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종류] 1. 에스프레소로 만든 커피
스타벅스 코리아가 한국 진출 17년 만에 2016년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다른 경쟁 업체들은 많아야 2천억 원 수준인데 1조 원이라니 정말 대단하다. 요즈음은 어디를 가도 스타벅스를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인의 스타벅스 사랑은 남다르다. 어디 스타벅스뿐인가? 우리 회사가 입주해 있는 건물에만 커피숍이 다섯 개가 있고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인 일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이 241잔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커피가 없는 한국인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커피전문점에 처음 갔을 때 매우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뭔 놈의 커피 종류가 그리 많은지. 그냥 믹스커피 아니면 원두커피만 마시던 촌놈한테는 거의 신세계였다. 그 다양한 커피 중에 어떤 커피를 마실 것인지 한참을 고민하곤 했다. 이렇게 카페마다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판매하고 있지만 크게 보면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한 커피와 드립으로 내리는 커피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한국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마시는 커피는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서 마시는 아메리카노이다. 그다음이 카페라테일 것이고, 카페라테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카푸치노도 있다. 사실 둘이 너무 비슷해서 좀 헷갈리긴 한다. 맛도 거의 비슷하고. 둘 다 커피에 따뜻한 우유를 섞은 음료 정도로 인식이 되어 있지만 좀 다르다. 어쨌든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해서 우유를 넣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말이다.
에스프레소(espresso)는 볶은 커피 원두를 갈아서 에스프레소 머신 혹은 모카폿등을 이용해서 추출해낸 농도가 짙은 커피이다. 커피 원액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 것 같다. 높은 압력의 증기를 이용해서 빠른 시간에 추출해 내기 때문에 크레마(crema)라고 부르는 층이 맨 위에 생기게 된다. 크레마는 커피기름이 유화되어서 생기는 자잘한 거품 같은 것인데 이 크레마가 어떻게 생성되냐에 따라 에스프레소가 잘 만들어졌는지 아닌지 여부를 판단하기도 한다.
에스프레소를 그대로 마실 때는 데미타세 (demitasse)라고 하는 작은 잔에 마신다. 조금씩 음미하며 마셔도 좋고 설탕을 넣고 잘 저은 후 "원샷"으로 마시는 것도 맛있다. 크레마 거품 위에 설탕가루가 걸렸다가 서서히 밑으로 녹아들어 가는 것을 지켜보는 건 또 다른 재미이다. 잘 추출한 에스프레소는 쌉쌀하고 진한 초콜릿 맛이 난다. 에스프레소는 보통 한번 추출할 때 투샷이 나오는데, 이 투샷을 한 번에 사용하면 도피오(doppio)라 부른다.
에스프레소의 사촌 격으로 리스트레토(ristrreto)라는 것이 있다. ristrreto는 이태리어로 limitted라는 뜻인데 그 어원처럼 좀 짧은 시간에 추출하는 샷을 말한다. 일반적인 에스프레소가 25~30초 동안 추출하는데 비해 리스트레토는 15~20초 동안 추출한다. 당연히 에스프레소에 비해 양이 더 적고, 좀 더 농축적이고 부드러운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섞으면 아메리카노(americano) 가 된다. 요즈음은 에스프레소 두 잔 즉 투샷을 넣어 주는 곳이 많은데, 연하게 달라고 요청을 하면 원샷을 넣어 물을 섞어준다. 유럽인들이 즐겨 마시던 에스프레소가 너무 쓰다고 생각한 미국인들이 물을 타 먹기 시작한 게 아메리카노의 유래라고 한다.
호주에서 커피숍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호주에서는 아메리카노가 롱블랙(long black)으로 불린다. 이 둘은 동일한 커피인데 단지 뜨거운 물을 섞는 방법에만 차이가 있다. 에스프레소를 뽑아 놓고 그 위에 물을 부은 것이 아메리카노이고 뜨거운 물을 먼저 부어 놓고 그 위에 에스프레소 샷을 넣는 것이 롱블랙이다. 그래서 보통 아메리카노에는 크레마가 남아 있지 않고 롱블랙에는 크레마가 남아 있다.
아메리카노, 롱블랙등과 거의 비슷해 보이는 블랙커피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룽고(lungo)이다. 맛이나 모양이 앞의 두 커피와 비슷하지만 내리는 방식이 다르다.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혼합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에스프레소 샷을 내릴 때 길게 내려서 물이 더 많이 들어가게 하는 방식이다. 즉 에스프레소를 30초 이상 길게 추출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lungo는 이탈리어로 long을 뜻하는 말이다). 이렇게 하면 커피 원두의 모든 성분을 남김없이 추출하기 때문에 아메리카노에 비해 좀 더 쓰고 신맛이 더 강하게 난다.
카페라떼와 카푸치노의 가장 큰 차이는 우유 거품(Milk Foam)과 따뜻한 우유(Steamed Milk)의 비율이다. 스팀밀크 비중이 많고 우유 거품이 적거나 없는 게 카페라떼이고 스팀밀크가 적고 거품이 많은 게 카푸치노이다. 그래서 잔을 들었을 때 묵직한 카페라떼와 달리 우유 양이 적은 카푸치노는 상대적으로 무게가 가볍다.
카페라떼(caffee latte)는 이태리어로 밀크커피라는 뜻으로 유럽에서 아침식사용으로 즐겨 마시던 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에스프레소에 스팀밀크를 첨가하여 마시는데, 미국 스타일은 그 위에 약간의 우유 거품을 얹고 이태리식은 거품 없이 그냥 마신다. 스팀밀크(steamed milk)는 찬 우유에 뜨거운 스팀을 불어넣으면서 교반을 시켜서 만드는데 이때 우유 거품도 같이 만들어진다. 에스프레소 머신에 steam wand라고 불리는 노즐로 스팀을 불어넣는데, 안으로 깊게 담그면 우유가 데워지고 노즐을 우유 표면 가까이에 두면 거품이 생긴다. 커피음료에 따라 필요한 스팀밀크의 종류가 다르므로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웬만한 카페에서는 카페라테를 시키면 라떼아트로 하트나 나뭇잎 등을 그려주는데, 일회용 컵에 담아서 리드(뚜껑)를 닫아 버리면 그걸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리드를 닫은 채로 마시면 맨 위에 올려준 자잘하고 부드러운 거품을 느낄 수가 없다. 그러니 테이크아웃하는 게 아니라면 머그잔에 달라고 해서 마시자. 환경도 보호하고 라떼도 제대로 즐기고 일석이조이니 말이다.
우유 거품을 아주 소량 얹어 마시는 카페라떼와 달리 카푸치노(cappuccino)에는 1/3 가량을 우유 거품으로 채운다. 이때 올라가는 우유 거품은 작고 부드럽고 크리미 한 질감이어야 맛있다. 카페라떼는 대부분의 커피숍에서 그럭저럭 만들어 내지만 카푸치노를 제대로 만드는 곳은 흔치 않다. 몇 년 전에 호주 시드니로 출장을 갔을 때 사무실 옆의 작은 카페에서 마셨던 카푸치노가 내 인생 최고의 카푸치노였다. 그 쫀쫀한 크림 같은 우유 거품에 향긋하고 진한 에스프레소... 출근길 아침마다 그 카페 앞 벤치에 앉아 카푸치노를 즐기며 바쁘게 오가는 호주인들을 구경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잘 만든 카푸치노를 마실 때면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카페라떼와 같은 이유로 카푸치노도 머그잔에 주문해서 마시는 것이 좋다. 카푸치노는 우유 거품이 생명인데 일회용 잔에 뚜껑을 덮어 마신다면 카푸치노를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게다가 밀크폼 위에 뿌려졌던 시나몬 파우더나 코코아 파우더가 뚜껑에 붙어버려서 카푸치노의 풍미를 느낄 수가 없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머그잔에 마시자.
카푸치노는 보통 거품 위에 시나몬 파우더를 뿌려서 마신다. 계피향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요즘에는 무조건 뿌려 주지 않고 본인이 스스로 뿌려 먹을 수 있도록 바에 시나몬 파우더를 놓아두는 곳이 많다. 어떤 곳에서는 카푸치노 위에 초코 가루를 뿌려 주기도 한다. 시나몬이 아닌 쵸코라니.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이게 은근히 또 커피와 잘 어울린다.
커피와 쵸코를 얘기하자면 카페모카(cafe mocha)를 빼놓을 수 없다. 카페라떼에 쵸코 시럽을 넣어 섞고 위에 휘핑크림을 얹어 먹는 메뉴이다. 요즘은 다이어트 등으로 휘핑크림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바리스타가 "휘핑크림을 얹어 드릴까요?"라고 물어본다. 달콤한 커피가 먹고 싶을 때 찾게 되는데 한동안 카페모카에 푹 빠져서 매일 아침마다 마셨던 적이 있다. 드립 커피나 카푸치노만 마시는 요즘도 가끔 지칠 때면 휘핑크림을 듬뿍 얹은 카페모카가 생각날 때가 있다.
달달한 것이 당긴다면 카페모카 말고도 카라멜 마끼아또(caramel machiato)가 있다. 커피숍마다 차이는 좀 있겠지만, 만드는 방법은 1.바닐라 시럽을 컵에 넣고 2.라떼를 만들듯이 데운우유와 우유 거품을 올리고 3.에스프레소 샷을 넣고 4.카라멜을 위에 뿌려서 낸다. 달콤하고 맛있다. 그런데 주문을 할 때 카페 마끼아또랑 헛갈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카페 마끼아또(cafe macchiato 혹은 espresso macchiato). macchiato는 영어로 spotted(점이 있는, 더럽혀진)인데, 에스프레소 위에 밀크폼을 한 스푼 얹어서 만든 음료이다. 카라멜 마끼아또처럼 시럽이나 카라멜이 들어가는 음료가 아니다. 에스프레소+적은 양의 거품이니 당연히 양도 엄청 적다. 나는 아주 가끔 식후에 입가심으로 마시는 메뉴이다. '마끼아또'라는 글자만 보고 달달한 카라멜 마끼아또라고 생각해서 주문했다가 낭패를 본 사람들을 여러 번 봤다. 그래서 카페 마끼아또 혹은 에스프레소 마끼아또를 주문하면 바리스타가 한번 더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에스프레소 위에 밀크폼이 올라간 아주 적은 양의 음료인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뜨거운 여름에는 뭐니 뭐니 해도 아포가토(affogato)가 좋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혹은 젤라또 위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먹는 음료인데, 이것을 디저트류에 포함해야 할지 아니면 커피음료에 넣어야 할지에 대해 논쟁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커피음료의 한 종류로 포함해 놓고 있는 듯하다.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따뜻하고 쌉쌀한 에스프레소의 조화는 정말 근사하다.
이외에도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한 커피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만들기 나름이고 원하는 재료를 넣기 나름이다. 커피와 잘 어울리기만 하면 말이다. 요즘 용감하게 메뉴를 개발해서 선보이는 카페들이 많다. 심지어 오렌지를 넣은 커피도 먹어봤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생오렌지와 시럽을 넣은 커피였는데,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다지 다시 먹고 싶은 맛은 아니었다. 커피 그대로의 맛이 잘 우러나올 수 있어야 커피음료라 불릴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인지 드립 커피를 주로 찾게 되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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