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들어가며

00 싸움에 신중하되 싸우지 않고 이겨라

by 평범한 직장인

저는 10년 차가 조금 넘은 대기업 직원입니다. 어릴 적 신문에서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김 과장은 ~~를 보고 깜짝 놀랐다"라고 시작하는 기사를 자주 보면서 나와는 먼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위치에 있는 사회의 부속품이 되어버렸습니다.


회사에서의 제 위치는 리더라고 하기에는 부족하고, 실무자라고 하기에는 조금 결정할 일이 많은 중간 관리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제 아래에서 일하는 직원도 있지만 매니저는 아닌, 실무와 관리를 동시에 하는 입장입니다. 시키는 대로만 해도 안되지만, 마음대로 결정을 내릴 수도 없는 애매한 위치입니다.




신입 사원 때는 보이지 않던 직장의 권력 구도가 10년쯤 되니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사회적으로 대기업 임원이라면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상당한 경쟁을 뚫고 많은 팀원들을 보살피고 이끌어야 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에게서 아주 훌륭한 리더십을 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분들은 몇 분 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많이 퇴사를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분들도 모두 리더는 처음이었습니다. 직원으로 들어와서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그 위치에 올라간 것이다 보니 리더십이 생각보다 부족한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입사원 때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던 분들이 제 짬이 차면서 점점 그들도 잘 모르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시리즈를 쓰게 된 첫 번째 이유가 여기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어린 때는 세상이 공정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때문에 잘못된 것을 보면 욕을 하고, 성공한 사람에 대한 존경이 넘쳤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본받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추문이 돌면, 아주 심한 잘못이 아닌 이상 큰 일을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나름 어린 나이에 순진하지 않고 세상을 좀 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사회의 구조를 보고 있자니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고, 상식에서 벗어난 이상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여러 번 진급 발표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제 주변의 한정된 샘플에서 나온 결론이기 때문에 이것이 진실인지를 증명할 수는 없지만, 원인을 냉철하게 생각해보았습니다.


보통 회사에서 고속 승진을 하는 사람이 무언가 뛰어난 능력이 있어서라고 생각하겠지만, 회사를 다니다 보니 그 정도의 천재는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또는 그 정도의 천재이더라도 무능한 리더 아래에서 실력을 발휘 못하고 묻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스타트업이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산업이 아닌, 보수적인 대기업에서 그런 특이 케이스는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특별히 떨어지는 사람은 존재해도 특출 난 사람이 특별한 힘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임원이 되는 사람들 대부분은 목소리가 크고, 남을 잘 밟고, 정치질을 하고, 눈에 띄는 일만 보여주기 식으로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물론 모든 임원을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런 경향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경쟁을 뚫고 다소 좋지 않은 방법을 썼지만 성공을 한 것은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로 인해 실력이 뛰어나고 회사에 큰 보탬이 되지만 죽어라 일만 하고 성공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분들도 안타깝지만 회사를 생각해도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리즈를 쓴 두 번째 이유는 각종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판에서 진정 실력 있는 리더들이 말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입니다. 보통 업무 능력이 뛰어난 분들은 정치력이 약하고 술수를 쓰는 것을 치사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시기를 받다가 상처만 입고 퇴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꼭 이 글을 읽고 최소한 당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려하니 문제가 있었습니다. 모든 회사마다 일하는 방식이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모두가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을 쓸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체계 없이 나만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연히 손자병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를 넘는 병법서가 없으며, 구체적인 전술을 적어놓은 병법서가 아닌 체계적이고 전략 선택의 기준을 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책을 샀습니다. 회사 업무는 사실상 전쟁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고 있는 체계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가지고 보니 정말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전략을 녹여낼 수 있는 좋은 뼈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뼈대가 잡히니 진도가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손자병법의 순서에 맞춰서 리더의 전략을 전개하되, 저의 회사 경험을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하며, 이를 다른 분야에 활용할 수 있게 의미와 시사점을 전달하는 방식을 택하였습니다. 제 업이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상황에 대한 이해와 그 시사점을 보면 충분히 어떤 회사의 상황에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물론 회사 사례를 직접적으로 쓸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제 여러 경험을 토대로 각색하였고, 진짜 회사에 있었던 일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손자병법을 한 줄로 요약하면 "싸움에 신중하되 싸우지 않고 이겨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쟁터와 같은 회사 생활에서 리더가 올바른 방향을 잡고 준비를 하는 것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리더의 방향뿐만 아니라 내부의 정치 싸움에서도 최소한 패배하지 않는 방법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최선의 준비로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주로 말할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분쟁이 일어날 경우 손실을 최소화할 방법도 다룰 것입니다.


사실 제대로 리더를 해본 적도 없는 제가 리더들을 가르치는 글을 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저의 위치는 리더와 실무자 중간 단계에서 양쪽을 나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신입사원처럼 아무것도 모르지도 않지만, 이미 리더가 되어 생각이 고정된 사람도 아닙니다. 때문에 지금과 같은 양쪽의 입장을 모두 헤아릴 수 있을 때 가장 좋은 생각이 나올 것 같아 건방지게도 이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리더가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정리를 해보는 의미도 있습니다. 항상 외로운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는 리더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을 조금 건방진 후배 직원이 솔직하게 제안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