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하에는 골목길이 한 서너 개 있다. 그 골목길에는 집들이 다닥다닥 어깨를 나란히 하고 줄을 지어 위치해 있다. 그 골목 골목을 들어가보면 오래전부터 그곳에서 생활터전으로 살아가는 태하주민들이 살고 있다. 육지 시골마을에 가면 허름한 빈 집들이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울릉도에는 아주 작고 허름한 집에서도 사람의 온기가 느껴진다.
작은 화산섬에 집을 지을 수 있는 땅덩어리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작은 터에도 어김없이 집을 짓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산다. 그래서 울릉도의 골목길은 육지와 달리 많이 좁다.
넓은 대궐같은 아파트에 살면 서로가 부딫힐 일이 별로 없고 각자의 방에 들어가서 문을 꼭 닫고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그러다보면 가족끼리 얼굴볼 기회도 그리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은 아침일찍 학교에 가고, 학교를 마치면 학원을 돌아 늦게 집에 오고, 아이들 아빠는 회사에서 회식이다 야근이다 늦는 일이 태반이고, 그렇게 한 가족은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도란도란 얘기나누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울릉도의 마을은 마주치고 싶지 않아도 아주 좁은 골목길과 서로의 담벼락을 공유하는 집들이 서로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깝다. 신체적 거리가 마음의 거리가 된다고 들었다.
유명한 일화를 기억한다. 어느 남자가 여인을 사모하여 거의 매일 연애편지를 써서 그 여인에게 편지를 붙였는데 결국 그녀가 결혼한 남자는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편지를 쓴 그 남자가 아니고 우편배달부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허구이든 아니든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내가 울릉도 골목길을 그래서 참 좋아한다. 처음에 직장의 지인을 따라 마을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그 분이 주민의 마당으로 쑥 들어가서 지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어? 다른 사람 집에 막 들어가도 되요?"하고 여쭈니 "여기는 다 사람 지나다니는 통로예요."하며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그날 이후로 나는 울릉도 좁은 마을 골목길에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니 영역 내 영역 크게 따지지 않고 나의 좁은 마당을 기꺼이 다른 주민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그 마음이 나를 빗장을 풀게 했는 것 같다.
태하는 저동마을과 달리 길다란 골목길이 가지런히 나있다. 한 눈에 거의 골목길이 훤히 보인다. 나는 이곳 태하 마을에 정말 마음에 드는 집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섬 게스트하우스'다.
이 섬게스트하우스는 미술을 전공한 혼자 사는 남자분이 운영을 한다고 하는데 그 집은 예전 집을 개조하지 않고 그대로 게스트하우스로 꾸며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그렇게 운영하고 싶다고 나도 태하에 집을 하나 사서 '섬게스트하우스2'를 운영하고 싶다고 하며, 그러면 명의도용 소송에 휘말리지 않을까? 하니 직장동료가 섬게스트하우스 말고 '썸'게스트하우스를 하라고 하면 우스개소리를 했었다.
내가 가려는 목적지는 태하의 해안산책로와 등산인테 이 섬게스트하우스를 휴대폰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태하입구에 차를 주차하고 골목길로 들어섰다.
골목길 입구에는 관공서가 하나 있는데 관공서 계단에 하얗고 토실토실 살이 오른 고양이 한마리가 햇볕을 쬐며 웅크리고 앉아서 나의 가는 모습을 고개를 돌려가며 보더니 내 뒤를 살금 살금 따라온다. 몇 발짝 더 걸어가니 발벼락 구멍에서 희고 검은 무늬를 가진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아서 나를 또 지키보고 있다. 조금 더 가니 토실토실한 흰 고양이 한 마리가 또 한마리가 골목길에서 어슬렁거리며 소리없이 나를 따라온다.
총 세 마리의 고양이들이 그 고양이 특유의 유연한 몸짓을 하며 살금살금 다가오더니 내 발 주위를 맴돌더니 내 신발에 몸을 비빈다. '나 간택된거니? ㅎㅎ'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고양이를 무시하고 섬게스트하우스를 살펴보았다. 입구는 다섯개정도의 계단으로 마당에 올라갈 수 있고, 입구 왼쪽 담벼락에는 타일에 그림을 그리고 구워서 벽면을 장식해두었고 오른쪽 담벼락엔 담쟁이가 장식을 학 있는데 잎은 남아있지 않고 짙은 고동색 마른 줄기만 담벼락을 이리 저리 움켜잡고 겨울을 날 준비를 하고 있다.
마당에는 화단이 적당히 보기좋게 가꾸어져있고, 마당에 들어서서 주인 없는 집 샷시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내부가 참 독특하였다. 신발 벗는 곳이 있고 길다랗게 나무로 된 마루가 있으며 그 안에 섬처럼 작은 방이 있고 복도 오른 쪽에 작은 방문들이 몇 개 보였다. 섬안에 작은 마을 그 안에 작은 집 그 집안에 섬같은 작은 방 하나... 마치 액자안에 있는 또다른 액자같은 방의 모습에 재미를 느꼈다. 예전 살던 사람의 집 모양을 전혀 손대지 않고 그대로 살린 그 집모양은 정말 아름다웠다.
낡은 것에서 나는 정을 많이 느낀다. 불편하지만 그 낡은 것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두고 생활을 하니 불편함은 있겠지만, 요즘 건물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낭만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이다.
"아! 나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마을을 쭉 지나서 해얀산책로를 올라갔다. 지그제그로 된 길을 따라 올라가면 탁트인 바다가 보이며 동료선생님이 표현한 달의 암석같은 기암괴석이 있는 곳에 데크를 따라 걷게 된다.
데크가 끝나가는 지점에는 아주 작은 동굴같은 것이 보이는데 그곳에 예전 강치(물개)가 살았다고 바닥에 누워있는 낡은 표지판에 설명되어있다.
그곳을 돌아서 지나면 다시 바다가 보이고 산중턱에 작은 정자가 보이는데 그 정자로 올라가 바다를 한 참 보고나서 돌아오니 갈림길에 밧줄로 길 입구를 막아놓았다.
선생님은 그 길을 지나가야 한다며 밧줄밑을 허리를 숙이고 벌써 넘어가셨다.
나는 걱정스런 마음에 "선생님! 그길로 가면 위험한 것 아니예요?"하며 여쭈니 "아이 와봐요."하며 따라오라고 하신다.
사실 나는 예전 그 선생님을 따라 등산을 한 번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내가 불귀의 객이 되는줄 알았었다. 이 얘기는 나중에 적어야 할 것 같다. 아무튼 그때 '조난발생우려'라고 쓰여진 통제된 길을 여러번 가봐서 괜찮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겁없이 따라나섰다가 나는 그때 집에 못돌아오는 줄 알았었다. 나는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절대로 통제된 길은 가지 않겠노라 다짐을 했었는데, 이 선생님이 또 나를 통제된 구역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라 여겼다.
이미 한 번의 경험으로 나름 불신감이 쌓여있던 터라 거리낌이 있었지만 혹시라도 무너진 길이나 위험한 절벽이 나오면 아무리 멀더라도 돌아올 마음으로 따라서 나도 그 밧줄밑을 지나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고 그곳을 통과했다.
길은 예뻤다. 나뭇잎들은 떨어지고 앙상하지만 바닥에 초록색 풀들은 마치 한여름의 그것처럼 푸르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니 커다란 밀림의 것 같은 고사리들이 바람에 떼로 춤을 춘다. 나는 그새 즐거워졌다.
선생님을 따라 제1전망대로 오르고 제2전망대를 올라가니 태하마을이 아름답게 보인다. 다닥다닥 붙어지어진 초록, 빨랑, 파랑, 회색의 사각 지붕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쁘다.
그 많은 집들은 크기가 다 비슷비슷하여 어느 한 집이 나잘났어 하고 두드러지지 않고 서로 잘 어우러진다.
전망대에서 그리 마을구경을 하고 돌아가야 하는데 선생님에 대해 불신감이 있던 나는 위험하면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니 "고만 괜찮으니 따라오소"하며 다른 길로 올라가신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선생님을 따라 다른 길로 따라올라가니 예전 내가 한 번 가봤던 곳이다.
이제 태하마을로 내려가는 길로 천천히 내려오니 그 높은 밭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이 있으시다.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여쭈니 칡을 캐고 계신다고 했다. 따라온 친구는 그 칡을 맛봐도 되냐고 여쭈고 허락을 받은 다음 칡의 마디진 부분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떼어내고는 애써 껍질을 까고 맛을 본다.
내려오는 길은 집들이 몇 채 있다. 그 길도 예쁘다. 길가 작은 터엔 서양채송화꽃이 펴있고, 부지깽이 나물도 보인다. 골목길엔 집을 고치는 인부 몇 명이 작업을 하고 있고, 부지깽이 씨를 받는 아주머니는 마당에서 열심히 작업을 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