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흔하게 볼 수 없는 우리를 당신이 갑자기 마주할 때 대처할 수 있는 자세

by 민아해

길을 가다 발달 장애인을 만나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귀하디 귀한 우리 아이들이다.






나는 정작 내 아이가 발달 장애인이 되기 전에는 발달 장애인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어린 시절, 반에 조금 모자란 듯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냥 친하게 지냈고 - 아무런 사고없이 - 그게 다였다. 조금 불쌍한 친구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좀 너보다 나은 애를 만나라."라며 잔소리하셨다. 이 잔소리는 지금까지 많은 엄마들을 만날 때마다 불변의 잔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많은 엄마들이 자식들에게 하는 잔소리다. 그런데 나는 내 아이가 좀 느리게 가다보니 이 잔소리를 명심하는 아이들에게 우리 아이는 절대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가 되겠구나 하는 허탈감이 들었다.






친정 엄마는 별로 안좋은 습관이 있다. 대중교통을 탔을 때 발달 장애인들을 보면 혀를 끌끌 차는 버릇이다.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도 잘 못 고치신다. 우리 아이가 발달 장애인이 되어도 그건 마찬가지이다. 혀를 끌끌 차는 버릇이 상대방을 보기 싫어한다던가 하는 마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발달 장애인 자녀를 둔 나로서 대중교통을 탔을 때 사람들이 대놓고 "너희를 보고있어!"라고 소리지르고 있는 것 같는 생각이 든다. 심각할 땐 소리없는 폭력처럼 느껴진다. 어느 누가 발달 장애인을 앞세워 나 여기있소라고 말하겠는가.






우리 아이가 7살 때 우리 가족은 크게 교통사고가 났었다. 자동차가 전복되어 나는 전치 4주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었다. 아이가 카시트를 하고 있어 다행히 아이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많이 놀란 상황이어서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었다. 버스나 전철의 끼이익- 하는 소음을 견디지를 못했다. 그 전에는 아무런 문제없이 전철을 잘 타고 다녔다. 사고 이후, 아이는 전철을 탈 때마다 울었다. 차도 교통사고로 폐차되었기에 1년 남짓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했다. 그 때 당시, 아이와 나는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을 들으러 다녀야했다. 그곳을 '센터'라고 많이들 부른다.





어느 날, 전철을 타는데 트라우마를 극복해보자 싶어 전철 맨 앞으로 가서 전철 창 밖을 구경시켜주었다. 역시나 아이는 울며불며 내게 매달렸다. 빨리 내리고 싶다고. 하지만, 서울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센터를 오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연습시켜야 했다. 유튜브를 틀어주며 이어폰도 쥐어주고 별 짓을 다해보았다. 전철 안에서 7살 난 아이가 우니까 모든 사람의 이목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그런데 한 여자 분이 오셔서 "아이가 이렇게 싫어하는데, 내리시는 게 어떨까요?"라고 말이다. 창피했지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전철을 탈 수 밖에 없습니다. 금방 내릴거예요. " 그 여자 분은 공손하게 말씀하시긴 했지만, 무례했다.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냥 안타깝지만 좀 내버려두었음 어땠을까. 그 여성 분은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아 나를 말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발달 장애인을 키워내는 엄마로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연습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 "도와주세요"라고 말을 했다면, 혹은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면 그 즉시 도와줘야 하는 것은 맞다. 그 즉시 선량한 사마리아인처럼 개입해야 하는 것이 맞다. 혹자는 뒤에서 우리를 이렇게 수군거리기도 했다. "아니, 저 애 엄마는 애가 장애인인 걸 인정못하는 거 아니야? 장애인인 걸 빨리 인정해야지." 그럼 나는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도 세상 넓다는 걸 보고 사회에 적응시켜야지요. 그래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속으로 곱씹고 삼켜버린다.





그래서 말이다. 길에서 우리들을 보았을 때는 속으로 응원하면서 가던 길을 가십사 부탁드린다. 대개는 나이드신 분들이 혀를 끌끌 차기도 하신다. 그래도 그냥 질끈 눈을 감고 못본 척 해주십사 부탁드린다. 우리 아이들도 자신이 장애인인 것을 알고 '질풍노도의 시기'에도 그들만의 정체성으로 충분히 힘들어 했고 앞으로도 따가운 시선을 계속해서 겪어야만 한다. 절대로 우리 아이들은 따가운 시선을 모르지 않는다. 사람이면 다 겪는 감정 아닌가.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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