나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없어. 그러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마”. 언젠가 상담사 선생님께 들었던 말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문장이었다. 단기간에 극복하려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고생하며 살아왔다. 굴복하지 않고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살다가 언젠가 웃을 일들이 생긴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끝으로 내가 받은 위로가 누군가에게도 울림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그 문말을 남겨 놓겠다.
“오늘도 열심히 살았잖아. 스스로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