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벤더스가 바라보는 독일 - 뉴 저먼 시네마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 감독 중 한 명인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았다.
빔 벤더스는 이 영화를 통해 천사의 눈으로 베를린을 내려다보고자 한다. 천사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베를린은 아직 전쟁이 남긴 상흔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아물지 않은 곳이자 분단이라는 전쟁의 후유증이 지속되는 곳이며 동시에 전쟁에 대한 기억들이 사라져가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천사들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보고, 듣고, 증언하는 일을 수행한다.
그러나 천사 다미엘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천사들에게는 죽음이 없으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도우며 평생을 순수하게 살아갈 수 있지만, 이는 그저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 현재의 자신의 무게, 삶의 무게를 느끼길 원한다. 그는 우연히 서커스장에서 천사를 연기하는 마리온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사랑을 위해 그는 천사의 삶을 포기하고 죽음의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 하강한다. 한 쌍의 날개 잃은 천사는 서로를 알아보고 운명적인 결합을 이룬다.
빔 벤더스는 천상적 존재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다는 적강화소의 모티프가 드러난 이 영화에서, 인간 세상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드러낸다. 그는 영화를 통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전쟁으로 인해 동서독의 분리와 같이 계속되는 고통을 겪고 있는 현재 독일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또한 천사의 눈으로 보는 인간의 역사, 특히 전쟁의 역사를 조망하고 노인의 에피소드를 통해 전쟁 전후의 과거를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도 한다. 결국 빔 벤더스는 과거에 대한 기억과 성찰을 통해 평화의 서사시를 써 내려가야 함을 역설한다.
이 영화에서 다양한 담론으로 접근할 수 있는 특별한 지점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천사라는 존재의 설정을 통해, 독특한 영화 미학을 구현한다. 천사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런 설정을 통해 영화는 전후의 시대를 사는 다양한 개인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쳐놓을 수 있게 된다.
천사는 컬러를 보지 못하는 반면 인간의 시선은 컬러다. 흑백과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다양하고 넓은 시야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천사의 시점으로 전개됨으로 대체적으로 흑백이지만, 다미엘이 사랑에 빠질 때나, 인간이 되었을 때, 컬러로 전환된다. 이 단순한 흑백에서 컬러로의 전환 기법은 그 어떤 특수 효과를 능가하는 강렬한 미학적 표현으로 기능한다. 특히, 마리온의 공중 곡예를 바라보는 다미엘의 시선이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장면은 감히 <오즈의 마법사>의 컬러 전환에 비견 될 만 하다.
영화에서 포스트 모더니즘 영화의 특징을 찾아볼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뉴스릴과 TV 화면이 적극 활용되었으며, 실제 영화배우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하기도 한다. 이는 상호텍스트성과 혼성모방이라는 포스트 모더니즘 영화의 주요 특징이 영화 속에 녹아있음을 보여준다.
다미엘과 마리온의 만남을 동독과 서독의 결합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같은 상황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같은 맥락 안에서 두 인물은 모두 날개 잃은 천사라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따라서 이들의 만남은 운명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다미엘과 처음으로 마주한 마리온은 나와 당신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둘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마리온의 긴 대사에서 사랑을 통한 남녀의 결합이라는 표층적 의미를 지시하는 텍스트 아래 놓여있는 독일의 통일이라는, 심층적 의미를 지니는 서브 텍스트를 파악할 수 있다. 영화는 전후 독일이 다시 아이가 아기였을 때처럼 순수함을 찾아가길 원하는 빔 벤더스와 페터 한트케의 소망을 투영하며 아름답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