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
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봅니다.
집에 돌아오기 전 사둔 물건 중에 가장 기대되는 물건은 로봇 청소기였습니다. 십여 년 전에 집에 로봇 청소기가 있었는데 길도 잘 못 찾고 청소 효과도 그닥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지만, 안 본 사이에 샤오미를 필두로 성능이 크게 개선되었다고 해서 기대를 엄청나게 했습니다. 인터넷과 유튜브의 리뷰 영상을 참고하여 고르고 고른 이모님이 드디어 집에서 청소를 하는 모습을 신기해하며 보고 있었습니다.
두세 번을 돌려보고 나니 대충 청소하는 알고리즘을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크게 보면 자꾸만 구석과 벽 쪽을 먼저 가는 것으로 봐서 구역의 가장자리를 먼저 천천히 탐색하며 처리하면서 장애물을 파악하여 폐곡선을 만들고 그 가운데를 빠른 속도로 청소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미 청소를 한 장소를 다시 가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몇 번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꾸 보다 보면 거기에 적용된 알고리즘도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못하더라도 알고리즘 구현에 익숙한 프로그래머라면 단번에 알아챌 수도 있겠죠. 이 인공지능을 코딩한 개발자는 당연히 이미 알고 있을 것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가끔 정말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벽 사이에서 뱅글뱅글 돌거나, 갑자기 왜 저 위치로 가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앉아 있으면 한두 번 부딪히다 그 자리를 피해 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계속 제 몸에 부딪히면서 끊임없이 공격을 해왔습니다. 이세돌에게 바둑을 이기는 AI를 본지도 몇 년이 지났기에 기대 수준이 높아져서 그런지 아직 청소기에 적용되는 AI는 기대만큼의 성능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물론 Deep Learning이 적용되어서 우리 집이 파악되면 갈수록 더 뛰어나 질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로봇 청소기가 학습을 많이 해서 너무 뛰어나 지면 어떨까 하는 망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로봇 청소기는 알고리즘을 조금만 이해해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고, 개발자는 문제를 보면 코딩을 고쳐 바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제작자조차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면 어떨까요? 구글과 이세돌의 바둑에서 이미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지구 상의 어떤 사람도 구글의 AI 머신이 두는 바둑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개발자조차도 말입니다.
이세돌과 AI와의 바둑 대국 이후 기계가 인간을 능가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미 기계는 예전부터 인간을 능가했습니다. 지구 상의 누구도 컴퓨터보다 빠르게 계산을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컴퓨터까지 갈 것도 없고, 그냥 쌀집 계산기의 계산 속도도 이길 수 없죠. 지구 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은 자동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고, 내가 시험공부를 하며 한 달 밤낮을 외운 지식을 컴퓨터는 1초도 되지 않아 메모리에 저장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에서 효율이 좋지 않은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생각과 판단을 해서 자유의지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을 아직 기계는 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AI의 발달은 생각과 판단을 어느 정도 커버해주는 것 같습니다. 로봇 청소기는 자신에게 학습된 우리 집의 지도에서 없던 물건이 생기더라도 이를 관측하고 몸으로 부딪혀보면서 학습하고 피해서 청소를 하게 됩니다. 물론 아직 성능이 아주 좋지는 않아서 헤매기도 하지만 분명 예전 컴퓨터가 하지 못하던 판단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판단의 결과는 이를 개발한 사람이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로봇 청소기가 갑자기 나를 공격하는 것이 이익이라 판단하고 계속 나를 공격할지도 모르는 일이죠. 이 포인트는 인간에게 상당한 공포로 다가오고, 많은 공상 과학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인간에게는 로봇에게는 없는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로봇과 다르게 인간을 공격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하더라도 의지에 따라 공격을 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이익과 다른 판단조차도 우리에게 입력된 알고리즘의 결과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나오는 것처럼 실제로는 나도 모르게 유전자의 명령에 의해 이익이라 판단하여 나오는 행동은 아닐까요? 우리는 자유 의지가 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알고리즘의 결과에 의해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미지의 영역이던 뇌에 대해 많은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뇌과학을 탐구하다 보면 자유의지가 점점 설자리를 잃어버리는 듯 보입니다. 아래 영상의 리벳 실험을 보면 자유의지가 없는 것이 증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5RE-2e50UA
중세가 지나면서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사상이 점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에게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려고 하니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게 되었고, 이에 특이하고 멋있는 실존주의 사상이 세계를 휩쓸기도 했였죠. 이후 짧은 시간 동안 인간의 지식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발전하여 우주의 시작과 끝을 논하고, 몸의 설계도를 찾아내어 변형시키기도 하며, 뇌의 세포 하나하나를 분석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발전을 통해 세상에 대해 이해하면 할수록 인간의 위상을 높아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결과를 보면 잔인하게도 태초부터 정해진 길을 따라 의미 없이 움직이는 로봇 같은 존재로 추락시키기도 합니다. 기독교의 시대에서는 그래도 신 바로 아래에서 모든 동물의 지배자였던 인간이 다윈에 의해 갈라진 하나의 종에 불과하게 되었고, 프로이트는 단지 성욕에 의해 행동하는 존재라고 하더니, 요즘은 유전자 전달 기계라는 이론이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놓고 참지 못해 먹고 있는 자신에게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내 의지가 아니고, 우주가 시작되면서부터 먹게 결정되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는 장제원 의원의 아들이 음주 운전을 하고 경찰을 밀친 것도 결정되어 있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혼란스럽습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자유의지가 없다면 기계는 확실하게 어느 순간 인간을 훨씬 뛰어넘는 존재가 될 것 같습니다. 그것도 멀지 않은 미래에. 격리를 하고 있으니 청소기 보면서 참 별 생각을 다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