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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겸 Jul 05. 2017

자신이 원하는 삶은? - VISION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인생을 살고 있는가? 내 삶이 내 삶 같지 않은가? 이렇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가 본인의 기준으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의 가치와 원칙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대부분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이 의식적으로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가치와 원칙은 대부분의 경우 살면서 타인의 기준에 따르다 보니까, 경험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하다 보니까 만들어진 것이다. 삶이 고통스럽고 마음에 안 든다면 이유는 거기에 있다. 많은 경우 우리가 자신의 룰이 아닌 타인의 룰에 따라서 살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느라, 교육 제도의 룰에 따르느라,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느라, 자신의 진짜 자신의 기준은 무시되고 잊혀 간다. 우리는 우리의 기준을 따라야 만족스러운데 타인의 기준을 따르니 힘들 수밖에 없다.


여담이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타인들의 가치와 원칙들 또한 대부분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이 많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쉬운 방식을 추구하고, 상황에 대한 쉬운 해석을 하다 보니 그것들이 점점 퍼져나가고 굳어져서 문화적인 현상이 된다는 점이다. 그런 원칙들이 옳다는, 심지어 조금이라도 효과적이라는 이유조차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믿음 체계로 어떠한 의심도 없이 따른다. 그리고 고통받는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게임을 하는 것을 보자. 게임에 투자하는 시간에 관계없이 많은 학부모들과 기관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공부 이외의 행위에는 죄책감을 느끼도록 한다. 왜 노는 것이 문제인가? 다양성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원칙들을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보고 이해하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 어떤 점에서 잘 못된 것인지 탐구해서, 결과적으로 이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다. 보통은 그냥 그렇게 들었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러면서 그것이 자신의 원칙인 줄 안다. 그 원칙의 합리성에 대해서 한 조각도 생각해 보지 않고 그냥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혹은 다른 이익을 위한 핑계로 이러한 이유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설령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자신의 원칙이지 자식의 원칙은 아니다.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이러한 문화 속에서 자란 학생은 이러한 행위들에 있어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죄책감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것들이 지속되면 사회적으로 휴식과 즐거움은 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나 원칙들은 아주 많다. 교육을 받을 때는 왜 조용히 앉아만 있어야 하며, 매력의 척도는 왜 돈이나 외모가 되어야 하며, 우리는 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회사에서는 왜 말도 안 되는 룰들이 지켜지고 있는지 등 자신이 만들고 선택한 가치와 원칙도 아니면서 믿고 따르는 것들이 많다.(이러한 기준들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무분별하게 따르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자신이 스스로에게 맞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본인의 기준으로 살기로 결심해야 한다. 자신의 가치와 원칙을 선택하고 삶을 되찾아와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우리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것은 착각이다.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선택한다는 것은 우리의 내부 시스템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믿음들을 선택하지 않았다. 타인의 기준에 따라 선택을 하는 것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인가? 그리고 자신이 무엇인가를 원하지만 행동이 힘들다면 그 무엇인가도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타인의 기준, 가치와 원칙을 따라 만들어진 내부 시스템을 따른 결정이 었기 때문에 실행이 힘든 것이고 결국은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고,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의 기준을 선택하고 거기에 맞게 살아야 한다. 다이어트를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을 보면 원하는 것이 없고, 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원한다고 말할 만한 것이나, 꿈이라는 것의 표준이 외부의 기준에 맞춰져 있다 보니까,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들은 이야기할 수 없고, 스스로 무시하고, 억압하며 , 점점 잊힌다. 자신이 원하는 이상이나 꿈같은 것들은 사회적으로 기여를 해야 하고, 멋있어야 하고, 다른 기타 등등 이상한 기준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런 것들은 다 욕망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 기준이라는 것이 멍청한 사회, 문화적 기준으로 자리 잡아버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고 숨기고, 버려 버린다.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섯 가지 니즈 중에서 중요함과 안정의 니즈를 최우선으로 추구한다. 사회적으로 안정과 자존심 같은 가치가 우선적으로 추구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내 꿈이 멋지지 못하다는 것은 어떤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하는가? 그리고 작은 꿈이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한 내 능력이 무시당할 것 같다면? 자신의 가능성이 폄하된다면? 이러한 방식으로 꿈이나 이상을 통해서 자신의 니즈에 결핍(자존심이 상하는)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은 너무나 많다. 중요함의 니즈는 많은 경우 비교를 통해서 충족되기 때문이다. 이런 장애물들을 넘지 못한다면 꿈을 이야기하고 이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고통이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중요한 점은, 누군가 꿈이 없고 원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스스로가 외부의 기준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준에 부합할 수 없기 때문에 꿈도 없고 원하는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자신의 기준을 따른다면 남들이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중요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남들이 무시하니까 꿈을 포기할 것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너무 세속적이고 남들의 기준에 맞지 않으니 포기하고 원하지 않는 삶을 살 것인가? 다른 사람들의 가치와 원칙은 존중해 줘야 하고, 배울 것이 있는지 참고해야 하는 것이지 자신의 가치관을 버리면서 까지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준 - 믿음들 그리고 가치와 원칙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런 후에 목적에 맞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스스로의 기준을 다시 세우고 거기에 맞는 사람이 되면 된다. 사람이 바뀌면 행동은 따라온다. 그리고 만약 나중에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살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오거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다시 자신을 되돌아보며 비전과 가치 원칙 등을 검토하면 된다. 사람은 성장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어 비전과 가치관도 성장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목과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요점은 이렇다.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준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기준을 되찾고, 그 기준을 더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가치와 원칙을 만들기 전에 미래의 인생에 대한 비전을 그려보고 목표를 정해야 한다.  



비전 찾기

비전을 찾기 위해선 소스의 수레바퀴를 참고하면 좋다. 소스의 수레바퀴는 현재의 자신을 평가하기 위해 소개했지만 인생의 비전을 만드는 것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현재와 미래의 이상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다.


1.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영역을 정한다.

7-10개 정도의 영역을 정한다. 몸,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영역, 이성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사회적 관계, 직업적 영역, 돈/경제, 인간적인 완성/영적인 부분 등에 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2. 각 영역별로 궁극적으로 10점의 모습은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10점의 모습이 우리 삶의 비전이다. 아무런 제약 없이, 가족을 위해서도 아니고, 사회적 기준을 위해서도 아니고, 누군가의 압력 때문도 아니고 스스로를 위해서 자신이 진짜 원하는 모습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적어보자.

아이들처럼 아무런 제약 없이 생각해 보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한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3. 내가 꿈꾸는 모습 - 비전을 적었다면 이젠 그 목적을 적어보자.

나는 왜 이 영역에서 이러한 모습을 꿈꾸는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무엇인가를 바란다면 그것이 나에게 뭔가를 주기 때문이다. 내 비전의 목적은 무엇인가? 만약 경제적인 영역에서 100억을 원한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적어보자. 인생에 100억이 있어야만 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4. 비전을 정리해두자.

원하는 것을 알았다면 정리해두자. 자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인쇄해서 벽에 걸거나 책상에 두고 봐도 된다.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주 보면서 기분 좋은 느낌을 느껴보자.



우리가 꿈과 비전을 이루어 가다 보면 우리는 더 성장하게 되고 살고 있는 환경도 바뀌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니즈를 충족시키는 수준이 변하게 된다. 지금 스스로가 원하는 목표가 다른 사람의 꿈처럼 멋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여섯 가지 니즈를 추구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앞의 네 가지 니즈(안정, 불확실성, 중요함, 사랑과 교감의 니즈)는 생존과 관련된 욕구이다. 이 니즈들은 어떤 형태로든 어느 정도는 충족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삶은 이 네 가지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한 삶이다. 여기서 생각해보자. 만약 자신이 경제적으로도, 인간관계에서도, 건강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안정을 느끼고, 원하는 여행도 다니고, 레저도 즐기며 다양한 인생의 즐거움도 느끼고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자신도 존중해주며 원하는 만큼의 중요함의 니즈가 충족되며 정말 사랑하는 가족들과 행복을 누리고 원하는 인간관계 속에서 사랑과 교감의 니즈를 충분히 충족시키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네 가지 니즈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계속 안정을 찾고 자존심을 찾을 것인가? 그럴 이유가 없다. 그때부터는 타인을 위해 무엇인가를 더 하고 싶을 것이고 - 기여의 니즈, 어떤 면에서든 더 성장하고 싶을 것이다. 원하는 니즈를 채워나가다 보면 자신의 꿈과 비전도 거기에 맞게 바뀌어 가는 것이다. 자신의 기본적인 니즈도 채우지 못하면서 성장과 기여를 꿈꾸기는 힘들다. 따라서 바람직하게 자신의 니즈를 추구해 나가면 결국에는 사회적인 기준에서 이상적이고 모범이 되는 꿈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 이제는 비전에 맞는 새로운 가치와 원칙을 만들어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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