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민심을 얻기 위해 자주 하는 이야기입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다수결의 법칙인 만큼, 국민의 선택이 옳다는 명제는 성립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선택이 항상 옳다는 증거를 찾기는 참 어려워 보입니다. 당장 개인인 저만 보더라도 많은 선택에 후회를 하기도 하고, 지나고 보니 옳지 않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선택의 결과를 모르기에 단지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자기 위로를 할 뿐입니다. 사실 옳다는 것의 정의도 모호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면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지니 생략하도록 하죠.
개개인은 잘못된 선택을 많이 하더라도 집단의 평균적인 선택은 더 옳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강연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특정인을 보고 키를 맞추라고 하면 대부분 틀린 답을 내겠지만, 사람들이 쓴 답의 평균을 내면 특정인의 키에 근접한 답이 나올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봤습니다. 자연의 법칙은 오묘해서 다수의 경우가 모이면 항상 통계에 나오는 정규 분포 곡선과 비슷한 곡선을 항상 나타내게 되는 것을 볼 때, 평균적인 선택의 정당성은 상당히 그럴듯해 보입니다.
대다수의 과학자가 동의하고 있는 기후 변화의 위험이 이제는 꽤나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평균 기온이 2도 상승하면 생물종 50% 이상이 멸종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추정하는 수치는 다를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기후가 변하고 있고, 이것이 지구 생태계에 큰 위기라는 것에는 동의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당장 아주 강력한 기후 위기 대책을 실현해야 간신히 2도 이상의 상승을 막을 수 있다고도 합니다.
과학자들 거듭된 경고가 먹혔는지 요즘 들어 확실히 위기의식은 고조된 것 같습니다. 기업마다 ESG 경영이니, RE100이니 하는 말을 내세우며 친환경적인 기업임을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고, 소비자들의 불만에도 종이 빨대를 쓰는 카페가 늘어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생활 속에서 환경 보호를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각종 활동은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국제적인 동조와 강력한 규제가 이루어져야만 목표에 근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환경을 위해 어느 선까지 불이익을 감수할 수 있을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환경 협정에 의해 내가 다니는 회사 문을 닫아 실업자가 돼야 한다면, 그 협정에 찬성하는 사람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공장에 당장 많은 비용을 들여 여과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면 달가워할 사장은 없을 것입니다. 맛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종이 빨대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됩니다. 종이 빨대의 효과에 대해서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환경 위기에 두려움을 가지는 것과 별개로 사람들은 생활의 작은 불편조차 감수하기 싫어하기도 합니다. 트럼프가 지구 온난화의 허구성을 주장하며 파리 협정을 탈퇴한 것 역시 사람들의 불만을 계산해서 인기를 얻기 위한 전략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대로 가면 몇 년 후에 지구가 멸망하는 게 확실하다고 해도 불이익을 감수하며 환경을 지키려 하는 사람들은 한정적일 것이며, 그런 국민들이 많은 국가가 자발적으로 불이익을 감수하는 정책을 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평균적인 선택이 과연 옳은지 의문이 생깁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올해 여름은 정말 온난화가 온 것처럼 말도 안 되게 찌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실감할 수 있을 정도의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외신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지금 상황만 보면 인류는 답 없는 미래로 가고 있는 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답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인간은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피해가 오게 되면 놀라울 정도의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과거 나치가 핵무기를 개발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막대한 돈을 투입하여 단기간에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모습도, 코로나 백신을 믿을 수 없이 빠르게 개발한 것을 봐도 코너에 몰린 인간이 위기를 체감하였을 때 얼마나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 내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오존층 문제가 쑥 들어간 것처럼, 기술의 개발로 어느 순간 기후 변화 문제도 과거형의 이슈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늦은 대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특히 저개발에 못 사는 사람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낙관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