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의 인생이란 드라마 - 가족
25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아빠와 나의 관계는 꼬일 대로 꼬여버린 상태였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늘 가치관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고, 언성이 높아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런데 얼마 전, 집에 식탁이 새로 들어온 날, 아빠와 뜻밖의 깊은 대화를 나누었고, 엉켜버린 둘 사이의 실타래가 모두 풀려버렸다. 이후로 나는 마음이 굉장히 홀가분해졌고, 이 상황을 엄마에게도 설명해 주었다.
"엄마. 어제 내가 아빠랑 얘기를 했거든? 아니 그런데 둘이 안 싸웠다? 그것도 두 시간? 세 시간은 얘기한 것 같아. 아빠가 뭔 일인지 내 얘기도 잘 들어주고, 뭐.. 안 하던 얘기들도 막 하고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나도 또 아빠 얘기 잘 들어줬지. 살다살다! 별 일. 근데 왠지, 둘 다 조금 뭔가.. 성장한 것 같지 않아?? 그치. 쫌 으른같아졌지"
엄마는 가만히 듣더니,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다 컸지~ 아빠도 너랑 똑같이 애였어. 엄마는 항상 애를 셋 키우는 느낌이었다니까"
그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금 긴 이야기를 덧붙였다.
"아니, 지금도 근데 애야, 애~ 그러니까 앞으로도 더 많이 성장하겠지! 음, 아빠는 말이야, 열심히 살다가 보니 어느 날 엄마와 만났고, 아들과 딸이 태어나서 아빠가 된 거야. 항상 어른이었던 게 아니고, 항상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너의 얘기를 들어주고 싶어도 맘처럼 되지 않은 날이 많았을 걸?! 그리고 분명히 다른 사람에게 기대고 싶을 때도, 힘이 들 때도 있었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지. 지금까지는 아빠도 어렸고 너도 어렸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들도 많이 컸잖아? 그러니까 네가 가끔씩은 아빠의 버팀목이 되어줘. 사실 모든 사람들은 어쩌다가 어른이 돼. 태어날 때부터 어른인 사람도 없고, 스무 살이 딱, 된다고 어른이 되는 사람도 없어. 그렇기 때문에 어른이라는 사람들도 어쩔 때 보면 아이 같은 구석이 있는 거야. 그렇게 계속해서 성장하는 거지"
엄마의 얘기를 듣고 나니 머리가 띵했다. 나는 생각했다.
"오늘도 한 방 맞았네. 엄마의 이래서 엄마구나..."
어쨌든, 이 말을 듣고서 내 머릿속은 '어쩌다 어른과 진짜 어른'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어쩌다 어른. 그래 우리는 모두 어쩌다가 어른이 되는 거지 뭐. 사실은 어른이 아닐지도 몰라. 세상이 우리를 어른이라고 규정할 뿐, 실체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 세상에 진짜 어른이 존재하기는 할까?"
그렇게 나는 진짜 어른과 어쩌다 어른에 대한 깊은 사색에 빠졌다.
사전에서 '어른'이란 다 자란 사람이나 나보다 윗사람을 뜻한다. 자 그럼 여기서 잠깐. 생각을 좀 해보자.
키가 다 자랐을 수는 있다. 그런데 마음이 자라는 데 끝이 있을까?
나보다 윗사람이 어른이라는데, 그럼 윗사람과 있는 나는 어린 사람이 아니던가?
나의 눈에 이 말은, 세상에는 진짜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신체적으로 다 자란 사람은 누구나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도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어른임과 동시에 어른이 아닌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다들 어린 시절 한 번쯤은, 스무 살의 내 모습, 서른 살의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십 년 후의 나에게, 이십 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써보기도 하며, 부모님과 선생님,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어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시도하기도 한다. 그날을 다시 떠올려 보면, 그때 우리가 상상했던 어른은 진짜 어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막상 스물이 되고 서른이 되어 현실과 마주해 보면, 우리는 늘, 생각했던 어른보다는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에 가깝다.
나이가 지긋한 어른이 조금 어린 사람을 보면서 정말 어리다고 말하곤 한다. "내가 네 나이만 됐어도"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어느 날, 지나고 나서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왜 이렇게 어렸었나 싶다. 어렸을 때 엄마아빠를 보면 마치 굉장히 강한 슈퍼맨과 원더우먼 같지만, 다 크고 엄마아빠가 되어 보면 나도 늘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 때때로는 너무 힘들어서 어린 아이처럼 울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내 옆에는 나보다 한참 어린 아이가, 진짜 어린 아이가 두 눈을 말똥말똥 뜬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이런 게 바로 어른의 삶이다. 어른이면서 동시에 어린 삶. 우리가 상상했던 것만큼 강한 진짜 어른이 된 게 아니라, 어쩌다 어른이 되었지만, 강해야만 되는 삶 속에 놓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더 외롭고, 더 서럽고, 더 기대고 싶고, 더 힘들다. 그래서 가끔은 부모님의 품이 너무 그립고, 그 길고 긴 세월을 견뎌낸 부모님이 존경스럽게만 느껴진다. 결국 엄마아빠도 어쩌다 어른이 되었겠지만, 자식들 앞에서 만큼은 진짜 어른이 된다. 그게 부모님의 곁에 서면 우리가 늘 어린 아이가 되어버리는 이유이다.
어쨌거나 나는 "진짜 어른은 없나?"라는 내적 의문에 대해서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진짜 어른은 이 세상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자타공인 진짜 어른은 없었다. 직감적으로 "와! 이 사람은 진짜, 찐 어른이네!"라는 생각이 들게 한 어른 조차 없었다. 내가 겸손하지 못하거나, 그 사람들에 대해서 잘 파악하지 못했거나, 이런저런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그런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다. 오직 책에서만 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나의 귀납법에 따르면, 진짜 어른은 없다.
진짜 어른은 그저 우리가 추구하는 대상일 뿐이다. 마치 행복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어른'의 삶에 최대한 가까이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로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리하여,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7계명을 작성하게 되었다.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7계명]
1. 어쩌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인정)
2.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어린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기(자아탐색)
3. 내면에서 들려오는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바람직한 방식으로 표출하기(사회화)
4.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을 삶에 적절하게 녹여내기(지혜)
5. 내면이라는 그릇의 크기를 계속해서 성장시키기(성장)
6. 항상 그릇을 비우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기(포용)
7. 나의 입장이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 배려하기(배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 갖추어야 할 일곱 가지 조건이다. 이것들은 최소한의 조건이면서도 많은 내용을 폭넓게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사회화를 위해서는 대인관계 능력이 필요하고, 지혜로운 행동을 위해서는 때때로 지식이 필요하다는 사실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까지 하더라도 진짜 어른이 될 수는 없다. 일찍 알아차린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것들은 정량적인 수치로 표현되거나 완성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즉, 일곱 가지를 모두 갖추지 못해서가 아니라, 가지고는 있지만 끝이 없어서이다. 경험치가 무한대인 게임과 같다. '만랩'이라는 것이 없다. 그렇지만 만랩이 없는 세상에서도 다른 사람보다 레벨이 높을 수는 있다. 궁극적으로, 진짜 어른은 될 수 없지만, 더 큰 어른은 될 수 있다.
만약 친구에게, 선후배에게, 자식에게 혹은 부모에게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 더 큰 어른의 역량을 갖추고자 힘써보는 것을 추천한다. 더 큰 어른이 되어서 배려하고, 포용하고 때로는 기댈 곳이 되어주고, 도움을 준다면, 때때로 그들은 당신이 진짜 어른이라고 느낄 것이다. 마치 엄마아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