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엄마아빠자식 다시는 안 해

평범한 사람의 인생이란 드라마 - 가족

by 장병조

만성 후두염, 안구건조증, 만성 비염, 양쪽 무릎 슬개건염, 십자인대 손상, 양쪽 팔꿈치 힘줄 손상, 허리디스크, 척추분리증, 목 디스크, 고혈압, 서맥(부정맥), 습관성 위염, 오른쪽 다리 깁스 3회 이상, 금니 다섯 개 등등..


이게 뭘까. 일단 종합병원은 아니다. 종합병원에 있어야 되는 사람일 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유전인지, 운동선수로 생활하면서 너무 자신을 혹사시킨 것인지, 체대입시가 문제였는지, 잠을 적게 잔 게 무리가 된 것인지 혹은 모든 것이 누적된 결과인지. 알 수 있다고 해도 중요하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 내 몸은 이런 상태이니까.


하루에 3-4시간만 자는 삶을 3년 정도 살다가 군에 입대했다. 이때까지는 아픈 곳이 많지도 않았고, 있어도 잘 몰랐다.


나는 항상 열심히 사는 게 좋았고 어느 순간부터인지 1등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훈련소에서도 기수 별로 1명씩만 뽑는 '중대장 훈련병'으로 활동했고, 종합 성적 1등으로 수료했다. 솔직히 1등을 하면 편한 곳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질 줄 알았는데, 잘할수록 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곳으로 갈 줄이야. 강원도에 있는 한 특공부대에 선발되었다.


훈련이 많았다. 솔직히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만, 무박 3일 산을 타야 되는 훈련을 한 후에는 매번 컨디션이 최악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변태 같은 나를 더 자극했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열정에 기름을 붓자 강박증으로 바뀌었다. 나는 늘 마음속으로 "그래, 조금만 더 하자"라는 말을 외쳤다. 밤을 새우고 훈련에서 복귀한 뒤 운동을 했고, 책을 읽었다. 밤마다 당직근무 간부에게 부탁해서 남들 잘 때 따로 공부시간을 마련했다. 군에 있는 동안 한국사능력검정 2급을 취득했고, 스포츠경영관리사를 공부했다. 그리고 100권의 책을 읽었다. 심지어 전공 서적 복습도 병행했다. 하루에 4시간만 잠을 잤다.


"지독한 자식, 다른 사람들은 생각도 안 하냐?"


그랬다. 안 했다. 동료들에게는 괜한 비교의 대상이 되어서 미안하지만 나는 열심히 살아야만 되는 이유가 있었다. 반드시 성공해서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승강기가 있는 집에 살아보고 싶었다. 커다란 신발장이 있는 집에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계속 열심히 살았다. 사실, 열심히를 넘어서 스스로를 혹사시켰고, 열정의 불씨는 나를 집어삼킬 정도로 커지고 있었다.


어느 날, 심장이 너무 이상했다. 원래 맥박이 느린 편이긴 했지만, 느려도 너무 느려졌다. 호흡도 제법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의무실에 찾아갔다.

"군의관님 저 맥박이 너무 느립니다. 1분에 30번 밖에 안 뜁니다"

"음.. 사람이 맥박이 느리게 뛸 수는 있는데 30번은 좀.. 기계가 이상한 게 아닐까?"

"(맥박 측정 - 분당 맥박 31)"

"어.. 심각하네..! 국군 수도병원으로 가보는 게 어때, 최대한 빨리 다녀와"

"네.."

심장은 점점 약해지고, 느려지고 있었다. 마치 엔진을 너무 혹사시켜버린 나머지, 엔진이 고장 나서 멈춰버리는 기계 같았다.


사실 심장 말고도 몸 구석구석에서 통증이 자주 느껴졌다. 하지만 "남들도 다 이정도는 아프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그냥 참고 넘겼다. 그래도 전역하기 전에 군 병원에서 최대한 많은 검사를 해보고 싶었다. 체대생에게는 몸이 밥줄이니까. 그래서 할 수 있는 검사는 군대에서 모조리 했다. 안 해준다고 하면 해달라고 매달렸다. 그렇게 병원에 가서 병을 얻어왔다. 부정맥, 디스크, 인대 파열, 충치 등등.


그리고 나의 병원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실 훈련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느라 휴가를 많이 미뤄두었다. 그래서 전역을 두세 달 앞둔 때에 꽤 많은 휴가가 쌓여 있었고, 그것들을 병원과 휴식에 전부 투자했다. 그렇게 수개월을 가만히 쉬었다. 쉬는 동안 운동을 못 하니 근력이 굉장히 많이 떨어졌다. 힘이 약해지고 근육의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니 허리나 무릎, 팔꿈치 같은 관절 부위의 통증들이 급속도로 번졌다. 앉아도 아팠고 서도 아팠고 걸어도 아팠고 누우면 더 아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남들은 몰라도 최소한 나는 전역 후 매일을 고통과 함께 보냈다.


"다른 애들은 매일 즐겁겠지. 부럽다. 다들 여행도 가고 연애도 하네"


정형외과를 다녔고, 1시간에 10만 원이 넘는 운동 재활, 도수치료를 다녔다. 실비 보험이 있다지만 돈이 부담되어서 회복이 조금 늦더라도 주 1회만 방문했고, 체외충격파 치료는 보험이 되지 않아서 받을 수 없었다. 또, 치과에서도 100만 원 이상을 썼다.

"분명히 군대에서는 충치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말도 안 돼. 내 입 속에 금이 다섯 개나..."


이비인후과에 다녔고 여러 가지 약을 복용했다. 위가 아팠고 내과에 다녔다. 그렇게 군에서 모은 돈을 전부다 병원에 내놓았고,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의 손을 빌렸다. 엄마의 일당은 그렇게 내 병원비로 퉁쳐졌다.


"그래... 다 괜찮아질 거야, 의사쌤이 3개월이면 보통 다 낫는다고 하셨어..!"


돈 쓰는 거, 아픈 거, 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 했다. 내 열정이 쏘아 올린 불씨에 많은 것이 타버린 거라고 생각했지만, 금방 꺼질 거라고, 금방 회복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큰 착각이었다.

3개월, 4개월, 5개월. 시간은 흘렀고,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걸까? 20년이란 긴 시간을 운동했는데, 지금은 걷기도 힘들고 하물며 설거지만 해도 팔이 아파서 덜덜거리네. 꼴이 우습다. 이게 내가 그토록 노력한 결과일까?"


숨이 막혔다. 소화가 되지 않았다. 가장 잘하는 게 없어졌다. 내세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졌다. 76kg이던 몸무게는 66kg이 되었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밖은 되도록 나가지 않았다. 이 상태는 약 1년간 지속되었고, 그 와중에도 열심히 살아보자고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이것마저 안 하면 미칠 것만 같아서.


독후감을 쓰고 진로를 설계했다. 알바는 꿈도 못 꿨다. 엄마 카드를 썼고, 한 달에 10만 원 내외로 소비했다. 서점에 다녀오는 교통비 5천 원, 나머지는 책 값. 그리고 서브웨이를 한두 번 정도 사 먹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 이러다 죽을 것만 같아서 모든 걸 내려놓았다. 일주일 정도 쉬었다. 매일 산책과 명상을 했고, 옥상에서 먼 산만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싫었다. 마음속의 강박이 자꾸만 어떤 일을 지시했다. 그런데 삼일, 사일, 일주일이 지나 보니 우울했던 감정도, 답답했던 마음도 조금은 작아져 있었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구나. 열심히 살지 않아도 나는 이렇게 살아 있구나. 그런데 결국 이럴 수 있는 건, 엄마아빠가 내 몫까지 열심히 살아주시는 덕분이겠지"


그리고 밥 먹으면서 엄마한테 이런 얘기를 했다.


"엄마, 미안해. 내가 이렇게 돈을 쓰면 도대체 엄마가 최저시급으로.. 얼마나 일해야 되는 건지 감도 안 온다. 쏘리..!"


그러자 엄마가 대답했다.


"네가 그렇게 쓰지 않으면 엄마가 돈을 벌 이유가 없지, 돈은 쓰려고 버는 거야 아들. 아들은 휴식에만 힘써. 엄마가 꿈을 꿨는데, 너 올해는 집에서 뒹굴거릴 것 같더라고~ 엄마는 다 알고 있었어"


할 말이 없었다. 나의 열정과 노력이 만든 결과물은 결국,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린 것이 아니라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나는 불효자다. 현실은 그저 열심히 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었다. 열심히 한다고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한 세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님의 사랑은 감히 나라는 자식이 갚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내가 열심히 벌어서 엄마아빠가 풍족하게 살도록 해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 그게 가능해질 즈음이면 나에게도 책임져야 할 가정이 생기고 결국 엄마아빠랑 멀어질 거야.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해. 더 빨리, 더 크게 성공해야 해"


늘 막내였던 아들이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면서 무거운 책임을 지고 가려한다는 사실에 엄마아빠는 되려 마음 아파했다.


"우리가 부족함 없이 더 잘해주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네가 철이 들었구나. 미안해"


부모님이 아들에게 바라는 건,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 때로는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그저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게 그나마도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길이었고, 엄마아빠에게 받은 사랑은 내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사실 알면서도 부정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기 살길 찾아가는 것도 바쁘다는 것을 아는데, 그럼에도 부정하고 싶었다. 그날 나는 노트를 꺼내서 적었다.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과 이루고 싶은 것들을 적는, 그 노트에 적었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누가 뭐래도, 다시는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기. 다음 생에는 반드시 우리 엄마아빠의 부모로 태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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