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자화상을 보고 쓴 시입니다. 시와 자화상을 같이 보시길 바랍니다.)
지상의 알바트로스
관능적이면서도 노골적인 성적 표현
금기 사항이던 여성의 성이 작품 주제
지상의 알바트로스였던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유죄를 선고받았었네
인간은 필연적으로 한 사회에
속하여 무리를 짓고 살아가니
아름다움과 윤리가
분리될 수 있겠는가
일그러진 얼굴, 비틀린 몸. 거칠고 어두운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누구의 그림인지 눈치챈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실레(1890~1918)의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입니다.
실레는 28년이란 짧은 생애 동안 무려 5000여 점에 달하는 그림을 남겼는데요. 대부분은 자신을 포함해 불안하고 비틀린 청춘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들입니다. 또 관능적이면서도 노골적인 성적 표현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출처 : 김희경, "관능에 담긴 비틀린 청춘의 초상, 에곤 실레[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한국경제, 2023.04.26,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112240444i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표현주의 화가다. 초기에는 스승 클림트의 영향으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양식을 선호했지만, 점차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인간을 거칠게 표현하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쉴레가 살았던 시절의 오스트리아 빈은 유럽 최고의 환락가였다. 그러나 빈은 표면적으로는 아직도 '성'에 관해서는 보수적이었다. 더구나 여성의 성은 금기 사항이었다. 그러나 그는 성이 인간의 본질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낼 도구라고 여겨서, 과감하게도 작품의 주제로 성을 택했다.
출처 : 정경애, "[정경애 미술읽기] 자화상 - 에곤 실레", 중도일보, 2021.12.09, https://m.joongdo.co.kr/view.php?key=20211209010001297
시집 ‘악의 꽃’으로 유명한 보들레르는 언어의 새로움과 안목의 새로움으로 프랑스 시 역사에 현대성의 지평을 연 시인이다. 앞선 낭만주의 시인들이 자연을 찬미함으로써 독자의 가슴에 다가갔다면, 보들레르는 우울과 고통과 광기가 들끓는 인간 자아의 심층을 들여다봄으로써 프랑스 시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올려놓았다. 특히 시인을 대중의 대척점에 놓았다는 점에서 보들레르는 현대성의 선포자였다. “이해받지 못하는 데 영광이 있다”라는 보들레르의 말은 시인이 추구하는 것이 대중의 환호가 아니라 언어의 모험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보들레르의 이런 반대중주의가 응축된 시가 ‘알바트로스’다. “흔히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잡는다./ 시름없는 항해의 동반자처럼/ 깊은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는 배를 따라가는 새를.” 날 수 있는 새 가운데 가장 큰 새 알바트로스는 날개를 펴 하늘을 날 때면 “창공의 왕자”처럼 자유롭다. 그런 알바트로스도 뱃사람들에게 잡혀서는 커다란 날개를 질질 끄는 우습고 추한 것이 되고 만다. 이 시는 알바트로스의 처지를 빌려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이야기하는 시다. 보들레르에게 시인은 지상에 붙들려 놀림감이 된 알바트로스와 같다. 대중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희롱당하는 자가 시인이다. 이때의 대중은 산업화·도시화로 지배층이 된 부르주아지를 가리킨다.
눈여겨볼 것은 보들레르가 부르주아 대중을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그 대중의 근거지인 도시 문명을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울증이 겨울비처럼 내리는 어둡고 속악한 도시의 진창 속에 머무는 자가 보들레르다. 그러나 시인은 도시의 어둠과 더러움에 지지 않는다. 보들레르가 악(mal)이라고 부르는 것은 죄악과 병고와 불행이라는 뜻을 함께 지녔다. 그러므로 ‘악의 꽃’은 도시의 죄악과 병고와 불행 속에서 피어난 꽃을 뜻한다. 보들레르는 진창 같은 현실을 통해서 현실 너머의 ‘꽃’, 곧 이상과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여기서 보들레르의 상징주의가 탄생한다. 상징주의란 현실의 모든 것을 상징으로 삼아 그 상징이 가리키는 것을 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보들레르는 ‘상응’이라는 시에서 ‘자연’을 ‘신전’으로 묘사한다. 우리가 거니는 숲은 “상징의 숲”이 된다.
출처 : 고명섭, "보들레르-랭보 ‘견자의 시학’이 연 프랑스 현대시 [책&생각]", 한겨레, 2023.12.01,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18662.html
윤리와 아름다움은 시대를 반영한다. 아름다움의 개념은 사회의 통념에 따라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다. 가령 구석기 시대의 유물로 추정되는 고대의 여신상은 현대의 미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형상을 띠고 있다.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한 추구는 태곳적부터 시도돼왔고, 그만큼 쉽사리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한 사회에 속하여 무리를 짓고 살아간다. 즉 인간의 삶에서 윤리의 개념을 떼어 놓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인식에 따라 가변적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의 개념은 윤리와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우리가 속한 사회, 가치관에 따라 상대적이라면 이는 윤리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윤리(善)와 아름다움(美)이 불가분적이라면 선한 것만이 아름답고, 악한 것은 아름답지 못한 것이 된다. 근대 사회에서 이러한 계몽주의적 사조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 사회가 악을 무엇으로 규정하든 ‘악’은 선(善)에 반대되는 개념이며 나쁘고 좋지 않은 것일 뿐이다.
이 같은 사조에 반기를 든 시인이 등장한다. 샤를 보들레르(Charles Beaudelaire, 1821~1867)다. 그의 대표작 <악의 꽃>은 윤리학과 미학을 분리하려는 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출처 : 박민수, "선(善)과 아름다움(美)의 관계에 대하여", 문화저널 맥, 2022.06.28, https://www.thema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34
1857년 8월 20일 보들레르는 센느의 경범재판소 제6법정에 출석한다. 엄숙하고 절제된 피나르의 논고와 여러 작품을 인용한 변론이 길게 이어진 후, 『악의 꽃』의 저자와 출판인 두 명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법정은 종교정신 위배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으나, 두 번째 혐의인 공중도덕 및 미풍양속에 위해를 가한 혐의로 시인에게 300프랑, 출판인들에게 각각 100프랑씩의 벌금을 부과하였으며, 「보석들」, 「레테」, 「너무도 쾌활한 여인에게」, 「레스보스 여인들」, 「영벌 받은 여인들」, 「뱀파이어의 변신」, 이상 여섯 편에 대해 삭제를 요구하였다. 그렇게 『악의 꽃』은 유죄를 선고받았고, 1949년 내려진 원심 파기 판결을 통해 비로소 복권되기 전까지 그 불명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22)
22) 브륀티에르는 “시집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악명 높은 평판을 가져다준 유죄판결이 없었더라면, 『악의 꽃』은 거의 주목받지 못한 채 사라졌을 것”이라 평가했다(Pierre-Georges Castex, “Devant la critique”, Les Nouvelles littéraires, 1957. 06. 03에서 재인용). 시집과 시인이 얻은 ‘악명 높은 평판’은 1949년 원심파기 판결이 품행인증서를 주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출처 : 이혜원. (2019). 보들레르 『악의 꽃』 재판(裁判)의 문학적 쟁점들. 불어불문학연구, 119, 177-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