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와 달과 풀 Mar 26. 2022

봄의 시작을 작은 벌레와 함께...

아침샤워를 끝내고 몸을 닦으며 바닥의 떨어진 머리카락을 살펴보는데 조그만 꼬물이 애벌래가 보인다.

어떻게 이 작은 생명체가 내방에 있는지 의아했는데, 어제 산 울릉도엉겅퀴를 부엌탁자위에 올려놓은 것이 떠올랐다.

엉겅퀴에 딸려온 작은 애벌레가 꼬물꼬물 기어서 부엌에서 안방으로 기어올라왔다보다 짐작하고 건드리고 싶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두루말이 휴지를 몇칸 떼어내서 벌레를 잡으려고 하는 순간 그 작은 애벌레가 순식간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록 화다닥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경기에 가깝게 놀라며 본능적으로 그 벌레의 움직임보다 더 빠르게 휴지로 그놈을 감싸고는 꽉 짇누르며 휴지를 눌러버렸다.  처음에 내가 그 애벌레같은 것을 발견했을 때는 엉겅퀴에 붙어온 그놈의 신세가 안타까워 살짝이 휴지로 감싸서 밖에 놓아줄 요량이었는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을 본 나는 엉겅퀴에 딸려온 애벌레가 아님을 직감하고서야 몸서리치게 그 놈의 몸을 휴지로 눌러버렸다.

혹시나 그놈이 살아나올까 두려워 나는 씽크대 서랍을 열고 비닐장갑을 꺼냈다. 그리곤 그 비닐장갑안에 고놈을 죽이고 감싼 그 휴지뭉치를 집어넣고 입구를 꽁꽁 묶어버렸다.

한참을 지나고 나는 그놈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꽁꽁 묶은 비닐장갑의 손가락 하나를 가위로 잘랐다. 그런데 차마 그놈의 실제 모습을 직면할 자신이 없다. 그리고 그놈이 무엇이든 나한테는 그 존재감만으로도 엄청나게 정신적인 육체적인 위협이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므로 구지 어떤 생명체인지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는 결론이 이르렀다.

어쩌면 그놈의 소름끼치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나는 그놈을 감싼 휴지를 넣은 비닐장갑을 다시 또다른 비닐장갑에 넣어서 꽁꽁 묶었다.

그리곤 쓰레기봉지에 넣었다.

이렇게 나의 울릉도의 봄은 벌레의 출몰과 함께 시작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년 나의 관사에 출몰한 벌레는 몇 가지 된다. 그 중에서 가장 끔찍했던 것이 지네였다.

씽크대 안에서 라면을 하나 꺼내려고 문을 열었는데 작은 지네 한 마리가 엄청나게 많은 다리로 씽크대 안쪽에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에프킬라를 빨리 가져와서 그 지네의 몸에 분사를 시작했었다. 지네는 에프킬라를 몸에 맡고는 재빠르게 꿈틀대며 빠른 s자로 움직였다. 나는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며 계속 에프킬라를 분사했고, 그 지네는 하얗게 에프킬라를 뒤집어쓰고 한참만에 온몸을 뒤척이다가 잠잠해지며 죽음을 맞이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의 아기들은 귀엽다.

그런데 항상 예외는 존재하는 법.

다리가 없는 뱀이나, 다리가 너무 많이 달린 그리마나 지네같은 것들은 소름끼치게 싫다.

그런데 이곳 울릉도에는 뱀은 없는데, 지네 그리마 등 조그만 생명체들이 수시로 집안에 출몰을 한다.

그래서 이곳 관사 사람들은 창틀과 현관문에 해충방제약을 뿌려놓는다.  그러면 벌레들이 창틀과 현관문등을 타넘어오다가 그 약을 밟고 넘어와서 힘을 못쓰고 서서히 죽어간다고 했다.

나는 작년에 해충방제약은 한세트 사놓고 사용을 하지 않고 두었는데 겨울 지나고 초봄에 벌써 벌레를 발견하고 나니 그 약을 올해에는 사용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 관사에 올 때 나는 다리가 불편하여 바닥에서 자고 일어나기 불편할 듯 하여 침대를 가져왔는데 바닥에서 몇 마리의 벌레들을 발견한 이후로 침대를 정말 잘 가져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레들이 침대위로는 아무래도 덜 올라올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방바닥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는 내 몸과 얼굴위로 벌레들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정말 몸서리처질 정도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나는 나의 침대를 정말 감사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렇게 울릉도의 봄은 작은 벌레와 함께 시작되는가?

그렇지 않다.

이쁜 꽃도 피고,

맛있는 나물도 있고,

그리고 걷기 힘들 정도로 내 몸을 날릴 듯한 바람도 있다.

삶은 항상 여러가지 색깔들로 물들여진다.

* 2022. 3. 26. 나리분지에서 찍은 꽃사진(검색하니 샤프란일 확률 60%로 나온다.)

작가의 이전글 시험점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