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괴공(成住壞空)

빈센트 반 고흐, "붕대를 맨 자화상"

by 룡하

(자화상을 보고 쓴 시입니다. 시와 자화상을 같이 보시길 바랍니다.)



성주괴공(成住壞空)


정신분열증이 악화되어

면도칼로 스스로 자른 귀


사라져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즐기다 죽었을까


성주괴공의 진리

영원한 것 없으니


강한 것도 약한 것도

고운 것도 추한 것도


때가 되면 예외 없이

낡고 부서지는구나



붕대를 맨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 1889년 제작.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90)는 인물화를 즐겨 그린 화가였다. 그가 살았던 시기에 인물화는 비주류였지만, 그는 인물화를 통해 기이한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내면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녹하지가 않았다. 그림주문은 고사하고 선뜻 그의 그림의 모델이 되려는 사람도 없었고, 모델을 살 돈도 여의치가 않았다. 이러한 환경 탓인지 고흐는 10년 동안 무려 40여 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반 고흐의 자화상을 보고 있으면 느껴지는 공통분모의 감정은 극도의 공허함이다. 그는 실제 삶에서 예민하고 나약한 기질 탓인지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를 괴롭혔고, 실제보다도 더 우울하고 고통받는다고 인식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자화상은 예리한 감수성을 가진 유리 같은 영혼이 고독으로 인해 조금씩 금이 가다가 결국에는 박살이 나버리는 과정처럼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그의 자화상이 그의 내면을 이해하고, 화가로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마주 대하기가 불편할 때도 있다.


고흐는 불행의 모든 조건을 갖춘 예술가로서 짧은 생애 동안 상당히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생전에는 그림에 대한 평가는 물론이고, 단 두 점의 그림만 팔았을 정도로 명성도 얻지 못했다. 그의 불운한 삶은 그가 앓았던 정신질환으로 더욱 극대화되었는데, 무엇보다도 고흐의 삶을 더 극적으로 만든 사건은 1888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고흐가 귀를 자른 사건이었다.


오래전부터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꿔왔던 고흐는 아를에 노란 집을 마련하고는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을 이곳으로 초대했다. 여기서 고흐와 고갱은 함께 살며 작품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함께 작품 제작에 몰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갱과 빈번히 성격 충돌을 일으켰고 서로를 불신하게 되자,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반 고흐는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여 격분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왼쪽 귀를 면도칼로 잘라버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갱은 파리로 떠났고 두 사람의 우정은 파국을 맞았다. 그 후로 고흐는 미친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는데, 고흐는 스스로가 미친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힘들고 슬펐다. 2달 후 병원에서 퇴원한 반 고흐는 귀에 붕대를 감은 모습의 자화상을 두 점 그렸는데, 이 자화상 속의 고흐는 그 어떤 자화상보다도 슬퍼 보인다. 눈은 허공을 쳐다보는듯하고, 삶을 향한 그 어떤 의지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보다는 상실과 상처, 불안에서 비롯된 우울과 절망이 가득하다.


고흐는 자신이 귀를 자른 자신의 행동도, 이것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도 몹시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고갱과의 이별이 이보다 더 힘들었음이 느껴진다. 고독, 외로움을 이기는 힘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출처 : 정경애, "[정경애 미술읽기] 자화상시리즈 -빈센트 반 고흐", 중도일보, 2021.11.11, https://m.joongdo.co.kr/view.php?key=20211111010002504


귀 없는 고흐의 자화상


“인생의 고통이란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라는 말을 남기고 37년의 짧은 삶을 살다 간 비극적 천재 화가이자 ‘영혼의 화가’로 알려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그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한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27세 무렵, 목사 대신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886년부터 네 살 아래인 동생 테오가 있는 파리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파리에서의 생활에 싫증을 느낀 고흐는 1888년에 프로방스 지방의 아를로 거처를 옮긴다. 아를에서의 생활은 고흐에게 행복과 불행을 한꺼번에 안겨주었다. 프랑스 남부지방의 강렬한 태양 아래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반면, 정신적인 발작을 일으켜 자신의 한쪽 귀를 잘라 버렸기 때문이다.


고흐는 생전에 그림을 한 점밖에 팔지 못했던 가난한 화가였다. 그러나 현재 고흐의 작품들은 이글거리는 듯 강렬한 눈빛과 격렬한 붓 터치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다. 고흐는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 거울 속의 자신과 주변 인물들, 풍경을 주로 그렸다.


특히 그는 40여 점의 자화상을 남겼는데, 심한 정신분열증으로 프랑스의 정신병원에 있었던 1886년부터 1889년까지 12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렸다. 자신의 모습뿐 아니라 정신병원에서의 풍경과 병실 모습, 자신을 치료해준 의사들의 모습도 화폭에 담았다. 이 또한 넓게 보면 그의 자화상인 셈이다.


고흐는 그의 생애 마지막을 프랑스 파리 근교의 오베르 마을에서 보내며 70일 동안 초인적인 창작열을 발휘해 7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1890년 7월 27일 해질 무렵 밀밭을 산책하다가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았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것은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까지 걸어간다는 뜻이다”라고 쓴 고흐의 편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평화로운 안식을 찾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 끊임없이 그를 괴롭혀온 정신착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권총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


예술가의 광기와 창조성: 천재와 미치광이는 종이 한 장 차이?


그의 숱한 자화상 가운데 ‘붕대를 감은 자화상’은 정신분열증이 악화돼 스스로 귀를 자른 후에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고통 받는 영혼을 가진 비극적인 천재 화가의 전형적인 이미지로 기억된다. 스스로를 이렇게까지 자해한 화가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고흐는 그의 일생 중 예술가로서 가장 풍성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생애 최고의 걸작을 만들어낸 시기는 그 자신이 정신분열로 심한 고통과 좌절을 겪었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렇게 심리적인 불안정은 종종 예술가들에게는 폭발적인 창작의욕으로 연결되어 왕성한 작품 활동을 가능케 하기도 한다. 고흐의 병명은 ‘하이퍼그라피아(Hypergraphia)’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경학자들에 따르면 하이퍼그라피아는 뇌의 특정 부위에 변화가 생길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흔히 간질이나 조울증 등이 그 원인이 되어 주체할 수 없는 글쓰기와 같은 창작 욕구에 빠지게 되는 질병을 말한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바로 이 하이퍼그라피아라는 이름의 창조적 열병을 앓았다.


고흐 또한 극심한 환각과 환청, 심한 우울증을 앓았는데, 우울증이 너무 심할 때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지만, 몸 상태가 좀 괜찮을 때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하루 14시간 이상의 광적인 그림 노동을 함으로써 보상 받았다. 어찌 보면 이러한 그의 창작 활동이 그의 정신병을 치료하는 하나의 방법과 돌파구였을지도 모른다. 고흐는 “나는 내 자신이 철저하게 작업에 몰입할 때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나는 항상 절반은 미친 상태로 남아 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의 창의성은 자신의 과할 정도의 긴장상태에서 나온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출처 : 최혜원, "스스로 귀 자른 반 고흐… 천재에게 광기는 필요악?", 조선일보, 2007.10.31,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0/31/2007103101278.html


빈센트 반 고흐의 ‘귀를 붕대로 감은 자화상’은 두 점이 알려져 있다. 한 점은 붉은색 바탕을 배경으로 파이프를 물고 있는 모습이고, 다른 한 점은 녹색과 파란색이 두드러진 자화상이다. 두 작품 모두 불안한 색조와 거칠거칠한 붓 터치 속에 고갱과의 불화 때문에 귀를 자른 화가의 광기가 담겨 있다. 쏘아보는 듯한 눈빛과 꼭 다문 입술에는 철저히 고독하게 살다간 한 사내의 외로움이 묻어 있어 이 그림을 한번 본 사람은 쉽게 그를 잊지 못한다. 그만큼 고흐의 작품은 인상이 강렬하고 개성이 강하다.


녹색과 파란색이 강조된 자화상을 들여다보면 뒷배경에 이상한 그림 한 점이 붙어 있다. 우키요에(浮世繪·일본 풍속화)다. 배경이 없었더라면 인물이 훨씬 더 돋보였을 텐데 그걸 모를 리 없는 고흐가 굳이 그 효과를 반감시켜 가면서까지 배경에 이 그림을 붙여 놓았다. 왜 그랬을까. 이 작품에서는 우키요에가 한 장이지만 ‘탕기 영감’에서는 정도가 더 심하다. 여섯 장이나 되는 그림이 조각보처럼 붙어 있다. 이쯤되면 고흐가 우키요에를 배경으로 그려 넣은 이유가 매우 의도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키요에가 어떤 그림이기에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던 고흐가 일본 그림을 자신의 그림 속에 간접광고처럼 집어넣었을까.


일본의 산 하면 곧바로 후지산(富士山)이 떠오른다. 후지산은 외국인에게 일본을 상징하는 산으로 각인되어 있다.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1760~1849)가 그린 ‘붉은 후지산’은 일본에서 지역 명소로만 알려진 동네 산을 전 세계 사람들이 찾고 싶어하는 산으로 화려하게 데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평소 일본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일식집에서 한번쯤 기모노를 입은 미인의 모습과 함께 후지산을 그린 이 그림을 봤을 것이다. 그만큼 ‘붉은 후지산’은 흡인력이 있다. 가츠시카 호쿠사이가 일흔을 조금 넘겼을 때 제작한 작품으로 ‘후카쿠 36경(富嶽三十六景)’ 중의 일부다. 후카쿠(富嶽)는 후지산의 다른 이름이다. 이 시리즈는 일본인이 신령스럽게 여기는 후지산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그린 우키요에로 단순하면서도 파격적인 구도와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돋보이는 명작이다.


뜬구름 같은 세상을 그린 그림


우키요에의 한자음은 ‘부세회(浮世繪)’다. ‘뜬구름 같은 세상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끊임없는 전란과 고통 속에서 근심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그야말로 부질없이 떠다니는 뜬구름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늘 아래 놓인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다. 세월의 풍화작용 속에 똑같이 무너진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진리 앞에 영원한 것은 없다. 강한 것도 약한 것도, 고운 것도 추한 것도 때가 되면 예외 없이 낡고 부서진다. 별도 나이가 들면 우주 속의 먼지로 사라지는데 사람의 일생이야 오죽하랴. 인생도 바람결에 떠다니는 뜬구름 같다. 인생이 이렇게 덧없고 무상할진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꿈 같고 환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如夢幻泡影), 이슬 같고 번갯불 같은데(如露亦如電)’. 이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상한 세상에서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것은 어차피 쓸모없는 짓’이다. 차라리 사라져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즐겨야 한다.


출처 : 조정육,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속으로 들어간 우키요에", 주간조선, 2011.10.13,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6


成(이룰 성):戊(무성할 무)+丁(장정 정)의 형성자(形聲字)이다.

住(살다 주):人(사람 인)+主(주인 주)의 형성자(形聲字)이다.

壞(무너질 괴):土(흙 토)+(눈가릴 회)의 형성자(形聲字)이다.

空(빌 공):穴(구멍 혈)+工(장인 공)의 형성자(形聲字)이다.


성주괴공이란 일체의 세계나 모든 만물이 인연따라 이루어지고(成), 얼마동안 머물러 있으면서(住), 점차로 변화되어 부서지고(壞), 마침내 사라져버린다(空)는 네 가지 과정의 모습으로, 우주와 만물의 성립·존속·괴멸·공무(空無)를 뜻하며, 이를 중생4겁(衆生四劫)이라고도 하는데 다음과 같다.


① 성겁(成劫):세계가 처음 생기는 기간

② 주겁(住劫):생겨서 존재되어지는 기간

③ 괴겁(壞劫):점점 변화되어 파괴되는 기간

④ 공겁(空劫):다 없어져 공무(空無)한 기간


이와 같은 기간을 각각 5劫씩 더하여 20中劫이라 하고, 20중겁의 과정을 네 차례 겪은 80中劫의 기간을 1大劫이라 말하기도 한다.


또한 이와 유사한 의미로 생주이멸(生住異滅)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중생4상(衆生四相)이라 하고, 따라서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중생4고(衆生四苦)라고 한다.


출처 : 심재동, "成·住·壞·空(성·주·괴·공) < 심재동의 한자 여행 < 기획특집 < 기사본문", 금강신문, 2008.04.11, https://www.ggb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7


헤세의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는 삶의 충만감과 죽음의 공포54)라는 양가감정을 지니고 살면서 분열증적인 면모를 지닌 화가 클링조어가 자신의 생애의 마지막 몇 달 동안 삶과 죽음의 문제에 직면하여 보여주는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우리는 삶의 불안이 클수록 삶의 희열은 더욱 강하고, 의욕적으로 삶을 살수록 죽음과 종말을 더욱 격하게 느끼는 클링조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클링조어는 아르마니아계 마술사와 친구 헤르만과 더불어 삶과 죽음의 문제를 토로한다. 마술사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시간을 넘어설 것을 조언한다. 헤르만은 죽음이 모든 것의 근원과 합일되는 것을 뜻하기에 죽음에 순응해야 함을 역설한다. 자아의 분열에 시달리면서 마지막 여름 몇 달 동안 열정적으로 창작에 임하는 클링조어는 말년에 창작의 세계 속에 몰두해있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연상케 한다.


54) Vgl. Gisela Pohlmann: a.a.O., S. 119.


출처 : 김선형. (2013). 헤세의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에 나타난 예술가적 존재와 표현주의적 요소. 헤세연구, 29, 5-21.

이전 05화메부리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