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믿음이 만들어낸 막내

평범한 사람의 인생이란 드라마 - 가족

by 장병조

나는 막내다. 그래 봤자 위로는 누나가 한 명 있을 뿐이지만 어쨌든 귀염둥이 막내다. 1997년 IMF시대에 운 좋게 태어난 축복받은 남자아이. 그게 나다. 사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기형아가 태어나거나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애가 어떻든 내가 잘 키울게요"라며 나를 낳았다. 엄마의 피나는 노력 끝에 나는 2kg의 작은 생명으로 탄생했다.


오랜 기간 바라던 아들이었지만 미숙아로 태어나서 남들보다 약했다. 그러니 얼마나 애지중지 하셨을까. 건강에 나쁜 것 빼고 원하는 건 다 하면서 자랐다. 각별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조금씩 건강해졌고,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 다섯 살부터는 운동을 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운동신경이 너무 좋았다. 비록 팔도 자주 빠지고 관절은 약했지만, 처음 보는 동작을 단번에 따라 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났다. 그렇게 운동에 재미를 느낀 나는 결국 체육계에 발을 들였다.


계속해서 운동을 하다 보니, 신체 능력은 보통의 수준을 넘어섰다. 예상했던 대로 힘도 세졌고 주먹 좀 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2009년 어느 여름, 열세 살, 사고를 쳤다. 남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정도의 비행은 아니었다. 흡연. 그래서 엄마는 교장실에 불려 왔다.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면서.

나는 딱히 혼나지 않았다. 엄마는 오히려 나를 격려하고 믿어주었다.


"엄마는, 우리 집 막내가 그런 것도 해보고 다 컸구나 싶더라. 네가 스스로 잘 선택할 거라고 믿어"


당시의 시대상에 비추어볼 때, 이런 일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용돈을 주지 않거나 외출 금지, 친구들과 거리두기를 시키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나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을 당시 초등학생이던 내가 어찌 알겠는가. 그래서 중학교에 가서도 계속 놀았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하라고도 안 하는 공부는 역시 안 했다. 그렇게 중학교 내내 놀다가 졸업식 날이 되었다. 그날 내 블랙야크 패딩 주머니에는 '말보로 레드' 한 갑과 '마일드 세븐' 한 갑이 들어 있었다. 졸업식은 아무 탈 없이 마무리되었지만 문제는 집에 도착해서 벌어졌다.


엄마는 프라이버시를 상당히 중요시한다. 그래서 평소에 내 주머니, 서랍, 지갑을 절대 열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독 내 패딩을 세탁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내 패딩의 주머니를 열었다.

"아.. 걸렸다", 심장이 마치 두 개가 된 것처럼 쿵쾅거렸다. 3초 간의 정적이 3시간처럼 느껴졌다.

"(.....)"

"아들 말보로가 왜 이렇게 많을까?"

"아 그거 친구 거야 친구 거"

"엄마는 우리 아들 믿어. 네 건강이니까 네가 알아서 잘 선택하겠지~"


그렇게 또 한 번 싱겁게 종결되었다. 그저 사랑만 주고 싶은 막내를 향한 엄마의 마음, 엄마의 믿음에 그렇게 그냥 끝이 났다. 다만, 3년 전과 다른 점이라고는,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생겼다는 점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4지망으로 가게 되면서 원래 어울리던 친구들과 떨어졌다. 그런데 운도 없지. 수능은 당연히 서울 아이들이 가져갈 거고, 내신이라도 잘 따야 되는데, 내신 따기도 어렵게 공부 좀 한다는 학교에 배정되었다. 나는 35명 중에 반배치고사를 28등 즈음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사람이란 게, 공부하는 친구들이랑 만나니까 또 공부를 하게 되더라.


2학년 때는 공부에 불이 붙었다. '경제' 교과목을 공부해 봤는데 너무 재밌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경제 담당이신 덕이 컸다. 오죽했으면 학교에서 선발되어 KDI(경제정보센터)에서 주최하는 경시대회도 나갔을까. 그렇게 자연스럽게 경제학과 진학을 꿈꿨다. 하지만 집과 가까운 수도권 대학교에 가기에는 공부를 너무 못했다. 그래서 입시전략을 세웠다.

"내가 수학은 좀 하니까, 어.. 이번 학기에 수학 과외 받아서 전 범위 끝내 놓고, 3학년 때는 국어랑 영어만 하는 거야"


그리고 그날 저녁,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과외시켜줘. 수학 공부 좀 하게"

"그래 알았어 아들, 엄마가 잘 가르치는 선생님 알아볼게"


엄마는 내가 열심히 할지 안 할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그녀는 오늘도 그저, "엄마는 아들이 스스로 잘할 거라고 믿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 집에 있던 중형차는 낡은 소형차로 바뀌어 있었다. 차를 보고 있자니, 차와 내가 부딪히면 내가 아니라 차가 다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사업이 크게 넘어진 뒤,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집에 세 들어 살았고, 엄마는 양말공장에서, 아빠는 폐기물 처리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형편이 어렵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비록 차도 없고 집도 없지만, 아들에게 투자하는 건 절대 아끼지 않았다. 늘 가장 좋은 거. 아들이 원하는 거.


이렇게 생각해보니 누나는 효녀다. 혼자서 척척 공부했고 미술, 글쓰기,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상도 많이 받아왔으니. EBS로 공부해서 국공립대학교에 갔으니 말이다. 반면에 나는 부모님의 피와 땀이 섞인 돈으로 과외를 받았다. 한 달 과외비를 벌려면 엄마아빠가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옮기고 양말을 만져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솔직히,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었다. 부모님께서 뭘 믿고 날 과외시켜 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날 믿는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그때의 감정을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마음속으로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는 것이다.


"그래 나 막내야. 가족들이 사랑하는 우리 집 막내. 그러니까 나만 믿어. 내가 다 행복하게 해 줄게. 이제 속 그만 썩이고 열심히 살아서 꼭 성공할게"


그렇게 믿음은 막내를 만들었다. 더 나은 사람으로, 더 큰 사람으로.

그저 멋대로 하던 막내에서 책임감 있는 한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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