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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달과 풀 Dec 02. 2022

그림속에 담아둔 시간

맑은 가을 날 천부에 있는 뷔페집에 들렀다.  고작 팔천원에 먹을 수 있는 집밥 같은 고급(?) 부페집이다.  그곳 주인은 크게 이문을 남길 생각이 없는지 저렴한 가격에 질좋은 신선한 재료로 금방 만든 그날의 음식들을 준비해놓는다.  

 그 식당은 천부의 좁은 골목길 안쪽에 위치해있어 관광객들은 찾아가기 힘들 것이고, 주로 지역주민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예전 어느날 이곳에 왔을 때 가수 이장희를 본 적이 있다.   그 분은 외국인 여성과 다른 한국 중년의 남성과 동행을 했었는데 뒷모습이 생각보다 외소하다 여겼다.  

  그 식당은 점심시간인 12시가 조금 지나면 음식이 동이 나고 만다.  음식이 동이 나면 자연스레 점심 장사는 끝이 난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보니 인근 공사장 인부들이 장부에 그날 그날 먹은 것을 기록해놓고 매일의 점심을 그곳에서 해결하는 모양이다.  손바닥보다 작은 외상장부가 카운터에 소복이 꽂혀있다.   그날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한 나는 그곳에서 접시에 이것 저것 다 담았다.  

  이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온 지 몇 번 되지 않는데 주인아주머니는 그 많은 손님중 용케도 나를 알아보시고 인사를 하신다.  그 바쁜 와중에도 과하지 않게 손님들이 오실 때마다 반가운 인사를 하시는 주인아주머니를 보며 대단한 분이라고 여겨졌다.  

 나는 내가 소홀히 한 많은 시간들을 바쁘고 피곤한 주변환경을 탓을 하며 스스로 합리화를 하며 크게 중요하지 않는 일은 가볍게 지나치는데 이곳 주인아주머니는 그 바쁜 와중에도 손님들에 대한 인사를 빠트리지 않고 대부분의 손님들에게 친절히 대하시는 것을 보며 소소한 일에 정성을 다하지 않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무엇이든 잘 하는 사람은 그 어떤 환경에서도 잘 하는 것이고, 못하는 사람은 못하는 이유를 주변환경에서 찾으며 핑계삼으며 합리화한다.

  푸짐하게 대부분의 음식을 접시에 담아와서 먹으니 배가 부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들인 정갈한 음식을 남기는 것은 주인 아주머니께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마지막까지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먹은 음식임에도 과분한 음식에 너무 적은 댓가를 지불한 것 같은 미안함을 느끼며 그 식당을 나섰다.

 차를 몰아 나리분지에 갔다.  포근한 날씨다.

 관광객들이 야영장 식당에서 삼삼 오오 떼를 지어 담소를 나누며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있다.  식당보다 몇 배나 더 키가 큰 나무에는 가을 단풍이 노랗게 또는 갈색으로 물들고 있다.   야영장식당 앞 둥근 밴치에 앉아서 내가 산 빨간 야영의자를 놓고 스케치북에 스케치를 시작했다.

화장을 하지 않고 산발한 머리가 지맘대로 바람에 날리도록 둔 채로,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나는 스케치에 몰두했다.  멀리 보이는 하늘은 맑은 파란 빛이고 티끌하나 없는 하얀 구름들이 새털처럼 펼쳐져있다.

파랑, 하양, 노랑, 갈색, 빛바랜 초록색들이 가을 날을 그렇게 물들이고 있었고, 그 색깔들을 나는 작은 종이에 신나게 담아보았다.  그 식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얘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나는 그 사람들을 보고 나만의 시간에 푹 빠져들었다.

그 사람들은 그저 관객이었고 나는 주인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순간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느낌에 세상 더 바랄 것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저 파마끼 있는 굽슬거리는 머리칼은 지 맘대로 바람에 흔들리든가 말든가. 나는 음악에 집중하며 그림에 몰두하니 세상에 누가 있든 나와 무관한 일이 되었다.

 어느 순간 누가 내게 말을 걸어오며 나는 나만의 시간에서 깨어났다.  나의 그림이 궁금하다며 보여줄 수 있는지 물어왔고 부끄럽지만 보여드렸다.  동행한 사람들은 친구들이라며 나의 그림을 보며 흡족해했다.  그리곤 그 그림속에 있는 사람이 자기인 것 같다며 그림이 완성되면 그 그림을 가지고 싶다며 연락처를 물어왔다.

내가 누군가의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그렇게 나는 사람들의 눈에 띄는 존재가 되어있었던 모양이다. 또 어떤 이는 나에게 등산가는 길을 물어왔고, 또 어떤 이는 내게 아는 척을 해왔다.

그림을 완성하고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나의 모습이 조금 특이하기는 하다.

회색의 누비옷은 흡사 스님같은 복장이고, 굽슬거리는 머리는 길어서 가슴보다 더 길고, 화장은 하지 않아 마치 자연인같은 모습이다.  저녁에는 낮에 만나서 나의 그림을 얻고싶어하는 분이 내 그림이 완성되면 가지고 싶다며 그림을 건네받고싶으니 만날 수 있는지 물어왔다.

한참을 생각해보니 내 그림을 선뜻 낯선 사람에게 주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팔기도 뭣하다.

그 그림이 잘 그려서라기 보다 나의 소중한 일상의 한 조각이기도 해서 나 역시 나의 그림을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지극히 행복을 맛보았고 그 느낌이 그 속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분에게는 그 순간 나처럼 행복했을 것이라 여긴다. 그러니 그 그림이 잘그려진 것이든 아니든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된다.

예전 자살시도를 몇 번이나 한 친구가 있다.  보통 뉴스에서 보는 자살은 불행해서 더 이상 살고싶지 않아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간다.  그런데 이 친구는  내가 어떨 때 자살충동이 생기는지 물었을 때, 가장 행복할 때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 그때 세상을 등지고 싶다고 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친구는 가장 행복한 시간에 하지 못하고 그 친구의 인생이 무의미해졌다 여겨졌을 때 스스로 떠났다.

그 이후로 나의 그림을 가지고 싶은 그분에게서 두어번의 문자가 왔었다.  차를 한 잔 하고 싶다고 하며...

나는 그 분의 전화번호를 이후 지웠고 그 그림과 함께 고요히 추억속에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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