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눈치챘겠지만, 아이유가 김창완 씨와 함께 부른 ‘너의 의미’란 노래의 가사말이다. '가볍게 여겨질 수 있는 말 한마디, 웃음이 누군가에겐 커다란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가사에 시선이 멈췄다. 현재 내게는 그런 사람이 있는가 생각해 봤다.
가사로 적힌 일이 일어나려면, 상대의 말이 단순히 음성적 정보로 해석되거나 웃는 표정이 시각적 정보로만 인식되지 않고, 의미로 전달되어야 한다. 상대의 존재가 갖는 의미를 발견해야 이런 가사가 나온다. 그의 존재가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의미가 해석되고 마음에 충돌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이 가사에 공감하고 노래에 빠질 수 있다.
선물을 주고받으면 참 기분이 좋다. 선물이 갖는 사회경제적 값어치를 해석했기 때문이 아니다(가끔 그 값어치가 웃음 짓게 하기도 한다).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선물은 존재의 의미를 부각하기 때문이다. 선물을 줄 때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 임을 인식하고, 받을 때 ‘누군가 나를 의미 있게 생각하는구나’를 깨닫는다. 이런 생각이 들 때 선물은 특별한 시간을 선물한다. 선물이라는 물리적 사물은 주고받는 행위를 통해 의미를 이해하게 하는 화학적 반응을 일으킨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인간이 갖는 다른 동물과의 구별된 특징은 ‘의미를 추구하는 일’이다. 인류는 지속적으로 의미를 추구했기에 지나간 사건의 의미를 기록하고, 의미를 기념하는 상징물과 기념일을 만들었다. 의미를 발견하는 일에 목을 매지 않았다면, 인류 문명은 이렇게 발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방송인 서장훈 씨가 방송에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 며 볼멘소리를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인간의 본능이다.
의미를 이해하는 일은 동력을 만든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할 만한 충분한 의미를 발견하면, 사람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의미는 물질적 보상을 대체하기도 하고 희생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라’는 말은 고차원적인 말이 아니다. 사실 의미를 추구하는 본능을 따르라는 자연스러운 메시지다.
의미가 채워지는 삶을 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의미는 겉으로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사건이나 경험의 껍질을 벗겨내고 속살을 확인해야 의미를 이해하고 얻을 수 있다. 의미는 해석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다.
육아는 치열한 자기희생적 행위다. 부성 본능, 모성본능이 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인 인간이 보여주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자녀를 돌보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해석하지 못한다면, 육아는 지속될 수 없다. 아이들이 해맑게 뛰노는 모습, 정신없이 음식을 입으로 넣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는 순간, 부모의 마음에 자녀의 존재가 해석되지 않는다면, 육아는 고통만 가득만 행위다.
노동 또한 그렇다. 노동에 의미 해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노동은 고통으로 가득 찬다. 노동을 통해 얻는 재화로 생계를 유지하고, 취미 생활을 영위하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다는 해석. 여기에 좀 더 나아가 일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성장하는 기쁨을 찾고, 전문성을 통해 사회적 존재감을 인식할 수 있을 때 노동에서 의미를 찾고 그 일을 지속할 수 있다.
인간이 힘들고 어려운 일 속에서도 성취와 성장을 얻는 건 해석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해석해 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석하는 힘을 기를 수 있을까? 뻔한 이야기 같지만 인문학 독서가 그 답인 듯하다. 인문학은 해석으로 가득한 글이다. 인간의 존재, 인류의 역사, 상징과 비유에 대한 해석을 잔뜩 담은 글이 인문학이다. 가끔 인문학을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게 만드는 도구, 어디 가서 지식적 허세 좀 떨게 만들 수 있는 도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도구로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러한 마케팅을 해야 인문학 독서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현실이 조금은 안타깝다.
인문학은 의미를 해석하는 힘을 키워주는 도구다. 내게 일어난 아주 작은 사건, 변화 속에서도 의미를 이해하고 발견하게 만들어주는 강력한 도구다. 그런 차원에서 인문학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눈을 만들어주는 도구다.
의미를 해석하고 발견하는 일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확률도 높여준다. 심리학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로 통합을 강조한다. 여기서 통합은 지나온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 정체성과의 통합이다. 이러한 통합이 이루어지려면 과거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과거를 돌아볼 때 후회와 아쉬움만으로 가득하다면, 긍정적인 통합은 이루어질 수 없다.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고, 그 안에서 현재와 미래를 위한 의미를 캐낼 수 있을 때 통합이 일어난다.
삶의 의미가 해석되지 않을 때, 우리는 바쁜 일상에서 번아웃을 경험하고,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시달린다. 그런 감정 상태에서 세상은 치열한 경쟁만 가득한 냉정하고 차가운 세상으로 여겨진다. 반면 삶에서 의미를 해석해내고 발견하는 이들은 열정과 생기를 생산한다. 자신이 발견한 의미가 삶을 이끌고 밀어준다.
잠시 멈춰서 나는 현재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찾고 있는지 돌아보면 어떨까. 삶에서 의미가 채워지지 못하고 있다면 의미를 해석하는 힘을 점검해 보는 일이 필요할 듯하다. 의미를 해석할 수 없다면, 누군가의 말 한마디와 웃음이 커다란 의미로 다가오는 낭만적인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