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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달과 풀 Sep 15. 2024

감사

아침을 굶고 출근했다. 사과 세 개로 아침을 때우려고 가방에 넣어 왔다. 사무실 도착 후 사과를 씻어 우적우적 먹고 있으니 남직원 한 명이 출근한다. 씻은 사과 하나를 내밀며 드시라고 했다. 그렇게 서로 인사를 했는데 직원분이 내 책상 위에 종이가방 하나를 놓아두었다. 무엇인지 여쭈니 직원 사모님이 직원분 일을 잘 도와줘서 내게 고맙다고 집에서 구운 빵과 쿠키를 보내주셨다고 했다. '오잉?' "월 십만 원 용돈 주시는 분이 어찌 이런 귀한 쿠키를 보내주셨어요? 정말 착하신 분이네요"  깔깔 웃으며 말하니 직원분이 커다랗게 고함치듯 "좋은 사람이라요"하며 환한 웃음으로 말한다.  사실 직원분은 그전에 사모님께 한 달 용돈 십만 원을 받아서 생활한다고 하여 내가 사모님께 전화해서 용돈 만원 올려달라고 말씀드려 볼까요? 하며 우스개 소리를 한 적이 있다. 그렇게 나는 사무실에서 좀 짓궂다.  이 집 저 집 다들 사정이 비슷하지만 외벌이 가장을 둔 가정은 특히나 생활비가 부족할 터이고 당연 남편 용돈은 박할 수밖에 없다. 그런 알뜰한 아내가 내게 손수 구운 쿠키를 만들어 주셨으니 너무 소중한 선물이라 "집에 있는 딸 가져다줘야지"라며 나는 신이 나 말했다.

그리고 한일도 없는 내게 정성스러운 선물을 보내주신 사모님께 정말 잘 먹겠다고 말씀드려 달라고 했다. 올해 받은 최고의 선물이다. 살다 보면 큰 선물 작은 선물 등 여러 가지 선물을 받지만 그중 가장 소중하고 마음이 가는 선물은 비싼 선물보다도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이다.

예전 학교에 근무하다 발령 나서 올 때 운영위원분들이 파티(?)를 열어주셨다. 대장님이 발령 나도 안 해주는 파티를 나를 위해 식당에서 운영위원 모두 모아서 맛난 오리고기를 사서 파티를 해주었는데 그 겨울에 노란 프리지어 꽃을 한 다발받았다. 어찌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우리 집 거실에는 그때 받은 프리지어꽃이 아직 꽃병에 꽂혀있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큰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비록 잘하지는 못했으나 그리 부족한 사람을 인정해 주고 아쉬워해주는 따스한 마음에 나는 그곳을 떠날 때 그렇게 미련을 두고 나오게 되었는가 보다.

살다 보면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런 행복감은 많이 느끼기 어렵다.

어제는 딸아이가 이제 직장인이 되기 위한 관문을 하나 통과했다. 직장 출근하기 전까지 몇 달의 시간이 있기에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게 하기 위해서 어학연수를 여행 삼아 다녀오라고 돈을 보냈다. 그리고 대신 저녁은 딸아이가 샀다. 이제 직장에 출근하면 긴 시간 여행도 하기 어렵고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 어렵기에 나는 딸아이에게 벌써부터 약속을 해왔었다. 그리고 이제 딸아이는 조만간 어학연수를 다녀올 예정이다. 나는 돈만 주고 모든 것은 딸아이가 알아서 하기로 했다. 딸아이는 홀로 하는 여행은 국내도 해본 적이 없는데 해외에서 조금 살다가 와야 한다. 고작 내게 물은 것은 학원 목록 보여주고 "엄마는 어떤 학원이 좋을 것 같아?" 라며 내민 학원 목록에서 "나라면 시골 조용한 곳을 선호하겠지만 너는 큰 학원이 좋을 것 같아" 요정도 외에는 알아봐 준 것이 없다.  워낙 어설픈 딸아이라 컵을 잡으면 떨어뜨리기 일쑤고 입은 옷은 벗은 자리가 쥬자리이고, 문을 열면 닫을 줄 모르고, 음식물 쓰레기는 도저히 만질 수 없고, 침대 위가 쓰레기통이고, 허점 투성이인 딸아이가 이제 홀로서기를 위해 달리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워낙에 부족한 엄마라 넉넉지 않은 돈밖에 줄 것이 없다만 그것이 살다 보니 지나치게 간섭하는 엄마보다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을 가끔 느낀다. 이제 딸아이가 직장을 다닌다고 하니 새롭게 보일 때도 있다. 그렇게 어설프던 딸아이가 가끔 똑똑한 소리를 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이런 것도 생각할 줄 아나? 싶을 때도 있다.  그리고 딸아이가 돈 벌어서 내게 퇴직 후 해외여행은 한 번 꼭 보내준다고 선언했다. 그 말에 월급 받아서 생활비 쓰기도 빠듯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쁠 것 같지도 않다. 내 돈으로 가는 여행보다 더 신날 것 같긴 하다. 룰루랄라~~~~

아이들을 키우는 가장 큰 목적은 '독립'이라고 이영하 소설가가 말했다. 내 두 딸 중 하나는 이제 정신적 독립과 경제적 독립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인생 숙제는 조금씩 마무리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내 딸들이 스스로 그렇게 독립이 되고 나면 나는 나의 삶을 좀 더 알차고 가치 있게 보낼 궁리와 그리고......... 못 이룬 꿈들을 이룰 수 있도록 애쓸 일만 남은 듯하다. 노력해서 단시간에 이뤄지는 것이 있고, 반드시 세월이 흘러야 마무리되는 일이 있는데 자녀양육은 반드시 세월이 수반되는 일이다.  스스로 잘 자라준 딸아이에게 감사한 날이다. 그리고 내게 소중한 먹거리선물을 주신 직원분께도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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