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봅니다.
코로나로 인해 언택트 시대가 되고 난 후 많은 자영업자분들이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원래 과거를 잘 돌아보지 않는 성격인 저지만 긴 해외 파견 생활에 조금 지쳤는지 요즘 가끔 과거를 회상하곤 하는데, 이 어려운 시대에 불현듯 학교 앞 공갈빵 아저씨가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제는 까마득하게 오래된 대학 신입생 시절, 학교 교문 앞에 이상한 리어카 하나가 있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관심을 두기에는 너무나도 새로운 자극이 많았고,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지경으로 노느라 바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교를 할 때 꼭 보이는 그 리어카에서 무엇을 파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한 시점이 되니 예전만큼 놀 일이 많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간 떨어진 학점을 메꾸느라 공부라는 걸 하게 되었고, 방학에도 계절 학기를 듣느라 많이 쉬지를 못하게 되었으며, 술집보다는 구공도(구 공대 도서관)나 중도(중앙도서관)가 익숙해질 무렵 처음으로 리어카 아저씨에게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그 리어카에서 공갈빵을 파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다지 길에서 뭘 잘 안 사는 성격인 저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날따라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공갈빵 1개를 주문했습니다.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1개 600원, 2개 1,100원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주문을 하면서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을 제대로 하실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숫자 정도만 서로 소통을 할 수 있었고, 바로 주문이 들어가 공갈빵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빵은 생각보다 훨씬 커 보였고, 공갈빵이라는 이름답게 안에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내부에 꿀이 발라져 있어서 꽤 맛이 있었고, 양도 적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맛이 들려서 몇 번 더 공갈빵을 사 먹으면서 좀 더 자세하게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아저씨의 리어카에는 아주 작은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손님이 없을 때는 항상 그 작은 티비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날이 추우나, 더우나, 바람이 부나 항상 그 자리에 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상당히 오래 다닌 저인데, 제가 졸업할 때까지도 항상 계셨던 것을 보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계속 장사를 하신 것 같습니다. 그 10년간 그분의 인생에 보이는 것은 작은 티비와 오가는 학생들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졸업 증명서를 인터넷으로 뗄 수 있게 되었는데, 몇 년 전만 해도 직접 학교를 찾아가야 했습니다. 비자 준비 문제로 졸업 증명서를 떼러 외근을 내고 정말 오래간만에 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두 가지를 기대하며 한껏 설레었습니다. 대학 시절 오랜 기간 최애 학식이었던 공학원 순두부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공갈빵 아저씨를 볼 수 있겠다는 기대였습니다. 공학원 순두부는 여전히 맛있었지만, 공갈빵 아저씨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아저씨가 없다는 것만으로 학교의 그림이 완성되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허전한 마음을 가지고 회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 정문을 찍은 사진을 찾아보면 그 아저씨의 리어카가 있을 거라 예상하며 인터넷을 뒤져봤는데, 놀랍게도 한 장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멋있는 학교 사진을 찍기 위해 아마도 나오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기억하는 학교 정문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아저씨가 아직도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실지, 아니라면 어떻게 살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노점상이고 10년을 넘게 장사를 하셨으니 오래 하신걸로도 볼 수 있겠지만, 그 일 이외에 다른 것을 한 적이 없는 몸으로 그만뒀다면 어떻게 살고 계실까요? 물론 제가 그 사정을 알게 되더라도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학교 앞에 유일한 인문사회과학 전문 서점인 오늘의 책이 문을 닫을 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독수리 다방이 문을 닫았을 때(나중에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하더군요)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마지막으로 방문하고 아쉬워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무력감에 빠져있다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바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책이나 독수리 다방은 여러 가지로 인터넷에 기록이 남아 있지만, 공갈빵 아저씨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기록과 기억으로 남기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찾아보니 학교신문에 아저씨에 대한 기록을 남겨 놓아서 사진 등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기록으로 기억을 되새길 수 있었던 만큼, 누군가가 어느 날 기억을 떠올리고 싶을 때 제 기록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