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엉켜버린 실타래를 푸는 방법

평범한 사람의 인생이란 드라마 - 가족

by 장병조

실타래가 꼬였을 때, 그것도 아주 많이 엉켰을 때, 어떻게 그것을 풀어낼까. 보통이라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볼 것이다. 혹은 가장 끝부분을 찾아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어나갈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에너지의 소모도, 시간의 소모도 너무 크다. 따라서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기 전에 지치기가 쉽다. 또한 우리의 삶에서 시간과 에너지는 늘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잘라내는 것'이 가장 좋다. 상황에 따라서 매몰비용(다시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이 상당히 클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과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매듭을 하나하나 푸는 것은 얼마의 시간을 들여야 성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엉킨 부분을 잘라낸다면, 빠르게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가족, 친구, 동료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과 관계라는 실타래를 만들고 유지하게 된다. 관계라는 실타래는 때때로 엉키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며,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기도 한다. 나에게는 아빠와의 관계라는 실타래가 그랬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맞지만, 너무 많이 엉켜있었다. 그리고 이 엉켜 있는 실타래의 무게가 우리를 힘들게 했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이 실타래를 싹둑 잘라버리기로.


어느 수요일 오후 아빠와 둘이 집에 있던 때였다. 이날은 나의 짧은 25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집에 식탁을 들인 날이었다. 나의 가족은 여러 번 이사를 다녔지만, 집이 항상 좁았다. 그래서 식탁과 침대를 사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가족들이 모두 관절이 안 좋아서 밥상을 쓰는 게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식탁을 집에 들였다. 식탁이 집에 들어옴으로써 의자가 네 개 늘었다. 거실이 가득 차 보였다. 이 말은 즉, 집에 있는 물건들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식탁이 마음에 쏙 들어서인지 정리하는 것도 싫지 않고 괜히 신이 났다.


아빠 또한 식탁이 마음에 들었는지, 새로 산 식탁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소주를 꺼냈다. 아빠가 소주잔을 기울이는 동안 나는 집안 정리를 위해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빠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들, 작은방에 있는 물건 안방으로 옮기는 게 어때? 그리고 작은방에 남는 의자를 넣으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대화가 시작됐다.


"어? 어.. 아빠 그게 좋을 수도 있겠네"

"그래, 근데 일단은 참고만 해. 옮겼다가 이상하다고 다시 옮기려면 일만 커지니까"

"(.....)"

잠시 정적이 흘렀고, 아빠는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아들, 우리 조금 빚지더라도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게 어떨까?"

"그런 얘기는 엄마랑도 해봐야 하지 않아? 안 그래도 나는 엄마랑 아빠가 그 얘기를 좀 나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나랑도 같이 얘기해보고. 그래야 노후 목표도 세우고 서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을 거 아니야"


내 얘기를 듣고 아빠는 소주 한 잔을 들이켜더니, 그건 싫다는 듯 이야기했다.

"아빠는 그런 얘기 못 해. 네 엄마랑 얘기해봤자.. 그건 그리고 엄마 영역이야. 아빠가 얘기해봤자 월권이고 간섭인 것 같다. 아빠가 옛날에 다 해봤는데...-"


나는 그 얘기가 너무 못마땅했다. 과거에는 엄마가 전업 주부였으니 아빠가 그렇게 생각할 만 하지만 지금은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함께 의논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믿었다. 엄마의 집이 아니라 우리의 집이기 때문에 함께 의논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의견을 강조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비록 아빠와 나 사이의 트러블이 예상되었지만, 초고속으로 두뇌를 회전시켰고, 하고 싶은 말을 입 앞까지 장전했다. 기회가 생긴 김에 이사와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평소 마음에 눌러 담아둔 아빠의 노후, 아빠와 아들 사이의 관계까지 얘기하려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아빠 그거 알아? 故이건희 회장이 했던 말 중에 '마누라랑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말이 있어. 그거 내가 진짜 좋아하는 말이야. 그러니까 세상은 항상 변하고, 상대적이라는 거지. 그렇지만 가족은 소중하다는 거고. 내가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도 그거야. 아빠는 스스로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언정,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해. 그러니까, 이사 가는 것과 관련해서는 함께 얘기를 나누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두 번째로, 가족이 소중하다고 했는데, 아빠는 가족보다 남들한테 더 잘하는 것 같아. 그래서 우리 가족은 서운해. 세 번째로..."


그렇게 네 가지나 이야기를 했다. 강한 반박을 예상했지만 꼭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해서 모두 다 해버렸다. 글로 적기 때문에 굉장히 쉬워 보이는 거지, 사실 아빠와 내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강한 자기장이 존재했다. 같은 극을 가진 자석이 만난 것처럼 서로를 밀어냈다. 그래서 이런 말들을 꺼내는 것은 늘 어려웠고, 좋은 대답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야, 너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이나, "꼭 세상을 다 안다는 듯이 얘기하네. 아빠가 너는 겸손해야 된다고 했지."와 같은 말이 되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빠는 변하지 않는 듯했지만 길고 긴 세월에 많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빠가 굉장히 모난 사람일 거라고, 그런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이날의 아빠는 생각보다 더 부드럽게 깎인 어른이었다.



아빠는 말했다.


"그래? 맞아. 아빠도 전부 다 인정한다. 하하. 그런데 아들, 아빠가 말도 좀 들어봐. 아빠가 옛날에는 '우리'라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가족'끼리 화목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거 알지? 그리고 뭐, 솔직히 가부장적인 태도가 있었던 것도 인정해. 고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아서 아빠도 정말 힘들었어. 그런데 말이야, 아빠가 내년이면 육십이야. 이제 은퇴를 해야 될 시기이지. 그래서 뒤를 돌아봤더니 아빠는 집에 돈 벌어다 주는 역할밖에 안 했더라고. 매일 일하고 또 일했는데, 스스로한테 투자한 게 별로 없더라고. 그래서 조금은 무책임하더라도 이제는 조금 내려놓고 싶어. 아빠가 너랑 엄마 다 책임지고 싶은데 이제는 조금 버거운 것 같아. 아빠 하나 책임지기도 너무 지쳐. 아들, 네가 항상 말하듯이 '우리'가 아닌 '나'의 삶을 살아보고 싶구나"


나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정신이 잠깐 나갔다 들어온 것처럼 세상이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왜일까?


아빠의 말투가 익숙하지 않아서?

집이 없는데 아빠가 은퇴한다고 말해서?

아빠가 '우리'가 아닌 '나'를 이야기해서?

자존심이 워낙 강해서 가족들에게 의지하는 것을 싫어하는 아빠가 나에게 힘들다는 것을 털어놔서?

우리가 서로의 문을 닫고 지내는 동안 아빠가 너무 많이 변해서?


답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찝찝하다기보다는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정신이 나갔다가 되돌아오면서 굉장히 맑아진 느낌이었다.


어쩌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이런 거였나 보다. 가족 모두가 '나'의 삶을 사는 것. '우리' 속에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게 아닌, '나'라는 사람이 모여서 '우리'를 만드는 것. 조각난 하트들이 모여서 하나의 하트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온전한 하나하나가 모여 사랑이 되고 가족이 되는 것. 그게 내가 원하던 '변화'였다. 아빠는 정말 마누라랑 자식 빼고 다 바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한 번의 대화를 통해서 무거웠던 관계가, 꼬였던 실타래가 풀려버린 것 같았다. 아니, 끊어져버린 것 같았다. 마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게 된 것 같았다. 평소 아빠를 불편하게만 생각해왔던 마음이 한순간 전부 사라졌다.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맞아. 바로 이거였어. 나는 항상 아빠가 예전의 아빠라고 생각했고, 꼬인 실타래를 풀어내려고만 애썼어. 그렇게 남아 있는 실타래는 보지 못하고 엉켜 있는 부분에만 계속 집중했던 거였어. 오히려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 사람은 나였구나. 그런데 오늘 그 실타래가 끊어져버렸네. 우리 둘이 가위를 잡고서 싹둑 잘라버렸지. 과거는 이제 없는 거야, 있긴 하지만 오늘과는 따로 떨어진 거야. 우리의 실타래는 오늘부터 다시 시작인 거야."


그랬다. 10년이 넘게 꼬여온 실타래를 푸는 것보다, 그것을 잘라내고 남은 실타래를 의미 있게 쓰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었다. 물론 앞으로 우리가 함께할 세월이, 우리에게 남은 실타래가 길다는 가정이 있어야겠지만.


어쨌든 나는 무거운 과거를 잘라버렸다는 것에서 만족스러웠다. 우리에게 얼마의 세월이 남아 있든, 새로 만들어갈 미래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앞으로 제가 더 잘할게요 아빠. 아니, 이제는 새아빠와 새아들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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