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를 해보면 나는 항상 타입이 바뀐다. 물론 질문이 많은 제대로 된 검사를 한 적이 없긴 하지만,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검사를 해보면 같은 타입이 나온 경우가 거의 없다. 물론 MBTI 자체가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하니 제대로 된 검사라는 말 자체가 어패가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요즘은 처음 만난 사람과 스몰톡을 하며 서로를 파악하는데 유용한 MBTI 결과를 모르니 얘기할 때 조금 뻘쭘하긴 하다.
특히 내성적/외향적을 가르는 I와 E도 바뀌는데, 많은 경우 I가 나오지만 E가 드문 나오긴 한다. 내가 I라면 놀라는 사람도 있고, 내가 E라고 해도 놀라는 사람이 있는 걸로 보면 E에 가까운 I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잘 나서지도 않고, 말도 많은 편이 아니지만, 또 의외로 새로운 사람을 잘 만나고, 소극적인 사람만 있는 자리에서는 적극적인 성격이 되는 걸로 봐서 말이다.
아기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내가 왜 이런 성격이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가면 이전에는 못 느끼던 시선을 많이 받는다. 물론 내가 아닌 아기에게로 말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혹은 소극적으로 아기를 보고 즐거워한다. 아기에게 몰래 손을 흔드는 사람들도 많고, 웃으며 아기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할머니들만 적극적인 줄 알았는데, 가끔 할아버지들도 친근하게 말을 걸곤 하신다. 주섬주섬 손주 주려고 챙겨 온 과자를 건네시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 이기적 동물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문득 지금 아기에게 친근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실 그중 많은 수는 내가 길거리에서 지나치면서 그런 표정이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을 사람들이다. 시크한 표정으로 잘 차려입고 도도하게 지나가는 젊은 여자, 곧 버럭 화낼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할아버지, 갑자기 날 때리지나 않을까 싶은 큰 덩치의 젊은 남자, 요즘 애들은 버릇없다고 꾸지람할 것 같은 할머니. 아마도 내가 움츠려 들기 시작한 건 이런 것을 느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유모차를 끌고 나가면 이전에는 못 느끼던 시선을 많이 느끼게 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기를 보며 웃고 즐거워하고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앞에서 말한 모든 부류의 사람들은 나의 선입견과 다르게 세상 따뜻한 사람의 표정으로 아기를 대한다. 어쩌면 그 모든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움츠려 들어 진심의 표정을 숨기고 강한 척 바늘을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람은 가까이서 보면 정말 다양하지만, 또 멀리서 보면 다 비슷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을 뿐인데, 나와는 다른 모습을 너무 두려워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어린 시절부터 결혼, 출산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회의 흐름대로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겠거니 싶었는데, 어느새 사회 분위기가 그렇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역시나 뭐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겠거니 싶어 흘러가다가 운 좋게 결혼을 하게 되었고, 출산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사회에 떠도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비관적인 이야기에 내가 귀를 많이 기울였다면 안 했을 수도 있겠지 싶다. 그리고 아기를 키우는 지금, 그런 이야기에 내가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고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는 인간을 유전자 전달 기계로 취급을 한다. 조금 차가워 보이지만 상당히 설득력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학술적인 얘기는 차치하고 분명 아기는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준다. 흔히 아기를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 하고 실제로도 힘들다. 나 하나 살기도 버거운데 아기를 키울 자신이 없다는 얘기도 종종 들리는 것 같다. 그건 아닌 것 같다. 우리가 가지는 모든 행복은 고통 속에서 나온다. 늘 아무 고통 없이 평온한 삶을 많은 사람들이 꿈꾸지만, 만약 그런 삶을 산다면 지옥일 것이다. 우리는 빈둥빈둥 아무것도 안 하고 놀 때 처음에는 좋지만, 나중에는 현타가 온다. 많은 고통 속에서 어떤 것을 성취했을 때, 행복과 삶의 의욕이 극대화된다. 아기를 키우는 건 분명 힘들고, 특히 하고 싶은 것이 많은 20대들에게는 더 큰 고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매일매일 성취를 하는 아기를 보며 매일매일 고통과 행복을 얻는 건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니다. 한창 학업, 취업, 결혼과 같은 이벤트를 거쳐 루틴 한 삶을 쳇바퀴 돌 듯 살게 되는 시기에 끊임없이 도파민을 분비시키고 삶을 충만하게 만든다. 누구나 웃게 만드는 귀여움을 항상 보는 것은 덤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