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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담 Jun 19. 2018

민규동, <허스토리>

브런치 무비패스 5.

 매번 스마트폰으로는 흘러가는 그날의 뉴스만 접하고, 집에 TV도 없다보니 새로운 영화 소식에 둔감하다. 브런치 덕분에 거의 새로 개봉하는 영화를 다 보긴 하지만, 준비 과정은 전혀 모르고 개봉 순간에야 알게 되는 때가 많다. 이런 걸로 나이를 먹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어 헛웃음만.


 이번엔 감사하게도 집에서 가까운 신도림이다. 퇴근 하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들렸다. 비가 왔는데 무리해서 비를 맞고 자전거를 탔더니 신도림에 도착하니 비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로 삼분되는 영화상영관 천하에서 대한극장에 이어 이번엔 이름도 생소한 씨네Q. 핸드폰이 저렴한 걸로만 유명한 테크노마트에 있어 별 기대도 안했는데, 새로 리모델링을 했는지 매우 크고 깔끔했다.

 거의 시설로는 내가 경험한 영화관 중 톱이었는데, 대기업의 자본력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관객이 쉴 수 있는 공간

 포스터를 대충 봤다가 표를 받으면서 제대로 봤는데 영화를 보고서야 오른쪽 끝에 서있는 남자가 김준한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박열'에서 너무나 일본인 연기를 자연스럽게 잘했어서, 뭐 그 작품에서야 다 연기를 너무 잘했지만, 또 비슷한 역으로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분장을 자연스럽게 참 잘해서 김희애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포스터의 '국가대표'라는 문구가 너무 거슬린다. 

 항상 이번엔 어떤 매력적인 선물을 줄까 기대가 되는데 이번엔 '위안부'를 잊지 않게 해주는 팔찌였다.

 주제가 '일본군 위안부' 이기 때문에 매우 화가 나고, 슬플 거라는 것은 누구라도 아는 스포일러겠지만. 일부러 우울한 것을 찾아보지 않을거라 이 영화도 흥행 못하겠다는 걱정은 나 혼자만의 설레발.

 

 그리 감수성이 무디거나, 인간성이 아주 더러운 것도 아닌데 어릴 때 너무 울보였던 탓인지 고등학교 이후에 콘텐츠에 감동 받거나 슬퍼서 눈물 흘려본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심히 우려를 했다.  예컨데 극장의 모든 관객이 울었던 '7번방의 선물' 이나 '신과 함께'는 쥐어짜게 억지로 신파를 만들어낸 것임에도 그냥 울컥만 했지 끝까지 눈물 흘리지 않았다. 냉혈한이라는 자괴감에 빠져 살다가, 십수년 만에 <허스토리>를 보고 드디어 눈물을 흘렸다. 무려 3번이나. 

 나를 눈물 흘리게 한 첫 영화. 무슨 표현이 더 필요할까.

  

 울게 했기에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없지만, 울지 않더라도 좋은 영화임에 틀림없다. 교육적인 이유, 한국인이라는 역사적 의무감을 떠나서 제3자의 시선으로 그동안 막연하게 동정심만 갖고 있던, 그냥 말로만 힘들었을 것이라는 짧은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픽션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는 픽션보다 더 끔찍하게 잔인했을. 고통과 슬픔을 지켜봐야 하지만, 영화 보는 내내 괴롭다기 보다는 뭔가 치유되는 기분을 느꼈다.

 김희애의 부산 사투리는 어색하다. 그러나 그동안 '피부에 양보하세요'만 떠오르던 귀부인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내고 멋진 도전을 했다. 모든 배우들이 뛰어난 연기를 했다. 그럼에도 뭔가 어색함이 남는 것은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른 김해숙의 존재. 

 기승전-위기-결말에서 거의 완벽한 반전. 결말이 조금 아쉬웠지만. 

 일본군가도 누가 부르냐에 따라 아름답게 들릴 수 있다는 역설.


 문숙은 너무 아름다워서 노인 연기가 어울리지 않는다. 예수정 님의 내공도 어마어마하다. 분장을 보고 눈물 흘린 것도 처음일 것이다. 특별출연으로 한지민이 나왔다는데 교사 역이 맞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동주, 박열, 군함도. 뭔가 나쁜 일본인 역할은 고정으로 하시는 듯한 김인우, 야마노우치 타스쿠, 요코우치 히로키. 항상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텐데 영화 출연에 감사할 따름이다.

  

 여배우 기근 현상에 뛰어난 여배우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영화였다. 이유영이 너무 아름답다. 김해숙 다음으로는 김선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요즘 왜곡되고 변질되는 페미니즘이 딱 영화처럼 멋지게 구현되었으면... 참 모순적이다. 가장 슬프고 최악의 상황에서 반대로 가장 강인한 모습이 피어나오게 되니...

 

 아픈 역사다.

 다시는 어느 인종에서나 민족에서나, 평화만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며.

 <간신>에서 많이 아쉬웠는데, 민규동 감독의 성공작이 되기를 바란다.

 

이 영화는 꼭 보라고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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