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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베이터 Oct 31. 2020

삶은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 존재한다.


길게 이어진 줄을 보니 저 줄에 동참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문명의 이기를 누려보겠다. 핸드폰 어플로 원하는 커피를 주문했다.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이곳은 항상 사람이 많다. 급할 때는 매장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주문을 해야 할 때도 많다. 눈치챘겠지만 여기는 스타벅스다. 스타벅스는 늘 사람이 많다. 스타벅스는 커피로 세계를 장악했다. 최근 이탈리아에도 스타벅스 매장이 최초로 오픈했다. 에스프레소를 자존심으로 여기고 사는 이들의 국가에 스타벅스가 침범한 것이다. 


스타벅스의 성공에는 과거 스타벅스의 사장이었던 하워드 슐츠의 경영 철학이 담겨있다. 그는 스타벅스를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공간과 문화, 경험을 파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경영 철학은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게 현실에서 실현됐다. 스타벅스는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됐으며,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은 하나의 삶의 스타일로 정착했다. 


하나의 문화를 추구하는 그들의 신념은 직원 교육과 매장 인테리어로 드러난다. 내 경험상 스타벅스에서 경험했던 직원들의 서비스 수준은 매우 높았다. 산뜻한 환영 인사와 친절한 접대는 매장에서 머무른 시간을 보다 좋은 기억으로 만들어줬다.


스타벅스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녹색 배경에 별 왕관을 쓰고 긴 머리를 늘어트린 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세이렌이다. 그녀는 오디세이에 나오는 님프다. 세이 레은 아름다운 목소리와 노래로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을 유혹하고, 결국 그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무서운 존재다. 그들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서 오디세우스가 돛대에 자신의 몸을 묶고 밀랍으로 선원들의 귀를 막았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세이렌은 유혹의 상징이다. 우리들은 세이렌의 오묘한 미소에 이끌려 스타벅스를 찾는다. 




삶은 현실과 판타지의 미묘한 경계 위에 존재한다. 지나치게 현실에만 몰두하면 삶은 건조해진다. 반면 판타지만 추구한다면, 삶은 고립되고 일상은 피폐해진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잘 오가는 기술을 가져야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제공하는 스타벅스의 전략은 영리하다.  


스타벅스에 가면 다양한 풍경이 있다. 육아에 지친 부모들이 잠시 숨을 돌리고, 과제 제출일이 코앞이라 학생들은 과제에 몰두한다. 서로의 끌림을 거부할 수 없어, 연인들은 오랜 시간 살을 붙이고 앉아서 사랑을 속삭인다. 치즈 케이크와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앉아, 소설 속 이야기에 빠져든 사람들도 눈에 띈다. 


그들은 일상과 판타지의 경계에 있다. 의무와 책임이 가득한 일상에서 나와 숨을 돌린다. 사무실이나 집에서는 떨치기 힘들던 걱정과 근심이 새로운 공간으로 와서는 사라짐을 경험한다. 그들은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 위에 존재한다. 무겁고 삭막한 일상은 더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판타지를 누리기 위해 존재하고, 판타지는 일상에 더 충실할 수 있기 위해 존재한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현실에 보다 충실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현실에 몰두하고 충실해지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삶의 판타지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현실에 지친 이들이 드라마가 제공하는 판타지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욕구는, 판타지가 사라진 삶의 결핍이 어떠한 지를 보여준다. 






테슬라의 수장인 일론 머스크는 화성 진출의 꿈을 꾼다. 그의 모든 사업은 스페이스 X 프로젝트를 통해 화성 진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누군가는 그의 계획을 위대함으로 여기고, 누군가는 허황된 꿈이라고 조롱한다. 그는 자신이 일하는 목적에 대해 ‘매일이 재밌고, 꿈을 꾸기 위함’이라고 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에 몰두하고, 현실에 충실한 그이지만, 그가 일을 하는 목적과 동기는 판타지의 세계에 존재한다. 


사람들마다 일을 하는 목적과 동기가 다르다. 누군가는 일론 머스크와 같이 내일이라는 판타지의 세계를 그리며 일상에 집중하고, 누군가는 단순하게 일상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살아간다. 각자의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판타지를 위해 현실에 충실하고 싶다. 나는 '삶이란 끊임없이 일상과 판타자의 경계를 살아나가는 일'이라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화성에 가서 살고 싶지는 않지만, 나만의 프로젝트를 갖고 살아간다. 의무와 책임에 이끌려 사는 삶이 아니라 판타지를 실현하고자 내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눈앞엔 세이렌이 밝은 빛을 내뿜으며, 그 특유의 미소를 보내고 있다. 세이렌의 유혹에 굴복하고 만 나는, 오늘도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 위에서 시간을 보낸다. 


사실 커피값은 조금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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