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평온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계획한 일들을 잘 해내고 있었고, 집중력도 양호했다. 일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도 생겼다.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 건, 스마트폰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나는 스마트폰 때문에 자주 산만해졌다. 습관적으로 접속해 이런 정보를 확인하는 동안 나는 집중력을 잃었고, 자주 마음이 조급해졌다.
현대인은 대부분 스마트폰에 밀착되어 살아간다. 틈만 나면 한걸음 물러나 자신을 관찰해 본다면, 하루 일과 중 가장 빈번하게 하는 행동은 폰을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지문, 패턴 등을 동원해 끊임없이 휴대폰을 잠금 해제해 그 안에 있는 것을 탐닉한다. 폰과 내가 하나되는 현상은 자주 일어난다.
최근 스마트폰 사용을 줄였다. 폰을 들여다 봄으로 낭비되는 시간도 너무 많았고, 스마트폰 때문에 집중이 방해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굳은 용기를 내어 폰과의 거리두기를 시작했고, 거리두기 기간이 늘자 산만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다시 폰에 집착했고, 거기서 위로와 즐거움, 흥을 갈구했다. 허전함이 수면 위로 올라올 때마다 폰을 열고 닫기를 반복했고, 포탈, 유튜브 등 여러 앱을 오가며 허한 맘을 달랬다. 비극(?)은 폰을 교체하며 일어났다. 새로운 폰에 대한 관심이 트리거로 작용했다. 과거 폰 사용 습관은 다시 재현됐다.
다시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에 따라 이 영상 저 영상을 눌러대기 시작했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시각, 청각 자극을 끊임없이 채웠다. 의식은 다시 산만해지기 시작했고, 즉각적이고 순간적인 자극을 추구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느긋함은 사라졌고, 내 의식은 하나의 대상에 오랜 시간 집중할 수 없었다.
우리 뇌에는 두 가지 모드가 존재한다. 하나는 특정 대상에 주의를 집중하는 집중 모드이며, 다른 하나는 이런저런 생각과 상상 기억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떠도는 상태다. 우리는 멍하게 있을 때도 수많은 생각을 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생각들이 등장해 맘을 차지한다. 우리 뇌는 짧은 시간 안에도 이런저런 생각과 기억에 초점을 옮기며,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낸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뇌 활동을 뇌의 디폴드 모드(default mode)라고 말한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다. 집중하던 일을 느슨하게 하고 쉬고 있을 때 뇌는 이 디폴트 모드를 가동한다.
우리가 쉰다고 생각할 때도 뇌는 끊임없이 일한다. 주로 하는 일은 목표를 탐색하고, 생각과 생각을 연결하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계획하고 시뮬레이션 하는 일이다. 내일 중요한 행사의 사회를 맡았다고 하자. 뇌는 내가 쉰다고 생각할 때도 행사에 대해 생각한다. 잠시 긴장을 풀고 쉬는 동안에도 뇌는 일한다. 누락 된 명단이 없는지 확인하며, 행사 순서를 시뮬레이션하며 부족한 부분을 점검한다. 원활하게 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기도 한다. 나는 쉬기로 결심했지만, 뇌는 더 힘을 내어 일한다.
뇌의 디폴트 모드는 우리가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할 때 활발하게 움직인다. 내가 어떤 일을 하려고 했는지를 떠올리며,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려준다. 목표를 향한 이정표를 탐색하고, 내가 취한 전략이 적절한지를 테스트한다.
스마트폰과 밀착된 삶을 시작하고부터 지루함에 머무는 시간이 줄었다. 스마트폰과 함께라면 일상은 지루함 없이 무엇인가로 빽빽하게 채워진다. 하지만 이 채워짐 속에 떠돌며 탐색하는 뇌의 활동은 줄어든다.
다시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였다. 지루함을 허락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함이었다. 지루함을 느끼는 시간이 늘자 나의 뇌는 이전과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는 일의 목적을 재탐색했고, 우선순위를 점검했으며, 필요한 아이디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루해 하는 동안 뇌는 다르게 움직였고, 다른 아웃풋을 생산했다.
스마트폰에 매달려 살아갈 때 난 지루하지 않았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하지만 지루함이 사라질 때 난 약해졌다. 의식은 산만해졌으며, 목표에 집중하지 못했고, 우선순위는 뒤죽박죽됐다.
산만한 상태가 지속되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면, 일상 중 지루함의 시간을 확대해 보자. 스마트폰을 열어 젖히려는 유혹을 이겨내고 마음 껏 지루해 보자. 지루함은 날 강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