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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직장인 Dec 14. 2024

Good bye, 뚜비

나, T 같지만 F 맞는 듯

보통 첫눈은 진눈깨비가 휘날리다가 지저분하게 끝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올해 첫눈은 정말 제대로 눈답게 내렸다. 아기가 처음 보는 눈이 정말 눈처럼 내리니, 어떤 반응이 나올지 정말 궁금했다.




애석하게도 나는 출근을 해야 하다 보니까, 아기가 경험한 첫눈을 같이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올라오는 사진을 보니 어김없이 아기가 울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처음 보는 하얀 세상에 당연히 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울고 나서는 점점 신나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문득, 또다시 떠올랐다. 키우던 강아지, 뚜비 생각이 났다.


원래 강아지는 눈을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뚜비 역시 첫눈을 보고는 무서워서 발을 내딛지 못하였다. 한참을 겁을 내고 있기에 과감하게 눈 속에 집어넣었더니 약간의 움찔거림이 있었고, 이후는 아주 신나게 뛰어놀았다. 처음 바닷가에 갔을 때도 비슷했었다.




사실 뚜비가 집에 있는 동안 내 동생이나 다름없었다. 말은 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 녀석의 말을 다 알아듣는 듯했다. 그때까지 아기를 키워본 적은 없었지만, 뚜비는 2~3살 아기 정도의 행동까지 발달하다가 멈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기를 키워보니, 정말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행동이나 표현이 말 못 하는 아기 때와 정말 많이 유사하다. 어쩌면 인간과 다른 동물의 차이는 언제 발달이 멈추냐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뚜비가 할배가 되었을 때, 나는 이미 결혼을 하여 분가를 한 상태였다. 가끔 뚜비를 만나러 가면 이 녀석은 예전처럼 활기차게 나를 반기고 긁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 미세한 표정과 행동에서 이 녀석의 마음이 그대로임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특유의 뛰기 전의 동작과 표정을 지은 후, 단지 몸이 잘 따라주지 않아 더 못하고 돌아서는 측은한 뒷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뚜비가 죽고 나서 사실 가끔 생각이 난다. 이상하게 나는 살아 있는 사람들 생각은 잘 안 하는 것 같은데, 죽은 사람은 가끔 문득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뚜비는 가장 자주, 가장 최근까지도 생각이 난다. 사실 뚜비가 한창일 때, 나는 뚜비를 보고 돌아가신 외증조할머니를 생각하곤 했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외갓집을 가면 항상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조금도 변하지 않고 앉아 계신, 정말 할머니 중에 할머니 같은 외모를 지니신 외증조할머니는 나에게 할머니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계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뚜비가 우리 집으로 들어왔고, 언제나 집에 있는 모습이 중첩되어 뚜비를 보면 간혹 할머니가 생각나곤 했었다. 마치 환생한 것처럼 느껴졌다.




뚜비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나서도 한참을 놓아주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내 아기가 태어났다. 마치 뚜비처럼 천진난만하게 여기저기 사고를 치고 다니고 있다. 언제나 주의를 끄는 것도 똑같다. 이 녀석을 보기 시작하면서 뚜비에게는 미안하지만 뚜비에 대한 생각이 옅어지는 느낌이 든다. 사실 집착이 크지 않은 내가 이렇게 오래 집착한 것도 이상하긴 하다. 모이면 흩어지고, 흩어지면 모이는 것이 삶인 만큼, 이제는 놓아줄 명분이 생긴 것 같다. Good bye, 뚜비, 언젠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로 태어나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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