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역학 법칙
그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현대 과학의 거대한 두 개 축인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에 대해 설명해왔고, 설명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가장 밑바닥에 있는, 과학의 공리라고 할 수 있는 열역학 법칙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사실상 모든 과학 법칙의 바닥에는 열역학 법칙이 성립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으며, 만약 이 법칙이 무너진다면 현대 과학의 모든 것이 무너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열역학 법칙을 알고 있습니다. 이과 계통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면 많은 학과에서 열역학을 다루고 있고, 최근 베스트셀러인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도 엔트로피를 다루고 있죠. 저 역시 학부 시절 열역학 수업을 들었고, 법칙 자체는 간단하고 직관적으로 쉽게 수긍이 가능하지만 막상 계산을 하면 짜증이 솟구치는 그런 과목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그 계산 방법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짜증만 기억이 남네요.
열역학 법칙을 엄밀하지 않은 용어로 표현한다면 "우주의 에너지는 보존되고 엔트로피는 증가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에너지가 보존되는 것은 왠지 그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이는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모든 현상을 분석해봤을 때 한 번도 보존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증명 없이 받아들이는 수학의 공리처럼 이에 어긋하는 실험이 발견되면 어떻게든 열역학 법칙 프레임 아래에서 설명하려고 하게 됩니다. 현대 과학의 패러다임에서도 가장 강력한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에너지가 보존되기만 한다면 에너지 부족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 보이지만,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때문에 영구 동력 기관을 만들지 못합니다. 흔히 엔트로피를 무질서도로 번역을 하며 깨진 유리컵, 물속에 퍼져나가는 잉크 등을 예로 들며 설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과학계에서는 이러한 무질서도라는 번역이 정확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엔트로피를 한 단어로 번역하기에 무질서도는 꽤나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관적으로 감이 오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죠. 물론 이 번역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과학적 법칙을 쉽게 바꾸어 설명하다 보면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엔트로피를 무질서도로 쉽게 이해를 한 후, 오해를 바로 잡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질서도 이상의 설명을 위해서는 확률과 무한을 도입해야 합니다. 지긋지긋한 수학이 등장하지만 확률과 무한은 현대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꼭 이해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림과 같이 4개의 칸으로 나누어진 공간에 2개의 공을 집어넣는다고 해봅시다. 공은 경계선에 존재할 수 없고 완전히 똑같으며 한 칸에는 두 개 이상의 공이 들어갈 수 없다고 가정합니다.
공은 서로 구별할 수가 없으므로 총 6가지의 경우가 생겨납니다. 그림을 보면 가운데 선을 경계로 한 개씩 들어가는 경우는 4가지이고, 양쪽 끝에 몰리게 되는 경우는 2가지입니다. 가운데 선을 경계로 한 개씩 들어갈 확률을 66%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번에는 조금 더 숫자를 늘려 총 6개의 칸에 공 3개를 넣는다고 생각해봅시다. 총 20가지의 경우가 생겨나는데 한쪽으로 몰리는 경우는 첫 번째 그림과 마지막 그림에만 있습니다. 공이 한쪽 끝으로 몰릴 확률은 10%에 불과하며, 90%의 확률로 분배가 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칸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공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공이 한쪽에 몰릴 확률이 줄어들 것임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공간은 거의 무한에 가깝게 쪼갤 수 있으며, 공에 해당하는 원자 역시 거의 무한에 가깝게 존재합니다. 때문에 어떤 경계가 있을 경우 한쪽에 몰릴 확률보다 전체적으로 퍼질 가능성이 거의 100%에 가깝게 높아집니다. 엔트로피를 설명할 때 쓰는 잉크가 퍼지기 전, 깨지기 전의 유리컵은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이며 부자연스러운 상태입니다. 모든 물질은 결국 엔트로피가 증가되어 확률적으로 높은 서로 퍼져있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때문에 우주의 종말은 어떠한 치우침도 없이 열평형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무질서도가 가장 높은 상태는 가장 균일하고 질서 있는 상태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