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전에 아기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인상 깊은 장면을 보게 되었다. 아니, 평소에 드문드문 보인 장면임에도, 지금의 상황에서 유독 더 인상 깊게 보였다고 말해야 맞을 것 같다. 딸로 보이는 사람의 호위를 받으며 노인보행기를 끌고 걷고 있는 할머니가 보이면서 왠지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 이것저것 잡으면서 걸음마를 하려고 애쓰는 우리 아기와 비슷하면서도 대조되는 모습에서 오는 감정이었다.
이 거대한 우주에서 참 별거 아닌 인생이지만, 들여다보면 참 다양하고 아이러니하다. 무한한 시간을 사는 신이 그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생명을 만들어 팝콘을 먹으며 하나하나 시청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평범한 인생도 그 자체만으로 울림이 있다. 당연하고 별거 아닌 노인의 걸음마가 단지 지금 내가 아기를 키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감정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모든 범사는 범사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정말 의외의 행동까지 날 닮은 아기를 보면서, "아, 나도 어릴 때 저랬었지.", "내가 저랬었나?" 같은 생각을 하곤 하는데, 이 아기의 행동이 나의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아이의 성장과 역순으로 마지막을 맞이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어느 나이가 되면 걸음마가 힘들어질 것이다. 슬픈 일 같지만, 사실 그렇게 순탄하게 인생을 마무리하는 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 그렇게 순탄하기는 쉽지 않으니 말이다. 아기가 지금 별문제 없이 개월 수에 맞추어서 잘 성장해 주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기쁘다. 마지막까지 순탄하기를 바랄 뿐이다.
아기를 이야기하면서 죽음을 다루는 건 좀 껄끄러운 일이다. 나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편에 속하는 성격이지만 사실 항상 죽음을 생각한다. 행동이나 판단을 할 때도 죽음을 생각하는 편이다. 나만 멋있게 그런 생각을 하는 줄 알았는데 이미 "메멘토 모리"라는 있어 보이는 말이 오래전부터 있었더라. 인간은 영원히 살지 않기에 각자 삶의 의미를 설정하고 치열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정된 삶이 만드는 다양한 모습과 아이러니, 복잡한 감정을 오랜만에 느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