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을 가족으로 지탱하게 해 준 사람은 엄마였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네 명의 가족, 엄마, 아빠, 나, 남동생.
내 기억으로는 우리 가족은 대체로 화목한 가정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고학력자이고 많이 배운 분이었지만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운전을 할 때마다 항상 누군가가 아버지를 화나게 했다.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가 '이 새*',' 저 새*' 욕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일상적이었다.
아버지는 예민하고 통제적인 성격이었다.
공포정치하는 독재자 같다고 생각했다.
소리에 예민해서 밤이 되면 떠들 수도 없었다.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우리는 늘 노심초사하며 조심했다.
아버지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거나 거슬릴 만한 말을 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기분을 망쳐서 집안 분위기가 얼어붙느니
내 기분이 망가지는 게 나은 거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분을 맞추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아버지가 화를 낼 때 영문을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화가 나면 우리를 때리지는 않았지만, 욕을 하면서 주변의 집기를 던져서 망가뜨렸다.
그리고 문을 쾅 닫고는 한동안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화날 때마다 항상 큰 소리가 났고 무서워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우리는 잔뜩 얼었고 그런 일들이 되풀이되며 점점 꼼짝할 수 없었다.
우리 중에 누구도 아버지에게 왜 그러는지 물어볼 수 없었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행동하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우리에게 납득을 시켰던 적도, 사과한 적도 없었다.
시한폭탄 같은 아버지의 분노는 예측불허로 일방적으로 터졌고
대화시도를 할 수 없던 우리는 아무 일 없는 듯이 묵묵히 속으로 답답함을 삭였다.
엄마는 결단을 내리기에는 마음이 약했고 가정불화와 거리가 먼 화목한 집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가족이 유일한 내 편이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살면서 만난 최초의 고난이었다.
10대 때 아버지로 인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왜 싫은지가 내 글감이었다.
내가 우리 가족의 딸로 태어나서 얼마나 불행한지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입으로는 못하는 말들을 글로 풀었다.
나조차 다시 보기 힘든 그야말로 배설하듯 싸지른 글들이었지만 내 숨구멍이었다.
아버지는 화를 낼 때 무안을 줬다.
그건 내가 '나'라는 것을 싫어지도록 만드는 거였다.
34살의 여름,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아버지가 혼자 화가 나서
집기들을 던지다가 내게 모욕했을 때 마음속에 붙잡고 있던 희미한 뭔가가 끊어졌다.
더 이상 아버지의 화난 모습을 참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를 이제 만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그 길로 집을 나왔다.
그다지 사이가 좋지는 않지만 가족이 온전하게 존재하기를 바랐고
아버지를 만나지 않는 게 천륜을 저버리는 불효라는 거창한 생각에 짓눌렸었다.
아버지가 없는 사람으로 산다는 게 세상이 무너지는 일인 줄 알았다.
엄마는 내가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게 항상 막았었다.
'가만있어.', '참아' 이 말들을 늘 엄마에게 들었다.
엄마는 내가 아버지의 기분을 망가뜨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다시 우리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숨 막히는 시간을 보내야 할 테니까.
한때는 엄마가 나를 막는 것과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손을 쓰지 않는다는 것에 화가 났다.
아버지로부터 우리를 구해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지만 그러지 못한 것을 원망했었다.
하지만, 엄마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고통을 받은 사람이었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시끄럽다는 아버지 핀잔 때문에 집에서 노래도 마음껏 부르지 못했다.
엄마는 무서웠던 시간들을 함께 보낸 전우인 동시에 내게 끈질기게 상냥했던 사람이었다.
엄마가 있다는 생각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내가 세상을 등지고 싶었을 때도 슬퍼할 엄마 생각에 그럴 수 없었다.
만에 하나 세상이 돌팔매질을 할 짓을 내가 저질러도 엄마는 면회를 와줄 사람이었다.
아버지로 인해 생긴 심리적 결핍이 컸지만, 엄마에게서 갚지 못할 큰 사랑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마음이 아팠던 일에만 집중하느라 그동안 잘 인지하지 못했었다.
엄마가 내게 보여준 상냥함이 당연한 줄 알았다.
아버지를 욕보이려는 게 아니다.
나의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꺼냈다.
아버지는 내가 집을 나가고 나서야 문자로 사과를 해왔다.
아버지가 내게 보인 모든 순간들이 모두 안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행동과 태도들 때문에 아버지도 고통을 받은 적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등질 때는 그의 모든 면이 싫어서 등지는 것이 아니다.
그가 보인 어떤 면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되었을 때 등진다.
내가 아버지 마음에 드는 훌륭한 딸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움의 감정은 다 타고 이제 재만 남았다.
눈물의 화해를 한다고 해도 지난 시간을 만회할 수 없을 거고
상처받은 것들을 사과받고 싶은 생각도 없다. 억지로라도 바로잡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누구에게도 선택권이 없이 잘못 맺어진 인연이다.
가족으로 만나 서로를 옭아매고 할퀴었다.
아버지도 이해심 많고 의연한 딸을 만났다면 여느 부녀처럼 잘 지냈을 수도 있었을 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동생처럼 의연하게 딛고 잘 지낼 수도 있었을 거다.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거라고 해도 반박할 말이 없다.
그저 여전히 멀찍이 흘러가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