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는 타인의 인정에서 생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저 역시도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하며 참고서를 사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나름 공부를 잘하고 싶어서 수준 높다는 참고서도 사서 보게 되었는데, 너무 어렵고 복잡한 내용만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원래 공부를 잘하려면 이렇게 어려운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해보았는데, 점점 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참고서는 분명 내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쉽게 설명해줘야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이건 참고서를 공부하기 위해 참고서를 사야 할 판입니다. 그래서 이해가 가지 않는 참고서를 내팽개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이 되어 있는 참고서를 사서 보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어렸던 시절에는 우리나라에 권위주의 문화가 깊숙하게 깔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방송에서는 연예인 두발과 복장을 규제하였고, 판사, 의사의 권위는 대단했습니다. 수준이 좀 있다는 책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용어를 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릴 때부터 이런 권위주의를 상당히 싫어했습니다. 참고서는 나의 공부를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에 쉬워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글을 어렵게 쓰는 것은 글을 못쓰는 것이거나, 자신이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권위에 대한 생각을 던져버리니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이었던 저는, 머릿속으로 자꾸 세상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신문 사설을 읽는 것이 국어 공부에 좋다고 해서 읽어보았는데, 사설을 쓴 사람의 권위를 생각하지 않으니 글에 허점이 너무 많고 근거 없이 다분히 편향된 의도가 깔린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댓글을 다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일 방향 정보 전달이 일반적이었기에, 머릿속에는 수많은 댓글과 불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지금 병원에 가면 대부분 전산으로 처방전이 나가지만, 과거에는 의사 선생님이 처방전을 손으로 썼습니다. 그런데 이 글씨는 정말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갈겨쓰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의사 선생님들이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렇게 쓰는 것이 매우 의아했습니다. 바빠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다지 바쁘지 않은 병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든 의사 선생님이 악필일 리도 없고, 악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심한 암호를 적어놓은 느낌이 들었고, 이걸 알아보는 간호사 선생님들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의사로서의 권위의 표시가 아니었나 하는 의심도 해봅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의사 계급만이 알 수 있는 표시였을까요? 이렇게 다소 무리한 추측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대표적인 집단으로 또한 법조계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끔 판결문을 보게 되면 역시 의미를 알아볼 수 없는 용어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판결문은 논리적이어야 하고, 용어 선택을 신중하게 논란의 여지가 없게 해야 하기 때문에 다소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일반인이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는 정도의 수준입니다. 마치 제가 어릴 때 흥미를 갖고 철학 책을 보다가 유명한 철학자들이 자신들만의 언어를 나열하여 알아볼 수 없어 좌절한 것처럼, 일반인들은 사실 판결문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저는 권위주의가 이 사회에 주는 피해가 크고, 결과적으로 개개인에게 주는 피해도 막대하다고 생각합니다. 권위를 가지게 되면 그들 만의 사회가 열리게 되고, 권위가 없는 집단은 배제가 됩니다. 권위를 가지지 못한 집단은 열등감을 가지게 되고, 권위가 있는 집단이 힘까지 있다면 필연적으로 부패합니다. 권위와 힘이 있는 세력이 자신들만의 언어를 쓰게 되면 그 세력을 견제할 사람이 없어집니다. 법조계에 비리가 많아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은 힘과 권위를 가지고 있고, 시민들이 견제를 하고 싶어도 진입 장벽이 너무 놓기 때문입니다. 일반인이 그들의 판결에 태클을 걸어 봤자 무식한 소리가 되기 쉽습니다. 언론사는 많은 권위에 태클을 걸 수 있는 힘과 정보, 그리고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광고에 의존해야 하는 태생적인 한계와 계몽적인 일방향 소통에 익숙한 그들의 방식이 권위주의의 대항마가 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히 사회는 점점 권위주의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매체 역시 점점 양방향 매체가 발달을 하게 되고, 옛날처럼 현학적으로 어렵게 설명하는 내용은 외면받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평론가의 한마디가 큰 무게감을 지녔지만, 요즘은 평론가가 한마디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며 반발을 합니다. 전쟁 후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환경적으로 고등 교육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당시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하여 우리나라를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지만, 배우지 못한 탓에 무시를 당하기 십상이었고, 그들 역시 배우지 못한 탓에 그저 많이 배운 사람들이 하는 말에는 동의를 하고 수긍을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도시 유력자들의 권위가 유지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고, 그렇기에 많이 부패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대들은 대부분 너무 전문가의 권위를 무시해서 문제일 정도로 기존 권위주의가 타파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제 아래 세대에 대해 지금과는 다르게 권위주의를 참지 못하는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교육을 시킵니다. 확실히 제 세대는 위 세대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에 불만을 갖지만 표출은 못하고 적응하는 세대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대들이 일종의 “사고 친다”라 표현되는 행위를 하는 경우를 보면, 직장에 적응해 사는 사람들이 볼 때는 개념 없는 행동이라 볼 수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합리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화려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느낌의 일본 소설을 싫어하고, 존댓말에 대해 부정적 영향이 많다고 생각하여 없어지기를 바랄 정도로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저지만, 또한 이 사회에 너무 잘 적응해서 크게 반항하지는 못하는 저이기도 합니다. 제가 하지는 못하기에, 조금 비겁 하지만 젊은 세대들이 더 변화를 일으켜 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들을 최소한 비난하지는 않고 이해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물론 이러한 권위의 무너짐이 좋기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일지라도 일반인이 의사의 처방을 넘을 수는 없고, 법조인의 판결과 변호를 넘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인터넷에는 수많은 선무당들이 자신이 진리인양 이야기를 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가짜 뉴스가 판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런 부작용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그들을 의심하고 그들에게 도전하는 것은 그들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과거에는 권력과 메이저 언론에 의해 일관된 가짜 뉴스가 퍼졌기 때문에 덜 혼란스러워 보였을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과거와 다르게 권위를 가진 사람들 역시 본인 분야를 더 쉽게 널리 알리고, 일반인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단지 내가 의사라는 이유로, 판사라는 이유로 권위가 유지되는 세상은 썩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앞으로 그들의 권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일반인이 가질 수 있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매체 역시 많이 열리게 되었고, 그를 통해 수익 창출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조금만 찾아보면 처방받은 약의 성분을 알려주는 유튜브를 찾을 수 있고, 기초적인 법률 지식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화에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세상은 점점 더 열린 사회가 되고 있고, 이러한 흐름이 계속되는 것은 막을 수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