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비가 오렸는지 하늘이 흐리다. 몸이 무겁다. 할 일은 많은데 도무지 의욕은 1도 생기지 않는다. 삶이 고단하게 느껴진다. 우울한 기분마저 든다. 날씨에 민감한 나는 이런 경험을 자주 한다. 날씨가 기분에 영향을 미쳤고, 기분은 내 감정과 에너지를 주도한다. 방안에 들어가 이불속에 숨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애쓴다.
우리는 일상에서 ‘기분’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그럴 기분이 아니야.’, ‘오늘 좀 기분이 안 좋아’, ‘너는 왜 내 기분을 신경 쓰지 않아?’ 살면서 얼마나 기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쏟아냈는지는 헤아릴 수 없다. 도대체 기분의 정체는 뭘까? 막상 기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하면, 누구나 난감한 표정을 지을 게 뻔하다. 나도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분의 정의를 검색해 봤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기분을 ‘대상 환경 따위에 따라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되는 유쾌함이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으로 느낌을 몸의 감각이나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기운이나 감정’이라고 정의한다. 더 어렵다. 하지만 여기서 캐치할 수 있는 건 ‘마음에 절로 생긴다’는 것이다. 사실 기분은 절로 생긴다. 의도를 갖고 기분을 느끼기보다는 어디서 온지도 모를 기분이 저절로 생긴다. 우리는 그저 느낄 뿐이다.
사실 기분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매우 많다. 날씨가 될 수도 있고, 수면 상태, 허기짐, 건강 상태에 따라 기분은 달라지고, 직장 상사나 친구에게 들은 한 마디가 내 기분을 흔들고 뒤집을 수 있다. 기분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하다.
지금 이런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기분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기분이 일상에 안정적인 루틴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루틴을 형성하고 이를 유지하는 일이 생산성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환경임을 강조한다. 우리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루틴이 왜 무너지는지, 루틴을 무너트리는 주범이 어떤 녀석인지를 간과할 때가 많다.
사실 안정적인 루틴 형성을 마치는 일등 공신은 '기분'이다. 계획은 했지만 오늘은 이 일을 할 기분이 아니어서 빼먹은 하루 이틀의 순간들이 루틴을 건설하는 현장에 제동을 건다. 어떤 일을 수행할 때 루틴이 생기면, 그 일이 쉬워진다. 심리적 거리감이 좁혀진다. 결과물을 만드는 프로세스가 생긴다. 반면 루틴이 약해지거나 사라지면?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 심리적 거리감이 든다. 일은 시작하지만 성과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분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기분에 휘둘려 사는 삶을 반복하면 내 일상에 루틴과는 이별을 나눠야 한다.
그렇다면 기분으로부터 주도권을 회복하고, 일상에 루틴을 만들고, 루틴을 통해 보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모니터링에 있다. 기분을 모니터링하는 일이다. 우리는 기분에 반응하는데 익숙해 있다. 어디서 온지도 모를 기분에 그저 반응한다. 그리고 기분이 이끄는 대로 끌려 다닌다. 이제는 끌려 다닌다는 사실에 화가 좀 나야 한다. 화를 냈다면 이제 잠시 멈춰 서서 현재 내게 찾아온 기분을 관찰해야 한다. 어떤 기분이 들고 그 강도는 어떠한지 그리고 기분은 내 생각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지켜봐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이미 그 기분에 젖어 있는 상태인데 그 기분을 어떻게 쉽게 관찰할 수 있을까. 기분을 관찰하려면 의도적으로 현재의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부정적인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는 의식은 과거나 미래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에 했던 행동을 곱씹으며 후회를 반복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한 생각을 지속적으로 생산해 낼 것이다. 더 생각하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그리고 의식을 현재의 순간으로 돌려야 한다. 호흡을 고르고 현재의 상태에 좀 더 집중하고, 현재라는 순간을 보다 명료하게 인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현재에 집중하는 데 성공하면 기분이 나를 압도하는 기분? 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제 자신의 기분이 달라지면 내 인식도 달라짐을 스스로에게 설득해 줘야 한다. 기분의 영향력을 인정해야 한다. 현재 내 상황과 앞으로의 일들을 이토록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이유는 기분이라는 녀석의 속삭임이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우울한 기분에서 판단한 일들이 사실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판단을 멈추고 몸을 움직이고, 영양이나 수면을 보충하고,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음악이나 들어야 한다.
기분에 압도되지 않고, 계획한 일을 조용히 진행하면 루틴이 건설되는 현장은 활기를 찾는다. 안정적인 루틴이 만들어지면, 더 이상 기분은 내가 진행하려는 일에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루틴을 기반으로 일이 진행되고, 성과가 생기면, 기분의 속삭임을 쉽게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뻔한 이야기 같이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기분은 항상 반응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라고 인식하는 일과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일은 차이가 크다. 기분에 반응하는데 만 익숙해지면 죽었다 깨도 기분으로부터 주도권을 회복할 수 없다.
일상에 안정적인 루틴을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기 전에 내 기분부터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동안 일상의 루틴을 수없이 망쳐 놓은 녀석이 바로 ‘기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