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룬

알폰스 무하, "Self-portrait"

by 룡하

(자화상을 보고 쓴 시입니다. 시와 자화상을 같이 보시길 바랍니다.)



페룬


식물과 여성이 착용한 의복의 주름

땋은 머리카락, 연꽃과 덩굴의 꼬임


곡선의 반복으로 재현한 아름다움

파리를 장식한 상업 예술 아르누보


하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체코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민족적 자긍심이 자리하고 있구나


민족의 자유와 평등, 독립을 위한 슬라브 서사시는

예술적 사명의 정점이자 민족의 뿌리를 담은 작품


선과 정의를 실현하는 최고 신 페룬이시여

하늘 가장 높은 곳에서 번개를 내리치소서



알폰스 무하 , 자화상 Self-portrait, 1899, 패널에 유채, 32 x 21 cm ⓒ Mucha Trust 2025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한 국제적 예술가였으나, 무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체코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민족적 자긍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반치체에서의 어린 시절과 빈·뮌헨에서의 수련기를 거쳐, 1904년 《뉴욕 데일리뉴스》로부터 ‘세계 최고의 장식 예술가’로 불리기까지, 그의 예술의 중심에는 언제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조국의 정치적·문화적 자주성을 향한 비전이 놓여 있었다. 귀국 후 완성한 후기 대작 <슬라브 서사시(The Slav Epic, 1912–1926)>는 그 비전의 결실이자 예술적 사명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출처 : 함혜리, "알폰스 무하의 진면목 , 빛을 보고 꿈을 그리다. 《Alphonse Mucha :The Artist as Visionary》", 컬처램프, 2025.11.26, https://www.culturelamp.kr/news/articleView.html?idxno=2856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의 이름은 ‘아르누보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통용되어 왔다. 그러나 그를 단지 ‘장식적 화풍’의 대표 작가로만 인식하는 것은 좁은 범위로써 그를 알아가는 것 뿐이다. 무하는 프랑스 파리에서 상업 예술가로 명성을 얻기 전, 체코 민족주의와 슬라브 정체성에 깊은 애정을 품은 예술가였고, 철학자이며 교육자였다. 그의 아르누보는 단순한 미적 유행이 아니라, 당대 유럽의 산업화, 계몽주의 이후의 혼란 속에서 ‘정체성과 예술의 의미’를 찾기 위한 탐구였다.


전시 초반부는 바로 이 점을 짚으며 시작된다. 초기의 삽화와 장식적 패널, 포스터 등은 무하의 선과 색, 그리고 타이포그래피가 어떻게 결합되어 ‘미적-기능적 그래픽 언어’를 만들어냈는지 보여준다. 특히 <지스몽다>나 <로렌자초> 포스터에서 볼 수 있는 길게 늘어진 신체, 과장된 드레이프, 상징적 배경 패턴은 무하가 얼마나 ‘전달력’과 ‘시각적 이끌림’을 계산한 디자이너였는지를 증명한다.


무하의 대표작들은 모두 선(line)의 예술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 선은 구조를 구획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식물, 여성이 착용한 의복의 주름, 땋은 머리카락, 연꽃과 덩굴의 꼬임으로 확장되며 이러한 곡선의 반복은 아름다움(美)를 재현한다.


출처 : 여정민, "[리뷰] 꽃과 여성, 그리고 민족: 알폰스 무하, 아름다움으로 말하다 - 알폰스 무하 원화전", 아트인사이드, 2025.04.24,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5268


예술가가 사랑하는 뭔가를 위해 할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


알폰스 무하의 경우는 체코 민족의 뿌리를 담은 슬라브 대서사시였다. 체코의 국민이 자긍심을 갖는 것, 슬라브 민족들이 공동 유대감과 이상적 평화를 염원하면서 약 18년 동안 그린 슬라브 민족의 문명과 역사였다. 거대한 20~50㎡ 캔버스에 그린 슬라브 서사시는 원래의 고향에서 살고 있던 슬라브족의 조상들에서부터 종교 개혁자인 얀 후스, 얀 아모스 코메니우스, 슬라브 민족의 신성화 등이었고 역사적 맥락에 따라 배열되어 있었다.


‘예술가는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과 조국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알폰스 무하는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인생 후반기인 1899년 아이디어를 결성했다. 1900년 파리 전시회를 위해 오스트리아- 헝가리 정부에서 의뢰해 온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관의 내부를 설계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 널리 발칸 반도를 여행하면서 슬라브 인의 역사, 관습 등을 관찰했다. 이러한 경험 끝에 나온 것이 바로 모든 슬라브 민족의 서사시였다.


슬라브 서사시의 투자자는 알폰스 무하가 찾아 나섰다. 1904년에서 1909년 동안 약 5번에 걸쳐 미국을 방문했고 1909년 시카고의 부유한 사업가인 찰스 리처드 크레인에게서 재정지원을 받기로 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알폰스 무하는 1911년~1926년 동안 서부 보헤미아 즈비로그 성에 있는 크리스털로 된 스튜디오에서 그림에 집중했다. 그림은 모두 20개의 대형 캔버스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체코 역사의 에피소드 10개, 다른 슬라브 지방의 역사적 에피소드 10개로 구성되었다.


알폰스 무하는 슬라브 공동의 유대와 평화를 향한 마음으로 그린 그림은 전부를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10주년인 1928년 조국에 기증했다.


출처 : 김서련, "[유럽 인문학여행15]체코의 화가 알폰스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 “예술가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웅상뉴스, 2024.11.01, http://m.ungsangnews.com/view.php?idx=43084


이 글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아르누보 예술의 절정을 구가한 체코 출신의 화가 알폰스 마리아 무하의 작품 세계와 범슬라브주의라는 사상적 흐름을 함께 관찰하려는 시도이다. 장식적, 상업적, 실용적 예술로 평가받는 아르누보와 범슬라브주의라는 이념은 함께 설 자리가 별로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범슬라브주의를 러시아 중심의 여타 슬라브 민족의 결집으로 통상 읽어내는 협의의 보수적 범슬라브주의가 아니라 피지배 상태에 놓은 여타 슬라브 제 민족이 자유와 평등, 독립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는 광의의 급진적 범슬라브주의로 받아들인다면, 무하의 말년 대작 슬라브 서사시를 이해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나이부터 오랜 외국생활을 통해 오히려 조국과 민족의 가치를 느끼기 시작한 무하는 만년에 이르러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하에 신음하던 체코 민족의 자유와 평등, 독립을 위해 자신의 남은 재능을 모두 바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슬라브 서사시』이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우리는 러시아를 비롯한 슬라브인들에게 조금은 특징적인,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지식인, 예술가의 책무 의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르누보’라는 예술 양식이 서유럽 주변부 민족에게 낭만적 민족주의 운동을 추동한 영향력을 생각할 때, 기존의 전통적 재현 양식을 거부하고 새롭고 젊은 양식으로 자리 매김한 아르누보라는 사조가 천부적 인권인 자유와 평등, 인간 존엄을 깨닫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점에서 슬라브 세계가 ‘근대’(modernity)로 진입하는 데서 일정한 역할을 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출처 : 최정현. (2011). 아르누보와 범슬라브주의의 문화적 조우: 알폰스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의 경우를 중심으로. 슬라브硏究, 27(2), 115-159


1) 페룬(Перун)


페룬(Perun)은 하늘, 천둥, 번개, 비, 법률, 전쟁 등을 상징하는 범슬라브적(Pan-Slavic) 존재이며 동슬라브 판테온의 최고 신이다. 동-서-남슬라브를 통틀어 가장 많은 역사적 기록과 흔적이 남아있는 신이 바로 페룬이다. 동로마의 역사학자 프로코피우스(Procopius)의 저술 De Bello Gothico(6C)에도 페룬이 등장한다. 페룬은 리투아니아에서는 Perkunas, 라트비아에서는 Perkons, 프러시아에서는 Perkonis, 러시아와 체코에서는 Perun으로 알려져 있는 천둥, 번개를 관장하는 신이다. 남슬라브족이 섬기는 신은 번개를 만드는 페룬 뿐이다. 그들은 소와 동물을 제물로 바치며 섬긴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밖에도 신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천둥과 번개를 지배하는 신이라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턱수염이 수북하고 흰 머리에 금색 콧수염을 가진 모습으로 염소가 끄는 전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형상화되며, 금도끼를 휘두르는 이미지로 표현된다. 이러한 이미지는 북유럽신화에서는 토르(Thor)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토르 역시 천둥의 신으로 망치를 들고 다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페룬은 하늘의 가장 높은 곳9)에 살며, ‘선’과 ‘정의’를 실현하는 신으로, 해를 가하는 인간이나 적을 번개(thunderbolt)로 내리치거나 공격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한다. 페룬의 번개는 주변의 많은 신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비옥함, 생산, 다산(fertility)’을 상징하며, 겨울의 악한 기운을 정화하고 봄의 새로운 탄생과 선한 기운의 상징이다.


9) 리투아니아의 신화에 따르면,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천둥-번개의 신인 Perkunas가 살고 있는데, 그 곳은 미끄러운 급경사로 되어 있어 악한 기운들이 오르지 못한다. 이와는 달리, Dausos는 ‘달’로 여겨지는 죽은 영혼들의 신비한 왕국으로 여겨지며 Dievas가 다스린다. 이곳은 천국도 천당도 아닌 단순히 페룬이 살고있는 미끄러운 경사가 있는 하늘 밖의 세상이다. 하늘로부터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사자(死者)들은 동물과 같은 강하고 날카로운 발톱이 필요하다고 한다.


출처 : 김형섭. (2023). 슬라브 신화에 나타난 테오님(theonyms) 연구 - 블라디미르 대공의 판테온을 중심으로. 외국학연구, 65, 343-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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