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에두아르 뷔야르, "와로키와 함께 있는 자화상"

by 룡하

(자화상을 보고 쓴 시입니다. 시와 자화상을 같이 보시길 바랍니다.)



예언자


작가는 현실과 구별되어

자신의 직관을 따라가라


본인의 방식대로 실재를

표현하는 고갱의 가르침


신화와 전설, 죽음과 성

불안과 공포, 꿈과 무의식


비사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거나

일상적 이미지를 압축해 상징화


예술이란 삶에 가까이 있어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어야 하는구나



에두아르 뷔야르, 〈와로키와 함께 있는 자화상〉, 캔버스에 유화, 92.7×72.4cm, 1889, 알렉스 M. 루이트 기증


에두아르 뷔야르(Edouard Vuillard)의 작품 〈와로키와 함께 있는 자화상(Self-Portrait with Waroquy)〉은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그의 뒤편 한쪽에 와로키를 흐릿하게 집어넣은 이 초상은 상징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작가의 화풍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출처 : 정선화,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문화앤피플, 2025.12.19, https://www.cnpnews.co.kr/news/articleViewAmp.html?idxno=9013


19세기 상징주의 미술은 우의(寓意)적 상징을 특징으로 인간 내면의 세계와 상상력, 감성, 감각에 주목했다. 이들은 주제로서 신화와 전설, 죽음과 성(性), 불안과 공포 그리고 꿈, 무의식과 같은 비사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거나 일상적 이미지를 압축해 감정이나 생각을 상징화했다.


출처 : 김미선, "명화탐방기 (98) 상징주의 미술의 정수(精髓), 죽음의 섬", 전북대신문, 2024.09.30, https://www.jbpresscenter.com/news/articleView.html?idxno=504876


나비파는 1888년 폴 세뤼지에(Paul Sérusier, 1864-1927) 가 폴 고갱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작가는 현실과 구별되어 자신의 직관을 따라가야 하며 본인의 방식대로 실재를 표현해야 한다’는 고갱의 가르침을 받은 세뤼지에는 동료 화가들과 공감대를 이룬다. 언론에서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였던 단어가 곧 화파의 이름이 되었던 ‘인상’파나 ‘야수’파와 달리, 이들은 스스로를 ‘나비파’라고 명명했다. 히브리어로 ‘예언자’, ‘비밀을 드러내는 자’, ‘신에게 영감을 받는 자’를 뜻하는 ‘나비’(Nabis, nebiim)에서 비롯된 이름에 걸맞게 신지학과 심령주의에 매료되어 있었으며, 고대부터 이어져 온 신을 표현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 이는 감성과 신비로움을 연관지어 표현하고자 했던 상징주의 회화와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비파의 회화에는 평면적인 모습이 돋보인다. 인물의 형태나 풍경에서 원근법을 적용시키지 않아 입체감이 사라졌다. 그들은 색의 농담(濃淡)으로 음영과 입체적인 공간을 표현했던 전통 방식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고, 캔버스는 평면임을 인정하고 색은 색대로 그 위에 순수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캔버스라는 평면 위에 3차원 공간을 표현하는 것은 허구이며, 관람자들에게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에 그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 목판화(우키요에)는 그들에게 큰 영감을 줄 수 있었다. 단순한 몇 개의 선으로 하나의 형태를 표현해냈고, 색상을 복잡하게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림의 주제는 명료하게 드러났고, 장식적인 면에서도 훌륭했다.


또한, 나비파는 이집트시대 벽화, 중세시대 스테인드글라스, 비잔틴제국의 모자이크 작품에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평면적이고 단순한 표현방식에 이끌렸으며,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신앙과 교육의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의 장식적 기능에 관심을 가졌는데, 나비파에게 예술이란 삶에 가까이 있어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구분되어 있었던 벽이나 가구 위에 그리는 장식화와 이젤 위에 놓고 그리는 캔버스 회화의 경계를 허물기에 이른다. 실제로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1867-1947), 에두아르 뷔야르(Edouard Vuillard, 1868-1940) , 펠릭스 발로통은 포스터, 목판화, 삽화, 병풍과 부채 등을 활용한 작품을 꾸준히 이어갔다.


출처 : 한찬희, "회화의 미래를 내다본 ‘나비파’ 화가들", 한국경제, 2023.06.29,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0622760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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