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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달과 풀 Dec 05. 2022

D-day28

2022.12.3

지난 토요일  같은 직장의 등산애호가이신 선생님, 그리고 이곳에 놀러온 친구와 함께 셋이서 깃대봉을 다녀왔다.  처음엔 성인봉을 가려고 하였으나 성인봉이 내가 올라가기에 무리가 있을 듯 하여 그리 높지 않고 평탄한 깃대봉에 다녀왔다.  차장이 다녀왔는데 깃대봉은 나리분지에서 올라가는데 길이 많이 경사지지 않아 올라가는데 그리 힘들지 않다고 해서 그쪽으로 정했다. 

  아침7시 10분에 저동에 있는 약국앞에서 아침 7시 10분 버스를 타고 가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 눈을 떠보니 이미 7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늦잠을 잔 것이다.

 추운 곳에 떨면서 우리를 기다릴 것 같은 선생님께 죄송스런 마음이 들어 우리는 뒤따라 갈테니 먼저 가시라고 메세지를 보냈다.  그리고 서둘러 아침을 가볍게 군고구마 몇 개와 사과 그리고 계란을 넣은 볶음밥을 먹고 출발을 했다.   저동에 있는 약국에서 출발해서 천부까지 가면 그곳에 나리분지로 가는 버스가 있는데 이 버스가 작년초에만해도 녹이 쓸어서 '도대체 저렇게 낡은 버스가 운행이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부식되고 낡아 있었는데 지금은 새 버스로 교체되었다. 

 새 버스로 교체되어서 쾌적하긴 하지만 작년처럼 그 낡은 부식된 버스를 못봐서 알 수 없는 서운함도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낡고 부식된 차는 아마도 이곳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낡은 것에서 오는 정감을 나는 느꼈는 것이다.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손때 묻은 것, 낡은 것, 느린 것, 불편한 것들에 정이 가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아마도 내가 이제 낡은 몸이 되고 있어서 동질감을 느껴서 그러한 것인가?

 깃대봉 가는길은 저동 약국앞에서 7시 10분 버스를 타고 천부터미널에 가서 그곳에서 나리분지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저동에서 천부까지는 약 30분정도가 소요되고 천부에서 나리분지는 고불고불한 경사로를 한 이십분정도를 가야한다. 

 선생님은 저동 버스를 타고 이미 출발을 했고 나는 친구를 태우고 나의 소형 차를 몰아 천부에 도착을 하니 선생님이 길가에서 어찌 알아보셨는지 내 차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드신다.  내차는 워낙 소형차이고 바퀴에 바람이 없다는 경고등이 떠서 나리분지 경사로를 올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천부에서 나리분지를 버스를 타고 갈 것인지 아니면 불안해도 내 작은 차를 가지고 갈 것인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돌아올 때 편리할 것 같아 조금 무리가 되어도 내 차를 운전해서 나리분지로 올라갔다.

 용량이 작은 내차는 경사로를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멈춘다.  처음 그런 경험을 했을 때는 등이 오싹해지면서 식은땀이 나는 것을 경험했다.  그 이후로 내 차로 나리분지를 올라갈 때마다 긴장이 되었는데 그것도 몇 번 반복되다보니 이젠 그러려니 한다.   그리고 이제 요령이 생겼고 게다가 차의 그런 성질을 알기에 오르막에서 멈추어도 자동기아변속을 하고 있구나 여기고 크게 당황하지는 않는다.

  내 차는 조금 불안하긴 했으나 다행히 별 문제없이 나리분지에 잘 올라갔다.  얼마나 기특한지 모른다.  그런 내 차를 나는 '집쥐'라고 이름을 지었다. 

  나리분지에 도착하니 초겨울이라 산은 단풍이 다 지고 가지만 남아있다.  그야말로 살들이 다 떨어져나간 생선 뼈다귀같이 앙상한 나무들만 소복이 숲을 이루고 있다.  그래도 그런 뼈다귀같은 나무가지들이 햇볕에 반짝이니 그마저도 이뻐보인다.

 차를 나리분지 둘레길 산책로 입구에 주차를 하고 천천히 걸어서 숲속길로 들어섰다.  몇 주전에만 해도 나리분지는 노랑 빨강 연두 잎들이 절정을 이루고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꽃송이처럼 화려가기 그지없었는데 이제는 화려한 옷가지를 다 벗어버리고 처절하게 찬바람을 맞고 있으니 처연하게까지 느껴진다.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한꺼풀 한꺼풀 더 두텁게 옷을 껴입는데 나무들은 입고 있던 옷가지를 다 벗어던져버리고 처연하게 바람과 추위를 맞이하고 있으니 애처롭다.

 이 애처롭다는 것은 그저 인간의 감정이입이 되어 그런 것이지 어찌보면 나무들은 그저 겨울 동면에 들어간 곰처럼 눈감고 긴 겨울잠을 자는 것일 수 도 있다. 

 나리분지는 다행히 눈은 쌓이지 않았고 그래서 걷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나는 김장김치할 때나 입던 아주 두터운 겨울 초록색 오리털파카를 입고 동료선생님이 손수 짜준 초록색 목도리(hand made라고 택도 붙어있다.)를 목에 감고 그리고 귀도리(이것 역시 동료선생님이 손수 떠주신 것)를 머리에 쓰고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쾅쾅 걷게 되면 다리에 무리가 갈까 조심스레 한발 한발 소리를 내지 않고 걸음을 옮기며 숲속 나무들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었다.  더 천천히 명상하듯 걷고싶었으나 동행한 분들이 불편해할까봐 그러진 못했다.

 여러명이 가면 이런 것들이 조금 불편하다.  내가 걷고 싶은 속도로 걸을 수 없다는 것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많이 놓친다는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조용히 걷고 싶은데 함께 걸으시는 선생님은 빨리 걸으시면서 봇물처럼 많은 말씀을 하신다. 걸음은 나의 속도에 맞춰서 애써 천천히 걸으시는데 하고싶은 말씀은 정말 많이 하신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른데 나는 조용히 혼자 걸으면 내 눈과 귀가 자연에 집중하여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좋은데, 옆에 같이 가는 선생님은 워낙에 많이 다녀본 길이라 아쉬움이 없으신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걷는 것을 더 좋아하시는 듯 했다.   

 나리분지 둘레길은 경사가 없고 거의 평지길에 가깝다.  알봉둘레길을 빠른 걸음으로 돌면 한시간안에 돌 수 있을 것인데 나는 슬금 슬금 산천구경하면서 느릿느릿 걸어가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 밖에 없다.

  동행한 선생님은 등산 전문가이신지라 틈만 나면 산에 가신다. 그리고 그 분은 하루에 이만보 넘게 걷는 것이 일상이신 분이라 나의 보폭을 맞추시느라 꽤나 답답하셨을 것 같다.   

 그래서 "선생님! 저랑 같이 가니 답답하시겠어요."하고 말씀을 건네면 " 하이구 아닙니다. 천천히 가면 되지요." 하시며 마음을 편하게 해주신다.  한참을 걷다보면 갈대밭이 나오는데 이 갈대를 어르신 네분이서 밑둥을 잘라서 묶고 계셨다.  그것을 왜 자르는지 여쭤보니 투막집을 보수하는데 사용한다고 하셨다.  투막집을 두 개 지나면 너른 매밀밭이 나오는데 메밀은 다 지고 이제는 매밀 줄기마저 다 매말랐다.  메밀꽃이 지고도 메밀밭은 이쁘다.  

 그도 그럴 것이 매밀줄기가 정말 예쁜 붉은 색인데 이 붉은 색이 소복이 모여서 햇빛에 빛이 나니 그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그래서 나는 이 메밀밭에 오는 것을 정말 즐거워하고 사진도 많이 남기려 애쓴다.  메밀밭에는 흉측하게 생긴 허수아비도 있는데 먼곳에서 보면 꽤 낭만적으로 보인다.  허수아비가 흉측하다고 표현한 것은 허수아비를 흡사 미라처럼 천으로 머리부터 몸통까지 둘둘 감아놓았고 그 천의 일부가 떨어져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가까이서 얼굴없는 미라 같기 때문이다.

 이 미라같은 허수아비가 지키고 서있는 메밀밭이 끝나는 지점에 작은 출렁다리가 있는데 이 출렁다리는 짧은데도 불구하고 심하게 흔들려서 걸어가면 짜릿하고 아찔함을 느낄 수 있다.  장난하길 좋아하는 나는 항상 이 출렁다리를 건너갔다가 왔다를 반복하고 지나간다.

 깃대봉 올라가는 길은 이 출렁다리 왼쪽에 있는데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고 완만하며 이쁜 길이다. 

 그래서 이 깃대봉은 등산을 잘 못하는 누구라도 크게 걱정없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울릉도는 어딜 가도 그렇지만 산꼭대기에서는 항상 바다가 보인다.  그리고 바닷가에 드문드문 있는 작은 집들과 그 집들과 집들을 이어주는 하얀 길들이 멀리 떨어진 집들을 이어주고 있다.   그리고 이 하얀 길은 어찌보면 겨울의 햇빛받아 빛나는 하얀 나뭇가지를 닮아있기도 하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은 왔던 길을 돌아갈 수도 있고, 유명한 가수 이장희가 살고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다.  그런데 출발지점으로 돌아가는 길은 완만한데 비하여 이장희가 살고 있는 마을로 가는 길은 급경사지라 가기가 꺼려져서 동행한 선생님만 그길로 가시고 나와 친구는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다시 그 흔들다리를 지나고 메밀밭을 지나서 굽어진 둘레길을 천천히 걸어나와 갈대밭과 투막집을 지나서 돌아왔다.  그렇게 오전일정을 마치고 천부에 있는 식당에서 다시 모여서 따뜻한 점심을 먹었다.

이달 17일에 문닫을 예정이라는 이 집은 강남뷔페라는 상호로 장사를 하고 있는데, 구천원으로 금방 질높은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꼭 빼먹지 않고 두 번을 가져다 먹는 음식이 있는데 그것은 호박죽이다.  겨울호박이 유난히 달기도 하지만 주인아주머니 솜씨가 워낙 좋아 조미료없이 아주 맛난 호박죽을 먹을 수 있어 밥을 다 먹고 나서 이 호박죽을 꼭 한 번 더 가져다 먹는다.   감사히 잘 먹고 우리는 다음 코스를 어디로 갈 지 의논을 해서 태하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태하는 해안산책로에 멋진 절경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같이 동행한 선생님의 표현을 빌면 달의 암석같은 돌들같다라고 했다.  -- 이어 오후 태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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