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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기영 Jan 23. 2017

커피가 좋아

아침이면 커피를 마신다. 아니 꼭 마셔야 한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정신이 몽롱해서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는 물론이고 주말에 집에서 쉴 때도 그렇다. 거의 중독 수준이다.


커피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때이다. 그전까지는 어머니께서 금지한 3대 불량식품에 커피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셔보지 못했다. 금지 목록의 나머지 둘인 탄산음료와 라면은 지금도 거의 먹지 않는다. 안 좋은 음식이라고 어릴 때부터 계속 세뇌를 당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 먹기는 하지만 그 횟수가 일 년에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런데 커피는 그 세뇌교육이 무색하게 하루도 안 빼놓고 마시고 있다.  과연 '악마의 유혹'이라 칭할만하다.


학교 다닐 때는 주로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가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친구들과의 수다로 하루를 시작했다. 가끔 레쓰비 같은 캔커피도 마셨다. 학교 앞 커피숍에서 파는 원두커피는 특별한 날에만 마셨다. 소개팅을 하거나 엠티를 다녀오거나 했을 경우가 그 특별한 날이었다.


취업을 한 뒤에도 한동안은 믹스커피나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그게 제일 맛있었다. 2004년 스타벅스에서 카페모카라는 신세계를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프리마와 설탕 맛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카페모카의 풍부한 초콜릿 맛은 정말 새로운 세계였다. 1년 동안 거의 매일 회사 앞 스타벅스를 다녔다.


그즈음 된장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3천 원짜리 점심을 먹고 5천 원짜리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젊은 여성들을 그렇게 부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밥값보다 싸던 비싸던 커피맛을 알던 모르던, 그 가격을 주고 사 먹을 가치를 느낀다면 사 먹으면 된다. 사람에 따라 가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300원이면 먹을 수 있는 자판기 커피가 널렸지만 그 20배 가까운 돈을 주고 더 맛있는 혹은 그렇다고 느껴지는 5천 원짜리 커피를 사 먹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4천 원이면 마실수 있는 소주가 천지에 널렸는데도 불구하고 10만 원이 넘는 양주를 마시는 남자들한테 된장남이라 부르지는 않지 않는가.


그렇게 스타벅스를 통해 고급(?) 커피맛에 눈을 뜨긴 했지만 직접 커피를 내려 먹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아내가 모카포트핸드밀을 구매했다. 귀찮게 뭘 이런 것 까지 구매했나 싶었지만 곧 갓 내린 에스프레소에 빠져 들게 되었다. 원두를 갈아서 모카포트에 넣고 끓이면 에스프레소가 추출되어 나왔다. 작고 간단한 기구에서 에스프레소를 뽑아낼 수 있다니 정말 신기했다. 게다가 갓 볶은 원두를 핸드밀에 넣고 갈 때면 정말 좋은 향기가 났다. 커피 향은 원두를 분쇄할 때가 가장 좋다.


모카포트에서도 그럭저럭 에스프레소를 뽑아낼 수 있었지만 좀 더 편하게 커피를 만들고 싶었다. 때마침 드롱기 커피머신이 세일을 했다. 아주 간단한 기능만 있는 엔트리 모델 에스프레소 머신이었다. 구입해서 아메리카노를 마음껏 만들어 마셨다. 분쇄기는 여전히 핸드밀을 사용했다.


사람 입은 점점 고급이 되나 보다. 좀 더 괜찮은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만들고 싶어 졌다. 그래서 이태리제 란실리오 실비아록키 그라인더 세트를 구입했다. 맛있는 아메리카노와 라테 만드는 연습을 했다. 집에 손님이 오면 카페라테를 대접했다. 더 이상의 커피장비는 필요치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핸드드립을 접하게 되었다. 드리퍼, 서버, 포트를 구입했다. 처음엔 서툴러서 커피가 잘 내려지지 않았다. 드립을 위한 적절한 원두 사이즈를 맞추기도 힘들었고 특히 물줄기를 가늘고 일정하게 떨어지게 하는 것이 어려웠다. 동영상을 보며 흉내도 내 보았다. 역시 연습에는 장사 없다. 자꾸 해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커피 내리기에 익숙해졌다. 나만의 드립 기술(?)을 갖추게 되었고 나름 마실만한 커피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드립 커피를 먹다 보니 아메리카노나 라테류는 자연스레 멀리하게 되었다. 각각의 원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맛을 제대로 느끼는 데에는 드립이 제일인듯하다.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릴 때는 집중을 해야 한다. 적당한 물줄기가 적절하게 부어지도록 온 신경을 모아야 한다. 그렇게 커피를 내리는 시간을 즐긴다.


원두가 부서지며 품어내는 고소한 향이 좋다. 자잘하고 하얀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소리가, 커피가 또로록 떨어지는 소리가 좋다. 쓴맛 고소한 맛 달콤한 맛 과일맛 신맛이 모두 어우러져 느껴지는 커피의 맛이 좋다.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주말의 이른 아침이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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